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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Sep 20. 2020

마케터의 이직 이야기

마케터라고 다 같은 마케터가 아니야.

마케터라고 다 같은 마케터가 아니야!

처음 취업준비를 할 때 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어떤 마케팅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막연했다. 같은 이름의 '마케터'라도 어떤 인더스트리인지, 어떤 형태의 상품을 판매하는지, 어떤 PLC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지금의 신입들이 하는 오해처럼, "광고를 틀고 싶다. 팝업스토어를 열고 싶다."처럼 가장 바깥쪽에 보여지는 활동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가졌었던 것 같다.


경험을 하면서 마케터의 업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머릿 속 생각만으로는 어떤 인더스트리가 나와 맞고, 어떤 마케터가 나와 맞다는 것을 알 수 없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회사들을 경험하며, 이번 회사에서 아쉬운 것들을 조정하면서 가고 싶은 인더스트리, PLC 등이 명확해졌다. 내가 생각했던 나와 실제의 나와의 초점이 맞춰지고, 내가 상상하던 일과 실제 일간의 간격을 조정했다.


지금의 나는, 이직에 있어 아래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 기준들은 이직을 하면서 하나씩 추가되고 있다.


1. 이직할 회사에 대한 기준

- 브랜드 매니저로 일할 수 있는가? (에이전시는 가지 않는다)

- 브랜드가 속한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가?

- 내가 고객이 될 수 있는 브랜드인가?

-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는가? 혹은 상품을 판매하더라도, 자체 웹사이트가 있는가?


2. 이직의 시점에 대한 기준

-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성장했는가?

'이직할 회사에 대한 기준'에 따라 이직을 하다보면, 다른 인더스트리, 다른 PLC 브랜드를 맡기 때문에, 예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분명 러닝커브가 완만해지는 시점은 존재하고, 더이상 새로움이 많지 않다면 현재 직장에서 얻은 아쉬운 점에 기반한 기준이 추가되고 이직을 선택하였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어떤 부분이 아쉬워서 이직해야 하는지가 그려졌다. 사람마다 다른 형태의 표가 만들어지겠지만, 나의 표는 이랬다.


1. 퍼포먼스 마케팅을 배울 수 있었던 로톡

마케터로서의 첫 시작은 로앤컴퍼니였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72505298264847

'로톡'은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하는 플랫폼인데 나는 의뢰인을 로톡으로 유입시키는 역할을 맡았었다. 4년 전 내가 로앤컴퍼니를 다니던 시절, 로톡에서는 네이버의 지식인처럼 법률문제를 겪는 사람이 상담글을 남기면 변호사가 무료로 답변글을 남기는 서비스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지금은 전화 상담, 방문 상담 등의 서비스들이 더 추가되었다.) 의뢰인들은 무료로 답변을 남긴 변호사들의 프로필 등을 보면서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변호사에게 전화상담, 방문상담 등을 요청했다.


 로톡에서 마케팅을 하면서, 대학시절에 배웠던 STP 파트가 교과서 속의 프레임임을 배웠웠다. 법률문제는 연령대 성별 등의 타입으로 타겟팅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우리의 고객은 법률문제를 겪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이 타겟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 현재' 법률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았다. 고객이 법률 문제를 겪고 있지 않다면, 내가 '로톡이라는 서비스를 아니?'라고 Awarness building을 하거나 '법률 상담 필요하지 않니?'와 같은 Needs recognition을 한다고 해서 전혀 유입이 불가한 것이었다.

 따라서 결국 내 마케팅 활동은 국내 최고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법률문제를 검색하거나 네이버 지식인에 상담글을 남기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삼아야했다. 대학시절 배웠던 데모 타입의 타겟팅이 아니라, 고객의 액션에 맞춰서 채널 단위의 타겟팅을 하면서 프레임이 아니라, 시장의 특성에 대한 이해, 고객의 흐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네이버에서 법률문제를 검색한 사람을 로톡으로 데려오는 것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었고, 네이버 검색광고부터 지식인 등 네이버의 서비스를 통해 전환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유입시키고, GA를 결합하여 수치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계획할 수 있었다. 가령 '이혼'이라는 키워드로 유입된 고객들이 얼마나 로톡 내에서 변호사 연결로 전환되는지, 변호사의 예상 수익을 계산해서, '이혼'이라는 네이버 검색광고 키워드의 최대 CPC는 얼마로 설정해야할지에 대해 러닝이 쌓였다. 그리고 네이버 지식인에 법률문제를 단 고객들이 평균 하루에 몇 명이고, 몇 개의 답글을 달았을 때 몇 명이 유입된다는 것을 보고, "'1일 상담글 수 XX개'라는 지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직원 한 사람이 달 수 있는 최대 답글의 수는 X개 이므로, 인턴을 X명 뽑아주세요." 와 같이 숫자로 말하는 능력이 키워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퍼포먼스 마케팅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좋았지만, 마케터 하면 떠오르는 Awareness building을 하는 '광고'를 하지 못한다는 것과 '브랜딩'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이직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광고'를 틀 수 있는 사이즈의 회사면서, Needs recognition이 가능한 인더스트리면서, 브랜드를 고객에게 인지시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배울 수 있는 회사에 가고 싶었다.


2. 전체 비즈니스를 키우는 관점을 배울 수 있었던 P&G

 처음 생겨난 기준 1) 쉽게 Needs recognition이 가능하고, 2) 브랜딩에 대한 러닝이 많은 회사를 찾으면서, 거기에 더해 3)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큰 회사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싶었다. 4) 마케팅 부서가 리드부서가 되면서, 마케팅으로 유명한 회사가 무엇이 있을까라고 했을 때 P&G만이 사실 유일한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생활용품 카테고리라 Needs recognition이 쉬웠고, 가장 광고비를 많이 집행하는 회사들 중 하나였고, 제품만 보았을 때 경쟁사들과 특별한 차이가 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마케팅을 통해서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랜딩을 배우고 싶어서 P&G에 가게 되었지만, 사실상 P&G에서 더 비중있게 접한 것은 더 큰 비즈니스를 키우는 숫자감각이었다. 로톡에서는 하나의 웹 사이트를 내으로 상담글 수라는 지표를 높이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면, P&G에서는 판매하는 상품의 종류도 많고, 팔아야 하는 채널도 많다보니 (마트, 편의점, 이커머스 등. 이커머스 내에서도 6개의 커스터머가 존재했다.) 채널간의 전략을 세우고, 가격 충돌 등을 고민하면서 전체 숫자를 만들어가는 것 등에 대해 프레임을 배울 수 있었고,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던 것 같다. 실제 비즈니스를 해나가며 매출목표와 같이 목표 숫자를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을 알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나가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생겼다. 이 기준이 생기는 순간, 나는 더이상 대행사나 컨설팅펌을 갈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직접 브랜드 매니저로서 액션을 취하면서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것이 내가 재미를 느끼는 파트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P&G는 자체몰이 없다보니, 전 스타트업에서는 매일같이 볼 수 있던 DAU, by source traffic, by source conversion rate 등의 정보를 알 수 없었다. 이커머스 몰에서 GA에서 트랙킹하는 정보를 판매자에게 오픈하지 않다보니, 우회해서 전체 트래픽 수만 계산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년 목표가 올해보다 10% 성장이라면 전체 트래픽 수도 10%가 증가해야 하니, 이에 맞춰 마케팅 매체 비용이 증가되는 것이 최선이었다. 사실 organic하게 우리 제품을 검색한 트래픽과 뉴스 기사를 보다가 실수로 네트워크 배너를 클릭해서 온 트래픽은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전체 숫자만을 본다는 것이 답답했다. 그 이후 생겨난 조건은 '자체몰을 가지고 있거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첫번째 회사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충족되다보니 소중함을 몰랐던 파트였다.

 

그리고 생활용품이다보니 시장 사이즈 자체는 큰 변화가 없고 경쟁사와의 땅따먹기의 그림이 자주 그려지는 와중에, 회사의 시스템이 너무 완벽히 자리잡다보니 할 수 있는 액션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았다. 가령 경쟁사 대비 우리의 판매가가 2배, 3배인 상황에서, '가성비' 로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더이상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미 시스템적으로 확고하게 정립된 가격을 건드릴 수 없었고,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사은품을 붙인다는 결정을 내려도 risk management가 발달하다보니 사은품에 대한 제약조건도 많아 컨펌까지 최소 6개월은 걸렸었다. 그러는 상황에서 경쟁사는 더 빠른 속도로 더 저렴한 상품을 내면서 카테고리 자체를 뒤흔드는 상황이 계속해서 그려졌다. 그러면서 시장이 성장가능성이 있고 (땅따먹기의 관점이 아니라,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시장이면 좋겠다는 생각), 회사의 시스템이 완벽히 정립되기 보다는 내가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2년여 동안 질레트를 맡았었는데, 내가 실제 남성 면도기의 컨수머가 아니다보니, 샤퍼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마케팅 활동을 그리는 것에 흥미가 상대적으로 떨어졌었다. 따라서, 내가 '고객'이 될 수 있는 브랜드여야 한다는 기준도 추가되었다.


3. 그리고 그동안 배운 것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꾸까

P&G에 다니며 생긴 기준들을 가지고, 1) 내가 고객으로서 좋아하는 브랜드들을 다 나열해놓고, 2) 자체몰을 가지고 있어서 데이터 보는 것이 용이한지 3) 시장의 성장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보았고 4) 내 이력서에 작은 브랜드를 크게 키운 경력을 추가하고 싶어, '꽃의 일상화'라는 비전을 향해 화훼업계를 바꿔나간다는 꾸까를 선택했다.  이에 맞춰 지난 1년 반동안 P&G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신나게 접목시켰던 것 같다.

이제 여기서 얻게 된 새로운 러닝은, 올해 마케팅팀의 활동으로 '전년 대비 60% 성장'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더 큰 폭발적 성장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단순히 마케팅만 잘한다고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비전을 제시해주는 대표가 있어야 하고, 이를 티키타카하며 키워낼 조직구성원들이 필요하고, 조직 구성원들은 스스로 목표 bar가 높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일부가 전체를 바꿀 수 있을까? 누군가 한 명이 나서서 키울 수 있을까? 처럼 '조직문화', '구성원'과 같은사람에 대한 고민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아직은 떠날 때가 아님을 알지만 이런 고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4.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내가 5년 사회생활동안 채운 표를 보면, 서비스이면서 큰 기업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새롭게 생겨난 고민처럼 '성장에 대해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은 어떠할지에 대한 궁금증. 궁금하긴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IT회사의 경우 마케팅은 더이상 핵심직무가 아니라 지원부서가 된다는 것, 즉 마케팅 비용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 마케팅팀으로 이직했던 예전 회사 동기가 평소에 집행하던 매체비의 30분의 1도 쓰지 못하던 상황을 겪었던 것도 떠오른다. 물론 광고비를 몇천억씩 집행하는 기업들이 존재는 하지만, 이미 penetration이 너무 높아서 일반적인 awareness building용 광고를 집행할 니즈가 없는 기업들도 있고, 여기에서 어떤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과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표의 빈칸을 채우다보면 앞으로 나에 대해 더 명확히 알게 될까?


이직을 하면서 나에 대해 깨닫게 되었듯, 지금까지의 내 이직을 정리하는 것으로도 나를 다시금 깨닫고 있다.

마케터의 이직은 계속된다.


그리고 이 글은 퍼블리에 '마케터가 3번 이직하고 깨달은 것들'이라는 주제로 새롭게 발행되었다.

https://publy.co/content/6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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