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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Feb 06. 2023

끌어당김의 법칙(3)

일상의 잡다한 생각

 어떤 이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20세기 최고의 가스라이팅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끌어당김이라는 것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자신의 꿈을 끌어당김 해보려고 평생 노력해 본 자가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나 스스로 판가름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 시간에 효과를 본 이도 있을 것이고 10년 내지 20년이 걸려서 그 효과를 본 이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더라도 그 효과를 못 본 이는 자신에게는 왜 그 법칙이 통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하고, '아!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라며 후회를 할 만한 이벤트를 생각해 낼 것이다. 목표한 바를 이룬 사람은 '와! 이게 정말 통하네!'라며 그 법칙들을 논한 작가들에 대해 감사를 표할지도 모른다.


 긴 세월이 지나서야 독자로 하여금 거짓인지 진짜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을 보면 갖가지 법칙을 내세워 책을 낸 작가들은 절대 밑지지 않는 장사를 한 이다. 기본적으로 그 법칙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고, 또 그런 류의 책 내용 중에는 입에서 내는 말은 곧 내가 되니 부정적인 말을 담지 말라고 잘 훈련하고 있다.


 그렇게 제대로 가스라이팅 된 독자들은 그들의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지 않는 결과를 보게 되더라도 비난의 화살을 작가에게 돌릴 가능성은 희박하니 그 얼마나 가성비 좋은 가스라이팅인가!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을 한 그분은 내가 보기에 성공했다고 할 만한 사람이었고 그러한 표현은 각자가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난 희망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꿈을 향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낫다는 쪽이다. 만약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ㅡ 에잇! 괜히 헛물켰네!

라며 그간의 노력을 헛수고로 치부하는 일은 없도록 스스로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마치고 온 남편이 투덜댔다.

"나이 들면서 키가 점점 줄어드네."

그는 키 얘기를 하면서 거울 속 자신의 머리카락에 더 집중해 있었다. 몇 가닥인지 세라면 금방 몇 시간 안에 다 셀 수 있을 것 같은 머릿가락을 한쪽으로 애써 빗어 넘겼다.

"그래서 몇 나왔는데?"

"169.5"


 한숨을 쉬는 남편을 빤히 바라보며 한방 먹였다.

"한 10년 더 살면 나랑 키 똑같아지겠네?"




 언젠가부터 나와 그는 대결을 하듯 각자의 정수리를 점점 밝게 만들고 있었다. 밝은 색 머리카락이 아님을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그래도 나는 여자라서 종종 파마도 하고 머리카락에 힘을 주는 통에 얼핏 보면 머리카락이 풍성해 보이는 속임수를 쓰는 반면 그는 히마리가 없는 머리카락 몇 가닥이 홑겹이불처럼 정수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 연약해 보이는 머리카락은 얕은 바람에도 펄럭이며 만약 그것에 파마약이라도 묻는다면 제초제가 뿌려진 연약한 풀처럼 금세 녹아버릴 것 같았다.


  삼십 대 중반에 나와 결혼을 했으니 그의 머릿가락의 손실 속도는 이미 제법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신혼시절 어느 날 나는 소파에 앉아 있고 그는 바로 앞에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어 TV를 보고 있었다. 뒤에서 누가 콕콕 찌르기라도 한 듯 그는 힐끗 내쪽으로 돌아다보았다. 나는 무슨 할 말이 있나 해서 고개를 갸우뚱하여 바라보았다.

 

"와. 무슨 콧바람이 이렇게 세냐, 나는 손으로 머리카락 만지작거리는 줄 알았다. 하하"

"무슨 머리카락이 매가리가 없어서 콧바람에도 휘날리냐?"

"당신 콧바람이 장난이 아니야, 옆에서 자면서도 고개를 젖히고 자는 바람에 콧바람이 나한테 다 와서 내가 얼마나 추운지 몰라."

그는 추위에 떠는 시늉을 하며 진저리를 쳤다.


이때만 해도 나의 머리카락은 그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큰 아이를 낳고 머리카락을 자르기 전까지 내 머리카락은 등을 충분히 덮고 있었다.  백일쯤 된 큰 아이가 오밤중에 깨서 칭얼댔다. 자다가 깬 나는 한쪽 눈을 겨우 뜬 채 아이를 안고 얼른 젖을 물렸다. 아이가 젖을 빠는 동안 나는 등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차! 머리 묶는 걸 깜빡했네......'


 나의 머리카락은 홑겹이불이 아니라 솜이불 같았으며 바로 뒤에서 장작불을 는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을 묶기 위해 한참 젖을 빠는 아이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더워 죽겠다....... 등에서 불 때는 것 같아.....'

'사람 머리카락이 이렇게 보온성이 좋은데 왜 인모 코트나 스웨터는 없지?'

그때 내게 각인된 사람의 머리카락이란 '최고 보온성이 좋은 털'이었다.  


 40세가 넘어가면서 얼굴에 기름기와 함께 나는 어느새 머리카락을 하나둘 떠나보내고 있었다. 사실 출산 후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상이 있었지만 다시 회복될 것으로 착각하는 동안 그것들은 다시 내게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신도 머리카락 좀 심어야겠다. 와 휑하다 휑해."

얼마 전 그가 머리카락 이식 시술을 했다. 누가 누가 더 휑한가 경쟁하던 나와 그의 정수리는 그가 머리카락을 심으면서 확실히 내가 더 휑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무감각했다.

"됐고, 빌라나 열심히 끌어당기셔."

"뭘 당겨?"

"아무것도 아니야."






 샴푸 때마다 욕실바닥의 블랙홀로 쏠려간 머리카락들이 남아있는 것들에게 유언을 한 듯 아직은 똘박 하게 두피에 박혀있는 녀석들은 이 사람의 모든 집중력을 자기들에게 쏠리도록 조종을 하는 모양이었다. 



 몇 해 전 아버님 산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갑작스럽게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차가 산소 입구에 들어서면 가슴이 찡해짐과 함께 경건한 마음가짐은 물론 차 안의 분위기를 일부러라도 더 무겁게 만드는 게 암묵적 약속처럼 하던 때였다.


 남편은 삐죽삐죽 자란 잡초를 다듬으려고 긴 가위를 꺼내 들었다. 나는 1미터쯤 떨어져 서서 자그마한 비석 주변의 잡초를 다듬는 그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았다. 


 저녁에 남편에게 영상을 보여주자 남편은 가만히 영상에 집중했다. 그는 갑자기 '아이구야아아!' 했다. 나는 신성한 곳에서 무슨 영상을 찍고 있냐라는 의미인 줄 알고 약간 긴장이 되었다. 화면을 집중하여 주시하던 남편은 또 '큰일이네, 큰일이야!' 라며 또 한탄을 했다.

 

 나는 빤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다시 '다 빠지고 없네.....'라며  중얼거리는 남편의 시선이 어디로 향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그 탄식의 의미를  깨달았다. 


 쪼그려 앉아 잡초를 정리하던 영상 속 자신의 정수리 부분을 조심스럽게 두 손가락을 이용해 확대를 하며 동시에 점점 절망하는 그의 눈빛은 마치 슬픈 짤을 감상하는 것처럼 애처로웠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초라한 모습의 정수리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나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는 긍정의 소유자답게 거울에 비친 바람 빠진 볼에 크림을 바르며 조용조용히 말했다.

"뺀뺀해진다. 뺀뺀해진다."


 

 남편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잘 모른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까지 했다. TV에서 의사들이 나와서 '꼭 낫는다'라고 믿는 암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회복력이 좋았다고 설명을 한 내용을 말해주자,

"아휴, 다 죽게 생겼는데 무슨 낫는다고 생각을 해? 그게 어렵지."


 나는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대신 저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이 가도록 내가 긍정 파워를 끌어당겨다가 주입시키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내 경험상 끌어당김의 법칙은 주변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것이 확실했다. 내가 이 동네를 끌어당기는 상상을 하니까 저 사람이 혼신을 다해서 끌어당겨 아파트를 계약까지 했더랬다. 게다가 빌라까지 짓고 싶다고, 자신도 모르게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내가 끌어당기는 영향을 고스란히 내려받고 있었다.



'같이 사니까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같이 받게 되는 거 같아. 괜히 부부겠어?'

 우리 가정의 재산증식은 다 내가 끌어당김을 하는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난 SNS에서 본 탈모에 좋다는 수제 에센스를 만들었다.  

"내가 해보고 효과 있으면 당신도 뿌려줄게. 이식 후에도 탈모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며? 약은 왜 안 먹는 거야?"

"....................."

"내 콜라겐이라도 챙겨 드시든가."

남편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수제 에센스에 대해서는 그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그게 될 것 같았으면 이 세상에 탈모 환자 없겠다. "

"그렇지가 않아. 사람들은 대부분 시도조차 하지를 않아. 왜? 자기처럼 의심을 하니까.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효과를 볼 일은 당연히 없지!"


 남편은 모발 이식으로 단 몇 달 만에 휑한 정수리애서 덜 휑한 정수리로 승격을 하게 되었다. 의사는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위해 탈모약을 복용하기를 권했지만 남편은 엉뚱한 이유를 대며 약복용을 꺼려한다.


"돈 들여 귀한 머리카락 심어놓고 관리 못해서 또 빠지면 어떡해?"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의 또 다른 끌어당김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가 왔다.


나는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서리태를 사다가 SNS에서 본 대로 푹푹 끓이고는 그 물에 커피와 소금을 넣어서 마법의 탈모 에센스를 만들었다. 그것을 분무기에 담고는 진한 핑크색 수건을 머리띠처럼 둘러 동여맸다.


거울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와~ 당신은 진짜 마누라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만났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머리카락까지 같이 끌어당겨준다. 이런 마누라가 어디 있냐? 당신 진짜 복이 터졌다, 복이 터졌어!'


나는 우리 부부의  머리카락을 끌어당겨줄 그  에센스를 정수리에 칙칙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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