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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Apr 30. 2023

책을 갖고 튀어라

결국 그들은 CCTV 영상을 확인하기로 했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여자가 책을 들고 도서관 출입문 쪽으로 가는 장면이 나왔다. 문 가까이 다가가자 삐삐 소리가 나고 여자는 잠시 멈칫 하지만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간다.

응?

사서들은 자기네들끼리 얼굴을 마주 본다. 다시 영상으로 눈길을 돌린다.



 여자는 도서관 정문 밖에 서있다. 밖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와! 저 책 좀 보세요! 이왕 가져갈 거 두꺼울 걸로 골랐네!"

여자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책은 꽤나 두꺼웠다.

거의 새책이라 당근에 팔아도 새책과 많이 차이 나지 않는 선에서 값을 받을 수 있다.



 여자는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달리기 시작한다.

"어어어어!! 뛴다! 뛴다!"

"저 방향이 어느 아파트 쪽이더라?"




 사서 중 한 명은 스마트폰을 켜고 네이버 지도를 실행한다.

"저쪽으로 가면 OO아파트, XX아파트 나오는데요?"

여자가 달리는 방향을 응시하려 했지만 이내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이제 어떻게 하죠?"

 사서들은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개설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이 도서관은 책이 많이 없었다. 책장 칸칸마다 책이 놓여 있는 공간보다 빈 공간이 더 넓었다. 책은 당연히 모두 새책이었다.




여자가 집어간 돈키호테는 그 두께가 어마어마해서 휑한 책장을 더 허전하게 만들었다.

"이 아주머니 어디에서 찾는담?"

그들은 한숨을 쉬고 각자 자리로 돌아간다.




아마도 이럴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와 점심을 먹었다. 중3인 아이는 생리 결석 처리를 하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시험 직전이라 자습을 시킨다며 집에서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세상 정말 좋아졌다.  물론 지난달처럼 진짜로 생리중은 아니었다.  아이는 밥을 먹으며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돼 있었다.  




눈이 갑자기 동그래진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생리결석을 한애가 다섯 명이나 된대. 선생님이 조금 화가 나셨다네...... 오늘 생리결석 한 애들은 5개월 동안 생리결석 허용 안 해주겠대. "

" 야. 그럼 진짜로 생리를 해서 결석한 애는 억울하잖아?"

내 아이는 억울할 게 없었다. 나와는 달리 생리통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 것이 유전이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제 내가 말할 차례인가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엄마가 예약한 책이 왔다길래 아까 도서관에 갔었어.  책이랑, 보고 싶어서 고른 책이랑 대출을 했지. 도서관에서 나가려고 정문 앞에 다가가는데 삐삐 거리는 거야."

"응? 왜?"

"나야 모르지. 다시 돌아가서 얘기하기도 귀찮고 일 준비를 해야 하기도 해서 그냥 문 열고 나왔어."

아이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신호등에 초록불이 깜빡깜빡하더라고. 냅다 뛰었지."






나는 달리면서도 그들 중 하나가 쫓아올 것 같다는 재밌는 상상을 했다. 길을 건너고 걸어가면서 도서관 사이트에 로긴을 했다. 지금 들고 있는 책이 대출현황 목록에는 뜨지 않았다. 시스템이 맛이 갔나? 하고 생각했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 한창 수업 중에 책 내놓으라고 집에 찾아오기라도 하면 어째?"




그들이 집에 찾아오는 것이 불가능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20여 년 전 이 카드 저 카드를 돌려 막기를 하며 생긴 빚은 삼백만 원에 달했다. 자격증 하나 따보겠다고 거금을 들여 학원에 덜컥 등록을 했는데 그 이후로 내가 다닌 회사는 도미노처럼 망했다.


잘 알아보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지금처럼 직원 입장에서 기업을 평가하는 어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곳이 일명 '좋소'인지 알 길이 없었다. 망할 회사를 골라 간 건지 내가 들어가서 그 좋소가 망한 건지 것도 모르겠다. 사장 놈은 급여일을 미루다가 회사문을 닫았다. 내 돈의 행방도 같이 사라졌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 달에 40만 원씩 적금을 부었지만 그건 엄마가 관리를 하셔서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돈이었다. 어디까지나 내 능력의 부족이었다.



백수가 되는 기간에도 가속도가 붙는지 좋소에 들어갔다가 사장이 튀기까지의 기간이 점점 짧아졌다. 돈을 값으라는 독촉장에는 내가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가끔 엄마에게 버스비를 빌려 집을 나섰다. 또다시 백수가 된 어느 날 아침부터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돈이 들지 않아서 시간 때우기에 좋았다.




저녁때가 돼서 집에 돌아오자 부모님이 물으셨다.

"니 왜 카드빚 있는 거 얘기 안 했나?"

"아! 그거 월급이 계속 밀려서 그랬어. 조금씩 갚고 있었어.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침에 카드 회사에서 사람 두 명이 왔었어. 카드 대금이 얼마냐고  했더니 본인이 아니라서 금액은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한 삼백만 원 되니?"

엄마는 귀신같았다.



것보다 카드회사에서 집에 찾아왔다는 나에게는 더 충격이었다. 정규 TV채널에 광고가 나오는 대기업 카드사였다.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얘기를 했더니 '진짜?' 라며 내게 사채 쓴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 나는 엄마의 도움으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가까스로 피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 찾아왔던 카드사 직원은 우리 집 근처에 다른 업무로 왔다가 시간이 남아서 한번 찾아와 본건 아니었나 싶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정말 두꺼웠다. 어릴 때 동화책으로 짧게 줄인 것만 보았지 원래 두께가 이 정도 인지는 전혀  몰랐다.

"엄마 도서관책 집어갔다고 지명 수배 될 수도 있어."

된장국을 뜨던 아이는 푸하하 하고 웃는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시스템에 잠시 오류가 생겼을 것이다. 내일  도서관에 전화해서 빌린 책이 대출 목록에 뜨지 않는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을 마치고 밤이 되어서 다시 도서관 웹사이트에 로그인을 해보았다. 대출 목록란에 아까 대출받은 책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었다. 도서관이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할 일이 없다.

사람이 찾아올 거라는 걱정도 접어 두었다.




나는 왜 쓰는가

반납예정일 : 2023년 5월 00일


돈키호테

반납예정일 : 2023년 5월 00일



두께에 비해 책값이 전혀 비싸지 않다. 보통 소설책 두께 두 배에 달하는 책이 만오천 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독자 입장에서는 가성비 갑 책이다. 독서 좀 하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또 좀 있어 보이도록 책장에 구비해 두어도 안성맞춤일 책이다. 게다가 표지도 너무 예뻐서 가끔 표지를 보고 책을 집는 내 취향에도  정말 사랑스러울 정도다.




예쁜 아이보리 빛깔의 표지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와! 글자도 엠보싱엠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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