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메뉴가 참 좋다. 설거지하기에.

by 쓰는수 이지수

내가 좋아하는 단호박 샐러드. 먹을 땐 참 좋았다. 찐득하고 달짝지근한, 견과류가 가미된. 맛있으면서 건강에도 좋은. 환자용 점심 식사 상차림을 도울 때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예쁘게 떠서 나갈 때는 이게 골칫덩어리가 될 줄은 몰랐다.


작은 종지에 담긴 그것은 그릇에 착 달라붙어 어째 떨어질 줄을 모른다.

고압호스로 물을 뿌리면 그 작은 그릇이 뒹굴기를 반복하는데 그놈의 점성 있는 샐러드가 살짝 굳어서 종지와 한 몸이 되어버린다. 이런.


반찬 국물이 살짝 배어있는 그릇은 락스물에 잠깐 담갔다가 세척을 한다. 이 종지들을 물에 담갔다가 씻으려니 일이 더디 진행된다.





내가 설거지 담당이 되고 보니 급식 메뉴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어제는 입원환자용 저녁식사 메뉴가 맘에 들었다.

물론 설거지하기에.


상차림 시간에 세척실에서 내 할 일을 하느라 정확하게 무슨 반찬이 나갔는지 모르겠으나 그릇에 남아있는 잔반을 보니 김치, 나물종류 외 제육볶음 그리고 멸치볶음이 나간 듯하다. 조리사가 남은 을 폐기하러 왔을 때 풍기는 냄새가 감잣국이 확실하다. 고압 호스로 한번 쏴주면 단번에 씻겨나가는 아주 기특한 메뉴다. 오늘 메뉴 아주 좋았어!

합격!!


며칠 전부터 직원 대상으로 식사 메뉴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 입맛에 맞춘 밥만 먹다가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접했을 때 "와 복지관보다 더 맛있네!"라며 감탄을 했다.


스티커를 붙이는 넓은 보드판을 앞부분에 게시해 놓고 만족, 보통, 불만족으로 나뉜 칸 중 하나에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면 된다. 조리사들 경력이 이 병원에서만 10년 가까이 되니 맛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 없다.


그래도 모든 직원들의 입맛을 백 프로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보통이나 불만족에 표시하고 싶은 직원도 분명 있을 텐데 식사 중인 다른 직원들이 보고 있는 위치에 놓인 보드판에 만족 이외의 칸에 용기 있게 스티커를 붙이는 이가 있을까.


일부러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 보드판을 붙여놓고 만족도조사를 하는 것도 만족칸에 스티커를 붙이도록 유도하는 조리실팀의 나름의 전략이 아닌가 예상해 본다.


그럼에도 오늘은 보통칸에 스티커가 하나 붙었다. 조리실 직원들은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누구야? 보통칸에 붙일 때 본 사람 없어?"



영양사가 스티커를 확인하다가 뒤늦게 식사를 하고 있는 조리실팀에 말했다.

"조리실 직원도 다 하는 거예요. 제가 스티커 붙일 테니까 한분씩 말씀해 주세요."

"우리들이야 당연히 다 만족이지. 우리가 밥 하는데 불만족하면 어떡해?"

"ㅇㅇ여사님은 어디에 스티커 붙일까요?"

영양사가 내게 물었다.



나는 입안의 음식을 오물거리며 설거지 타임을 떠올렸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맛난 수제 햄버거와 봉골레파스타였다. 기분 좋게 양식접시에 제공이 되었다. 칸이 나뉜 식판보다 열두 배는 세척이 편하다. 접시에 닿은 부분은 빵 아랫면과 파스타 양배추샐러드, 밥 약간이었다. 파스타도 베이지 색의 봉골레파스타라 접시에 물이 들지도 않았다.


수세미로 문지를 때 넓게 지나가주면 손쉽게 세척이 되는 걸 보니 영양사님이 설거지 편한 메뉴로 고려해 주신 건가? 혼자 착각해 본다.


오늘 메뉴도 퍽 마음에 들었다.

당연히 설거지하기에.


"저도 만족이에요!"

영양사는 만족란에 스티커를 하나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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