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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Oct 23. 2022

회사가 던지는 두 가지 질문

그리고 회사 다니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내가 좋아하는 어른의 퇴사 소식을 접했다. 소식을 듣고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

'그 퇴사가 정말 본인의 의도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퇴사였을까.'

물론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새 출발을 위해서 하는 퇴사일 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고 존경했던 어른들은 떠밀리듯 퇴사했었다. 달성하지 못한 목표에 대한 책임이던, 사내 정치의 결과든, 어쩔 수 없는 퇴사는 늘 그렇듯 씁쓸함을 남겼다. 누구보다 실력 있다 생각했고,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준 분들도 퇴사를 해야만 해서 퇴사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 퇴사가 본인의 의지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새 출발을 응원합니다.”와 같은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던지는 두 가지 질문. "지금 당장 우리 회사에 필요한가?"

회사는 참 무섭도록 정직해서, 내가 아무리 이 회사에 많은 기여를 했어도, 내가 일을 잘해도 기타 등등 모든 것들이 무색하게 ‘지금 당장 우리 회사에 필요한가?’라는 질문만 던진다. 지금 당장 우리 회사에 필요할 때는 연봉이 어떻게 되든 무조건 맞춰주는 등 편의를 봐주지만, 더 이상 우리 조직에 필요 없다는 판단이 들면 이 꼴을 보면서 다녀야 하나 생각이 들도록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 질문은 현재형이다. 내가 회사에 기여를 많이 했어도, 기여를 많이 할 것으로 기대되어도 (그렇다면 시간은 조금 더 주어지겠지만, 다를 바 없다.) 지금 우리 회사에 필요한가라는 현재형 질문만 던질 뿐이다. 그리고 일을 잘해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람과 내가 건건이 부딪힌다면? 그렇다면 나는 지금 우리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회사가 던지는 두 가지 질문. "수지타산이 맞나?"

그리고 회사의 두 번째 질문은, ‘ROI가 맞나?' 계산기를 두드려보았을 때 수지타산을 따져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 회사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필요하긴 하지만..."이라는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 지금의 연봉을 주면서 나를 데리고 있는 것이 맞나 라는 질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만큼 일하면서 연봉은 낮은 사람을 찾는 등의 대안을 찾게 된다. 전에 다녔던 회사가 'Up or Out (승진하거나 나가거나)'라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이른 시기부터 회사의 민낯을 마주했다. 그때 회사는 어른들한테도 그랬고, 3년차도 되지 않은 그 당시 나에게도 ‘우리 회사에 당신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계속했고, 내 쓸모 있음을 계속 증명하게 했다. 다만 내게 어른들보다 조금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 것은 어른들보다는 연봉이 낮아, 수지타산이 맞나 라는 질문에서 조금은 자유로웠던 것뿐이다. 연차가 쌓이면서 연봉이 올라가고 숫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순간, 특정 직급부터는 1년 단위의 계약직이 되는 것처럼, 그 질문들에 답을 해야 했다.


회사가 무서워지는 순간

회사가 정말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내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회사가 반대로 언제든 나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회사가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지만 (이걸로 글 하나를 써봐야겠다.) 그중 하나는 회사를 다니는 이상 저 두 개의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말은 ‘나의 쓸모 있음‘을 현재형으로 계속 증명해야 함을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회사의 주관적인 판단, 그리고 상대적인 판단에 달려있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회사가 저 두 개의 질문에 대해 “당신은 아닙니다.”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

자꾸 당신은 아니라는 회사의 평가에, 수학의 정석을 펴놓고 공부했다던 어른의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절대적인 답이 있는 문제를 풀면서 도대체 무엇이 아니라는 건지 찾고 싶은 마음, 회사 생활을 몇 년째 했지만 수능이라도 다시 쳐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는 마음. 아내와 자녀들 몰래 수학의 정석을 펼쳤을 그분의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은 내가 한창 팔팔하게 커리어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회사에 내가 필요함을 잘 설명할 수 있고 수지타산도 잘 맞는 30대 초반의 사람이라지만, 내가 40대, 50대가 되어서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유한할 수밖에 없는 회사 생활이 얼마나 남았나 생각해본다.


회사를 다니면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내 쓸모를 회사의 판단 하에만 두지 말 것.

지금의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물론 초년생 때 실력을 쌓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그다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회사에서 매일 쓸모 있음을 증명하려고 살다 보면, 시야가 점점 좁아져 회사에서 버티는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 때 회사가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리면 전부였던 세상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물론 그 질문에 답을 못했을 때 새로운 회사로 이직도 방법이겠지만, 새로운 회사도 늘 그렇듯 그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대표가 아닌 이상, 나의 쓸모를 묻는 상황은 꽤 자주 찾아오고, 정년퇴직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회사가 더 이상 내게 월급을 주지 않겠다 판단해도, 내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실력이 쌓였고 회사에서 나의 쓸모를 느끼며 내게 잘해주는 그 시점부터 늦지 않게 해야 하는 일은, 내 쓸모를 회사의 판단 하에만 두지 않는 일이다. 회사에서는 열심히 달리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늘려놓는 것. 자기 콘텐츠를 쌓아 자신의 전문 분야를 쌓고,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 또는 작게라도 자기가 나중에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고민하는 것. 이 회사가 내가 아니라 판단했을 때 나 역시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리어 정점을 찍고서 천천히 랜딩하기 위해서, 아니 또다른 정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내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하나, 그리고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 내 쓸모를 키우는 일은 그것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쓸모

하지만 늘 쓸모 있음을 묻는 일상에서, 퇴사하지 않고서는 멈출 수 없는 열차에서, 스스로에게 되뇌어야 하는 말은 단 하나다. "나는 나대로 의미 있다고.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그리고 당신도 우리에게 그랬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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