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9
나는 할머니의 불같은 성질에 대해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도 곧 잘 흉을 보곤 했다. 친할머니나 외할머니 모두 비슷했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양쪽 어느 누구한테도 예쁨을 받았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 대단했던 성질도 조금씩 누그러질 테지만 양쪽 할머니는 그 성질이 누그러지는 것을 경험하시기 전에 돌아가셨다.
친할머니는 막내 녀석을 귀히 여기느라 나를 뒷전으로 만들었고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20대 시절 가끔 막내 이모네 집에 놀러 가면 이모의 아들을 봐주러 오신 외할머니의 무심코 내던진 한마디에 내 입술은 곧잘 일그러지곤 했다. 조카뻘 되는 이모의 어린 아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시끄럽다며 소리를 쳤다.
"야 이년아! 그래도 얘가 너보다 낫다!"
나는 이 노인네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무엇이 나보다 낫다는 것인지 따져 들고 싶었지만 나보다도 목소리가 크고 만약 몸싸움을 하더라도 내가 한참 밀리게 만드는 할머니의 덩치는 나를 위축하게 했다. 지금의 내 덩치로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나의 왜소했던 젊은 시절은 사납게 짖어대는 치와와 같았다. 할머니가 진짜 화가 나셔서 나를 들쳐 매고 엎어치기를 한다 하더라도 불가능할 것은 아니었다.
'할마씨들 성질이 그 모양이니 영감들이 일찍 돌아가시지. 쯧쯧'
그 피가 어디로 갈까. 양쪽 할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또 만약 손주들 중에 누가 가장 버릇없고 까탈지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두 분은 아마도 나를 지목하실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가 화가 나셔서 호통을 치실 때 나는 지지 않으려고 대들었다. 게다가 내가 세운 기준에 벗어나는 일이 생기면 그 대상이 누구 건 나는 쉽게 짜증을 내곤 했다. 한 번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할머니의 친구분이 놀러 와 계셨다. 할머니와 친구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내 방에 들어갔다. 내 책상 위에는 스웨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다른 사람의 물건이 놓여 있는 것을 참지 못했다.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바닥에 내던지며 할머니한테 소리쳤다.
"할머니! 왜 내 책상에 옷을 올려놔!"
두 분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은 다물지 못한 채 계셨다.
엄마 아빠는 나의 이런 성질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밤에 화장실을 가려고 거실에 나왔을 때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엄마 아빠의 심각한 대화를 듣게 되었다.
"애가 너무 신경질적이야."
나는 아빠가 무슨 마법에라도 걸려계신 게 아닌가 생각했다. 지금 살고 있는 엄마가 성격이 온순한 것으로 인지를 하고 계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집안 여자들의 불같은 DNA를 온전하게 물려받은 나름의 피해자였다.
TV에서 어린이 영양제 광고가 나오면 종종 들리는 멘트가 있었다.
'신경질적인 어린이!'
몸이 마른 아이들이 쉽게 예민하며 그로 인해 성격이 신경질적으로 된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 엄마는 내게 보약을 먹도록 했다. 그 약에는 어떠한 효능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성질은 이 집안 여자들의 그것과 어울리도록 변함이 없었다. 보약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나의 지랄 같은 성질은 누그러지지 않고 대신 살만 쪘다. 짖어대는 치와와에서 살이 오른 프렌치 블도그가 되어갔다. 그 프렌치 불도그 또한 성질이 남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