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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May 26. 2020

매니저에게 제대로 질문하는 법

보통의 마케터 이야기

내가 뭘 해주면 될까요?

P&G에 입사한 초반, 내가 매니저에 무언가를 보고하거나, 질문을 할 때마다 내 매니저가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팀장을 맡고 있는 지금, 내가 팀원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 매니저에게 질문하기가 어려웠다. P&G에 입사하고, 내 롤의 목표는 P&G가 가지고 있는 여러 브랜드의 온라인 신규 유저 모집이었고, 그 중 하나의 프로젝트가 app push (이커머스 어플을 설치한 고객에게 보내는 알람)과 같은 신규 마케팅 채널을 관리 및 만드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금세 더 큰 업무로 커져서, app push는 내가 맡았던 일 중에 아주 작은 부분이 되었지만, 사회초년생에게는 그 일이 너무나도 커 보였다. 몇 날 며칠을 준비해서, 6개 주요 이커머스에 app push의 효율이 어떻고 등등을 매니저에게 공유했더니, 매니저는 '내가 뭘 해주면 될까요? 무슨 도움이 필요해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 딴에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app push의 효율을 정리한 표를 보여주면, 잘했다는 칭찬을 받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니저는 도대체 왜 이걸 공유하냐는 듯한 질문을 던졌다.

 

매니저가 "내가 뭘 해주면 될까요?" 라고 물었던 그 말은 결국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뜻이었다. 표로 잘 정리한 건 좋은데, app push 효율이 좋아서 돈을 더 투자하자는 건지, 돈을 더 투자하면 얼마를 더 벌 수 있다는건지 목적도 결론도 없이, app push 전환율은 xx% 정도 나옵니다라는 '의미없는' 말을 한 거였다.


 그 이후에도, 매니저의 "So what?" 이라는 질문은 계속 됐는데, 가령 나는 "신규 마케팅 채널을 개발하려면 1천만원이 필요한데, 써도 괜찮을까요?"와 같은 질문들을 던졌었고 그 대답은 늘 "내가 뭘 해주면 될까요? 무슨 도움이 필요한거죠?" 였다. 매니저도 그 날은 쉽게 가고 싶으셨는지, "1천만원 정도는 컨펌없이 그냥 쓰세요." 라고 대답했는데, 이게 아직도 기억나는건, 내 노트의 한 쪽 귀퉁이에 '천만원 정도는 매니저의 컨펌 없이도 쓸 수 있음!' 이라는 대단히 귀여운 메모가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매니저님, 그 날은 쉽게 가고 싶으셨죠?)


이제 다시 그 상황에 놓인다면, 난 이렇게 질문할 것 같다.

'신규 유저 모집'이라는 목적에 집중해서, 제가 지금 달성해야 할 신규유저 수는 3,000명인데, 지금 기존 채널 플랜으로는 2천명 밖에 못 모으니, 목적 달성 위해 A라는 채널 개발해야합니다. A 채널 1,000명 모을 것으로 예상되고, 예상비용은 1천만원이나 예상매출액은 3천만원으로 대략 ROI 300%로 최저 기준 무리 없이 넘기므로 바로 테스트해보겠습니다. 문제 없으시죠?

또는 그냥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면,

A, B라는 신규 채널 모두 신규 유저 1,000명 모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A채널은 1천만원 드는데 ROI 300%, B라는 채널은 2천만원 드는데 ROI 400%입니다. 제 role의 목적이 '신규 유저 모집'이어서 두 개의 채널 모두 해당 목적에는 부합하는데, 비용 적게 쓰는 A로 가야 할지, 아니면 전체 top line (매출액)을 위해, B 채널로 가야할지 가이드 요청드립니다. 2천만원까지 써도 괜찮나요? 제가 '매출액'과 '비용관리' 중에 어디에 더 방점을 찍길 원하시나요?

라는 질문 등을 할 수 있을텐데 그 때는 도대체 바른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도대체 매니저에게 어떻게 질문해야하는건지, 왜 매니저는 내 질문에만 "So what?"이라고 되묻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5년 정도 시간이 흘러, 이제 내가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신입이 질문을 던지면 (물론 그 질문이 신입의 오랜 고민 끝에 나왔다는 건 알지만) 나도 예전 매니저처럼 "So what?"이라는 뜻을 가진 질문을 던지게 된다. 신입의 질문들은 보통

1) 스스로 결정내려도 충분한 질문이거나: 예로, "app push 대신, sampling 보내도 되나요?" 사실 매니저 입장에서는, app push로 신규 유저 2천명을 모으나, 샘플링으로 신규 유저 2천명을 모으나 상관없다. 비용이 똑같고 목표만 달성하면 수단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2) 원칙이라는 것을 세우면 바로 해결되는 질문이거나: 목표, 목적, 원칙만 세우면 자연스레 세부 질문들은 해결이 되는데, 보통 신입의 경우는, 매번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일이 떠오를 때마다 묻는다.


그 답답했던 마음을 알기에, 내가 5년 전의 내게 알려주고 싶은 '매니저에게 제대로 질문하는 법'을 정리했다. 매니저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에, 아래 4개 파트에서 스스로 답을 얻어야 한다.


1. "WHY?"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 role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보통 팀원이 팀장으로부터 일을 받으면, 왜 팀장이 이 일을 만들었고, 왜 이 일을 내게 주었는지 대한 이해 없이 바로 일에 파묻혀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일을 왜 해야하고, 이 일은 내 업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고, 기존에 하던 업무들간의 우선순위는 무엇인지를 매니저와 얼라인을 해야만 한다. (물론 본인이 생각한 바를 정리한 후 얼라인을 해야한다. 그냥 얼라인하러 갔다간, "So what?"이라는 질문만 받는다.)


 만약에 내가 app push라는 일을 하던 때로 돌아간다면, 매니저가 나를 app push나 보내자고 뽑은게 아니라, '신규 유저'를 모집해서, 브랜드의 지속성을 높이고자 나를 뽑았던 것을 명확히 할 것 같다. 그 말은, 예를 들어 app push 효율이 좋지 않고 혹은 내 업무시간을 너무 뺏는다고 판단하면 다 off 하고, 그 돈으로 차라리 효율은 높고 내 업무시간도 적게 쏟아도 되는 샘플링을 하겠다고 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입일 때는 목적과 목표는 잊은 채 하나하나의 업무에만 집중하게 되어, 사실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것들도 매니저에게 선택해달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목적과 목표에만 집중하면, 매니저의 시각과 동일한 시각을 갖게 되는데, 목적인 '신규 유저 수'만 모집되면 되는 것이고, 그 단위 업무는 사실 무엇이 되든 중요하지 않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목적 / 목표 /업무의 그림이 매니저가 생각하는 그림과 같은지 얼라인은 필수다.

중요한 것은 목적과 목표다. 업무는 무엇이 되든 중요하지 않다.


2. 스스로 판을 짠야 한다. Be the game changer!

 그리고 자신의 role의 목적, 목표를 매니저가 준 대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왜 내 role이 그 일을 해야하는지 스스로 판을 짜야한다. 정말 하나의 예시로, 혹 매니저가 '우리 브랜드 성장 어떻게 해야할까?' (보통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목적이 불충분하고 모호한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브랜드 인지도의 성장을 말하는건지, 매출액과 같은 Top line 성장인지, 이익과 같은 Bottom line 성장인지 모호하기 때문.)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생각이 얕은 사람은, 매니저의 질문을 표면만 이해하고, "성장하려면 A,B,C를 해봅시다." 라는 답변을 한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로 그 A,B,C는 전략이 아니라 전술, 그냥 작은 그림에 불과하다. "이벤트를 해보죠"와 같은 전술 아이디어일 뿐이다. 하지만 진짜 제대로 하는 사람은 '왜 성장해야한다고 생각하느냐? 어떤 성장을 말하는거냐?' 와 같이 성장의 여부, 성장의 정의부터 본인이 판을 짠다. 예를 들어, 현재 상황을 보았을 때, 필요한 성장은 '매출액 Top line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이익의 성장 등은 우선순위 낮추겠다. 등의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의 목적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판을 짜는 주체는 내가 되어야만 한다. 모든 일에서 아래 3가지를 명확하게 하기 전까지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1) 왜 이 일을 해야하고 (일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2) 비즈니스의 as is, to be를 명확히 이해하고

3) what needs to be true. to be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각 업무들간의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이 3개를 명확히 하기 전까지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어떤 광고를 틀지 등등은 수단일 뿐이다. WHY를 끊임없이 물어서, 판을 새로 짜야한다. 예전의 매니저가 내게 원했고, 지금의 나 역시 팀원들에게 원하는건, 근간을 흔드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3. WHY에 근거해서, Principle을 세워야 한다.

 첫 매니저와의 role이 끝나고, 2년 뒤 만나게 되었던 매니저는 외국 사람이었는데, 나도 나름 2년간 다져졌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매니저는 내가 플랜을 가져가면 읽기도 전에 "what's your principle?" 이라는 질문만 던졌다. 내가 해당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기 전까지는 플랜을 읽지 조차 않았다. principle이 한국말로 원칙이란 건 아는데, 원칙이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 답조차 하지 못했다.


원칙은 '목적이 뭔지, 목표가 뭔지'에서 더 나아가, 플랜이 복잡해지면 목표와 봐야 할 지표들이 여러개가 되고, 서로 충돌하기 시작할 때, 내가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우선순위에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를 들어 목표 매출 달성이라는 큰 목표 하에, 여러 개의 플랜을 운영해야 하는데, 각 프로그램의 ROI도 좋아야 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어서 내 시간도 배분해야 한다면? 플랜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일정이 겹치기도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에 대한 답변이 Principle이었다. 단순한 예시를 만들어보자면,

 내 role은 '매달 목표 매출 달성'이다.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Sales = New user x Basket x Frequency' 라는 식에 의거해서, 신규 유저 높이는 활동인 A, 장바구니 사이즈를 높이는 B, 빈도수를 높이는 C가 있는데, 무엇에 더 집중해야할까? 신규 유저가 매출 목표 달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므로, A라는 플랜에 집중하겠다. A, B만 할 경우, 매출목표의 90% 달성하므로, 이번 달에는 A,B에 집중하되, B의 효율을 높여 전체 매출 목표 달성하겠다. C는 벌어들이는 돈 대비 내 시간의 50%를 쓴다. 그래서 진행하지 않고자 하는데 이슈 없나요?

 원칙을 명확히 세우고 나니, "A와 B 플랜 일정이 겹쳐 충돌한 경우는?" 등등의 세부 질문들은 자동적으로 해결되었다. 나는 '비즈니스 임팩이 큰 순서'라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A와 B가 충돌하면 무조건 A를 우선시하고, B가 혹시 진행되지 못하더라도 A에서 XX%만큼 전체 목표를 커버하므로 문제 없다 등등의 업무 전체 플랜이 세워지는 것이다. 매니저와의 Back and forth를 반복한 끝에, 'Principle'에 대한 논의만 몇 시간씩 진행했고, 그 이후 매니저는 내 세부 플랜을 보지도 않은채 'Go ahead!'라는 콜을 내렸다. 목적이 명확하고, 원칙이 명확하니 세부 파트는 볼 필요조차 없어진 것이다.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해 배우던 한 해였다.


4. A to Z, Forward thinking하면 갑작스러운 질문이 사라진다.

 그리고 마케터는 사실 단독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 각 multi-function들의 도움을 무조건 받아야 하고, 우리는 각 프로젝트 당 PM (Project Manager) 역할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직접 디자인을 하거나, 코딩을 할 수는 없으니) 예를 들어 기획전만 운영해도, 기획전의 기본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Product supply팀과 논의해 재고가 충분한지 확인해야하고, 디자인팀이 기획전 디자인을 만들어줘야하고, 개발팀이 배포해줘야하고, 이커머스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이라면 MD에게 약속된 일정까지 필요한 자료들을 줘야하고 등등 플랜 하나를 집행하는데도 컨택하고 도움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이 족히 10명은 넘는다. 마케터는 전체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를 다 그려야만, 전체 스케쥴 관리가 가능하다. 전체 플랜을 가지고, 미리 Forward thinking을 하면, 다 내가 고려한 범위 내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매니저에게 업무가 펑크난 사실을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사라진다.


 예전에 다우니를 잘 팔려는 목적을 가지고, 담요를 사은품으로 만들었는데, 티몬에서 담요를 사은품으로 내보내려면, 티몬 물류창고에서 담요를 내보낼 수 있도록 바코드를 제작해야했다. 다른 단계들은 빼놓지 않고 만들었는데, 내가 다우니 마케팅을 하다가 바코드까지 만들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부랴부랴 바코드 제작업체를 찾고, 디자인 프린팅을 하고, OPP 포장지 위에 바코드 붙이는 작업을 어느 분에게 요청해야할지 담당자를 찾고 등등의 일련의 과정을 밤새 했던 기억이 난다. 마케터가 무언가를 놓치면, 결국 누군가는 고생을 하게 된다.


이렇게 WHY에 기반해서 내 업무의 정의를 내리고, 그 후에는 해당 업무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서 다 내가 예상한 범위 안에서 일어나도록 해야한다.


 질문하는 법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바르게 일하는 법에 대해 써버린 것 같은데, 마케터는 단순히 재미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AS IS를 명확히 이해하고, TO BE가 무엇인지 그리고, 목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하고, WHAT NEEDS TO BE TRUE에 해당하는 것의 A 부터 Z 까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이다. WHAT NEEDS TO BE TRUE 안에서는, 충돌하는 지표들도 많을 때 (당연히 비용을 많이 쓰면 매출액이 늘겠지만, 이익도 챙겨야 하겠지? 등등) 어떤 것에 방점을 찍을지에 대한 원칙까지 세우고 나면, 매니저도 더 이상 "So what?"이라는 질문을 던지진 않을거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신입이던 나를 이렇게 키워준, 옛 매니저님들이 그리워 지는 날이다.




이 글은 기회가 되어 퍼블리에 '직장인의 생각법'으로 발행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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