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즐거운, 설날에 출근

by 쓰는수 이지수

내 평생 처음으로 설날에 출근을 해본다.


이 직장으로의 첫 출근은 1월 첫날이었기에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설연휴 내내 근무를 하는 것에 대해 남편은 다소 언짢은 내색 및 충격을 받은 듯 보였지만 새해 첫날부터 내가 직장에 나가는 것을 경험한 학습으로 다행히 그 기운이 약간 누그러진 듯하다.


제사를 함께 지내는 동서 형님께는 전화로 사정을 말씀드리고 미리 방문하여 명절 선물 및 제수비용을 전달했다.


병원 조리실에 정년을 한참 넘긴 여인들이 근무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명절 연휴에 집안 어르신이 근무를 하는 것에 대해 자녀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른의 입장에서 미안해할 일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저 작은 사람들이 어른의 일정에 맞추기만 하면 될 뿐이다.


나는 제사에 참석해야 하는 며느리인 데다가 그것도 둘째이니 순전히 내 직장문제로 형님과 아주버님에게 제사준비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떠넘기는 것이 불편했다.


남편은 나 대신에 아들을 데려가서 같이 차례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아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그걸 받아들일 형님이 아니다.


"됐어. 그냥 나랑 ㅇㅇ아빠랑 둘이 하면 돼. 설날 당일에나 와"

그러면서 미리 재어둔 LA갈비를 먹으라고 주셨다.


병원 조리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주말 및 명절 연휴에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내가 생각하는 장기 근무는 조금씩 물을 건너가기 시작한다.



식사 시간이었다. 연휴에 근무를 하는 것이, 어쩔 수는 없지만 약간 불편하다는 나의 말을 들은 조리실 언니 중 한 분이 나더러 제사를 지내냐고 물었다.

"제사를 지내든 안 지내든 어른들이 계시잖아요. 저는 작은 사람인데요." 하고 대답했다.


"1년만 참고 다녀봐. 그 이후에는 휴가 제법 자유롭게 쓸 수 있어. 그리고 설거지할 사람은 구하기도 쉬워서 자기는 휴가 내기 편해."

입사 초기부터 계속 나더러 오래 다니라고 구슬리더니 이젠 가스라이팅 시전 중이다.


나는 맹하게도 설연휴에 쉴 사람 안 쉴 사람을 정하는 시간을 갖는 줄 알았다. 근무를 시작하고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 이사를 한다는 이유로 월차를 앞당겨 쓰고는 휴가에 대해 입도 뻥긋 안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입이 삐쭉 나왔다.


연휴기간 동안 당직 간호사들 외에 병원 직원들은 출근을 안 하니 내가 맡은 구역의 일을 하고 거의 놀다시피 하면서 시간을 때우게 생겼다.


나는 명절에 출근을 하여 몇 명 안 되는 입원 환자에게 밥 배달을 하고 조리실 분들과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따끈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세척실 한구석에 혼자 앉아 블로그 두어 개쯤을 완성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꿈에 부풀었다.

이달에 빨간 날 근무가 며칠이나 있더라. 휴대폰의 캘린더에 간략한 메모를 하다가 연휴 날짜를 세어본다. 흔히 말하는 금융치료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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