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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Aug 29. 2023

내가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곳에서 균형 잡기

내가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곳에서 균형 잡기

일할 때 마음이 평온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했다. 일도 나와 맞아야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도 잘 맞아야 하고, 내 마음도 휘둘리지 않고 단단해야 했고, 회사에서 내가 괴롭지 않게 일도 잘해야 했다. 그럼에도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일하는 나와 일상의 나를 함께 돌볼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많은 조건들을 한 마디로 정리해 보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내가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곳에서 균형 잡기'였다.


어차피 힘들 수밖에 없다면, 내가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곳에서

회사를 몇 년 겪으면서 회사라는 곳이 구조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매니저가 계속 나에게 부족하다고, 더 성장해야 한다고 챌린징할 때 뭘 도대체 어떻게 더 잘해야 할지 몰라 막막함을 느껴보기도 하고, 회사라는 곳이 제한된 리소스를 배분하면서 목표를 달성하는 곳이다 보니 다른 팀 사람들과 죽일 듯이 싸우는 미팅을 끝내고서 자리로 돌아왔을 때, 팀장이 된 후 목표 달성을 위해 팀원을 챌린징하고 더 잘해야만 한다고 밀어붙일 수밖에 없을 때, 과거의 힘들어하던 나의 반대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을 때 깨달았다. 회사는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1) 회사는 '이윤'을 목적으로 존재하기에, 시장상황이 힘들든, 내가 지쳤든 상관없이 매달 매출목표를 달성해야만 하고, 그래서 멈출 수 없는 러닝머신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2) 그래서 회사에는 무조건 만들어야 하는 숫자가 명확하고, 그리고 각 팀마다 사람마다 회사의 이윤 발생을 위해 각자가 맡은 숫자는 명확하다. 게다가 회사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부딪히기도 하고 사람 때문에 마음 다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 것. 3) 그리고 나 역시 회사 입장에서는 리소스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매니저가 나를 챌린징 했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팀원을 챌린징 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회사는 지속해서 ‘회사의 목표 달성을 위해, 지금 당장 당신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매번 YES라는 답변을 주어야만 한다는 것. 나의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상황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4) 그리고 이것이 밥벌이라는 것이다. 이 멈출 수 없는 머신러닝에 잠시 내려와 볼까 싶어도 이것이 밥벌이라 완전히 그만둘 수는 없다는 것. 너무 힘들어서 이번에는 퇴사를 한다고 해도 밥벌이는 어떻게든 계속되어야 하니까, 밥벌이가 지속된다면 어디서든 이 속도로 달려야 하는 것은 똑같기에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다. 5)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는 쉬어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였다. 물론 저축을 많이 해놓는다면 밥벌이를 몇 년 쉬고 올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는 공백에 대해 의심했다. ’왜 그만뒀어요? 우리 회사도 그러면 또 그만 두실 건가요? 몇 년 쉬셨는데 잘할 수 있겠어요?‘ 등등 다음 면접에서 만날 것이 훤히 보이는 질문들 때문에 갭이어, 휴직에 대해 검색하다가 검색창을 끄길 여러 번이었다.

 

회사라는 곳이 힘들 수밖에 없고, 어느 곳을 가든 상상 속 파랑새처럼 마음이 여유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곳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회사가 괴로운 곳이라면, 내가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괴롭더라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몇 요소들은 충족되는 곳에서 일하기로 했다. 나는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마케팅 업무를 할 때 일에서 재미를 느끼고, 이미 브랜드가 커서 내가 무언가를 더 바꾸기 어려운 대기업이 아니라, 작더라도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은 작은 회사여야 했다. 그렇게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처럼 남들과는 정반대의 흐름으로 움직였지만, '내가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나가면서 마음이 덜 힘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덜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몇 년간 회사 일에서 삽질도 해보고 다양한 힘듦을 경험해 본 덕분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렇게 기꺼이 괴로워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나가고 그곳에서 커리어를 그려나가고 있다.

 

균형 잡기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내 마음을 단단히 하는 방법들을 정리하다 보니, 모순 같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 어떤 날은 관성의 힘으로, 하지만 어떤 날에는 내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 회사에서의 만족이 먼저지만, 또 회사 안에서의 평가와 나를 분리해야 하고

- 미래의 나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나도 중요하고

-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모순은,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이 결국 가장 큰 교훈이든, 문장이든 내게 의미 있는 문장들로 남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순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균형을 맞춰나가면서, 내가 괜찮은지를 주기적으로 물어보는 것, 그것이 일하면서 마음을 지키는 법이라 생각했다. 정성 들여 나를 더 잘 돌보면서 커리어를 지속할수록, 내 일은 또 찬란하게 빛나고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결이 아니라 다루고 살기

예전의 나는 회사 안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이 오길 기다렸고, 파랑새처럼 모두가 만족하고 마음 편한 회사가 있을 것이라 상상했었다. 여러 회사를 다녀보면서, 그리고 회사 안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경험해 보면서 결국 모든 고민이 끝나는 시간은 오지 않음을, 그냥 고민은 고민대로 두고, 나는 마음 편히 퇴근하고 가족들과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도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감당할 수 없어 해결책을 찾고자 한 남자가 현자를 찾아간다. 해결책을 묻는 남자에게 현자는, 대답 대신 밤새 낙타들을 돌보아 달라고 한다. 대신 낙타들이 모두 앉아서 쉴 때까지 잠들면 안 된다는 말을 남긴다. 남자는 밤새도록 자지 않고 낙타를 지키지만, 서있던 낙타 몇 마리가 앉자 그동안 앉아있던 낙타들이 일어선다. 결코 모든 낙타들이 일제히 앉아 있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낙타들이 서있거나 앉아 있는 것처럼, 삶의 문제들 또한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한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하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동안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고 만다. 언제나 문제들은 발생하고 늘 옆에 있을 것이다.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낙타들이 서 있더라도, 고민이 있더라도 낙타는 우리 안에 두고 깊이 휴식할 수 있어야 한다.
<신이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류시화>


주말 오후, 산책길에서

주말 오후 아이를 안고 산책을 나온 나는, 더 이상 내가 스트레스로 당장 늙어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록빛이 가득한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그냥 내 나이 그대로, 내 나이대에만 겪을 수 있는 모든 일들, 감정들을 겪고 천천히 늙어가겠다고 내 마음이 바뀌었단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잔잔한 삶을 살고 있는데 사실 상황은 바뀐 것이 없다. 여전히 회사는 늘 바쁘고 예상치 못한 일은 늘 터지고, 더 잘해야 한다 챌린징이 있지만, 그리고 주변에 이 상황을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옆에 보인다. 하지만 내가 바뀌었다.

지금의 나는 네임밸류 대신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서 커리어를 쌓으려 하고 있다. (물론 그래도 어려운 과제가 주어져서 일을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도 있지만, 이제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늘 할 일에만 집중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일과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려 노력하고, 물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 줄어든 것도 맞고, 그리고 오늘 일 때문에 지쳤다면 퇴근하면 모든 것을 off 하고 산책을 나간다. 힘든 이야기를 곱씹지 않는다. 이렇게 십 계명 같은 문장들이 남았고, 내가 바뀌었다.


일하면서 마음 지키기 위해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생활이 몇 달 마음 다잡는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라, 몇 년 몇십 년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긴 시간, 긴 인생동안 나를 놓쳐서는 안 되니까. 내게 맞는 일을 찾고, 그리고 내가 얻고자 했던 무언가를 얻기 위해 어느 순간에는 버티기도 하지만, 나를 돌보는 균형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끊임없는 커리어 고민 속에서 내가 이렇게 힘들게 얻어내고 지속하는 밥벌이를 다시 돌아보니, 쉽게 포기하지 말고 잘 키워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기꺼이 내가 괴로워할 수 있는 곳에서 균형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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