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모

by 고양이수의사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그것도 제대로 못 하냐는 말이다. 살아오며 내 속에 가장 깊숙이 박힌 말이기도 하다. 이것과 비슷한 말만 들어도 나는 미칠 것 같다.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래도 나는 착한 아이니까 참아야 해, 하며 기괴하고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아도 새빨개진 귀는 감출 수 없다. 그 때문에 나는 더 화가 난다. 수치심과 굴욕감마저 느낀다.


살아오는 내내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 마음은, 잘 해내고 싶다기보다는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쪽에 더 가까웠다. 잘하지 못하는 나는 쓸모가 없고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버려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꼭 모든 게 완벽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향은 아니었다. 다만 뭔가를 해놓고도 항상 모자란 부분만 보이고 만족하지 못하는 식인데, 더 잘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항상 따라왔다. 좀처럼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소극적인 완벽주의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스스로에게 인색했다.


무언가를 처음 배울 땐 서툴고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나는 그게 싫었다. 초보인 주제에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알고 있는 척, 다 이해한 척했다. 그러다 보니 이유를 모르고 하는 것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적당히 넘어가주면 다행인데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깊게 파고들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무식하고 두려우면 화가 나는 법인지라 나는 속으로 분노했다. 그것을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실패하면 웃음거리가 될 테고 버림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손가락질받고 조롱받는 상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정작 사람들은 내 인생에 그렇게 관심이 없으며 나에 대한 기대치 또한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얼마나 못하는지 트집을 잡기 위해 모두가 벼르고 있다고 지레 겁먹었다. 자, 얼마나 잘하나 한번 해봐.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꼬리를 내렸다.






나는 끝없이 내 쓸모를 증명하려 했다. 성적을 잘 받으려 노력했고 말썽 피우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애썼다. 그래야만 나는 예쁨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과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남들에게 맞추려고 했다. 최고로 무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모두에게 나쁜 말을 듣지 않으면 만족하는 존재. 그렇게 나는 점점 회색빛이 되어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살았다. 실수하면 안 돼! 아무리 내가 조심한다고 한들 어떻게 그게 완벽히 되겠는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충돌이 생기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살아왔는데 그거 하나 이해를 못 해줘? 화가 났다. 이 위험하고 엉망인 세상에서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내가 더 잘 해내지 않으면 나는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남들에게는 허튼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작 내 소중한 사람에게는 수없이 많은 상처를 줬다. 내 불안과 분노를 투사하고 그 사람의 감정까지도 강요했다. 내 깊은 이야기는 터놓지도 않으면서 이해받고 싶어 했다. 정작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차라리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하면 됐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닫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정 지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핑계 삼아 많은 과오를 저질렀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엉망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내가 문제였다. 소라껍데기 안에 숨어서 작은 구멍을 뚫고 지켜보는 바깥은 위험 천만하기만 했고,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따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세상은 안전한 곳이었다. 조금 실수해도 무언가를 꼭 잘하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내가 걱정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시작은 내가 나의 진짜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내가 했던 잘못들이 떠올라도 피하지 않고 내가 왜 그랬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들여다봤다. 합리화하고 묻어버리고 넘어가는 대신 적어도 나만큼은 그것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 너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네. 그렇게 여러 걸음을 뒤로 물러나니 비로소 앞을 향해 걸을 수 있었다.


내가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갇히게 된 것은 학창 시절의 영향이 컸다. 성적만으로 내 가치를 확인받던 그 시절 등수가 잘 나오지 않으면 나는 노력하지 않은 인간, 죄를 지은 인간 취급을 받았었다. 하지만 온전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속에는 분명 순수한 내 욕심도 있었다. 나는 스스로도 잘하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래, 그만큼 잘하고 싶었구나.'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어서 설렜구나.'

어떤 일에 앞서 불안해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뇐다. 그러면 조금 진정이 된다. 아쉽고 부족한 점은 항상 있지만 일단 해낸 것에 만족하려 한다. 그리고 그만하면 잘했다며 칭찬도 해준다. 뒤늦게 나를 스스로 다시 키우는 마음으로 우쭈쭈 해준다.


기분 좋은 떨림과 두려움도 구별하지 못하는 내가 좀 더 편해질 수 있을까. 그런 내가 어깨에 힘을 빼고 파도타기 하듯 삶을 살았으면 한다. 잔잔한 날도 요동치는 날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못난 나도 잘하는 나도 예뻐해 줬으면 좋겠다.


아직 갈 길이 먼데도 벌써 나아진 척, 괜찮아진 척하며 나를 또다시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속으로 곪아서 터지는 것을 반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