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의 고수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0

by 쓰는수 이지수

"엄마.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어디를 다닌 거야?"

할머니는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를 데리고 당신의 고향 마을을 자주 방문했었다. 이미 할머니가 되신 연세에 나의 증조할머니가 되시는 분이 살아 계실리는 없고 어디를 그렇게 다니신 건지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할머니 동서네를 놀러 간 거지."



나는 다른 형제들이랑 다르게 어릴 적에 기차 여행을 많이 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성가실 만도 할 텐데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답답한 도시를 떠나 고향인 충청도의 어느 오지마을을 향해 자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역에 내려서도 하루에 한두 번 탈 수 있는 버스를 타고 마을 근처의 정류장에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내 기억에는 항상 같은 집을 방문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때는 논밭을 한참 가로지르는 여정이 포함되었고 어느 때는 산길을 걷는 적이 있었으며 또 어떤 때는 시냇물을 건너는 때도 있었다. 매번 고된 여행이었지만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분홍색 장난감 바이올린을 다른 용도로 휘두르는 모습을 안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필 그 집은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시냇물을 건넜다. 징검다리는 내게 쉽지 않았다. 흔들흔들 거리는 것을 용기 있게 내디뎌야 했고 발이 미끄러지기 전에 얼른 미끌거리는 돌에서 신발을 떼내야 했다. 엄마가 사주신 공주 구두는 돌다리에 더 취약했다. 시장 바닥을 누비고 다니면서 나름 거친 삶을 지냈던 나였지만 돌다리를 건너는 것은 극기훈련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을 땅따먹기 게임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내가 그어놓은 선에서 벗어나 버리면 나는 물에 빠지게 되었다. 초겨울이라 물은 차가웠다. 고무신을 신은 할머니는 나보다 유리했다. 할머니는 이런 돌다리를 자주 건너보신 듯했다. 쪽을 진 할머니의 머리는 전력 질주를 하려고 뒤통수에 질끈 묶은 운동선수의 꽁지머리 같았다. 나는 쪽을 질 수도 머리를 묶을 수도 없었다.



엄마는 셋이나 되는 딸들의 머리 손질이 부담스러워 일정한 기간이 되면 딸들을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짧게 커트를 해버렸다. 머리를 질끈 묶었으면 더 용기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머리를 쪽진 할머니와 자그마한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는 그렇게 돌다리를 건넜다. 쪽진 머리의 기운이 작용한 것처럼 할머니는 돌다리를 다 건넜고 나의 공주구두는 돌다리 한쪽에 보송보송 난 이끼를 딛고 마침내 중심을 잃었다.




한창 꽃이 만발할 무렵 할머니와 나는 또 다른 친척집에 머물렀다. 그 집에 있는 동안에는 동네 아이들과도 어울렸는데 나보다도 얼굴이 까맣고 촌스럽다고 생각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가끔 우월감을 느끼곤 했다. 그 촌티 나는 아이들과 마당을 뛰놀며 내가 지어낸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대장 노릇을 했다. 아이들은 나를 따라다니고 나는 그 애들에게 무슨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장 노릇도 얼마 가지 못했다. 그날도 흙먼지가 날리는 넓은 마당에서 내가 작곡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놀고 있었다. 할머니와 그곳 주인 할머니는 함께 마루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마당 한쪽에 꽃밭이 있었는데 마치 제대로 조경을 한 것처럼 화려하고 예뻤다. 아마도 그곳에는 흙이 있었으니까 꽃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나는 집에서는 본 적이 없는 예쁜 꽃들을 바라보며 눈 호강을 하고 있었다. 윙하고 허공을 날던 곤충이 꽃 위에 앉았다. 꽃 위에 앉아 있는 것은 자그마하고 예뻤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그맣고 동그란 것이 예뻐서 탐이 났다. 그것을 잡아서 손에 올려놓고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꽃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그것을 손으로 잡았다. 순간 그것은 바늘로 찌르듯 엄청난 충격을 주며 손가락 끝에 붙어버렸다. 나는 놀라서 악 소리를 지르고 손을 털며 울기 시작했다. 나의 촌 아이들도 놀라서 내 주변을 에워쌌다. 두 할머니가 내게 달려오셨다. 주인 할머니는 부엌으로 뛰어가시더니 숟가락을 갖고 나오셨다. 한 장독에서 누런 것을 떠서 내 손가락에 발라주셨다.



나를 향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또다시 커졌다.

"니는 벌도 모르나? 그걸 왜 손으로 잡나?"





그날의 기억은 화상 수업 중에 티끌만 한 수업 도구가 되었다. 곤충 이야기가 나오는 시간에 벌은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었다.

ㅡ 캔 유 터치 잇?

그 따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화면 속 아이에게 한마디 한다.

당연하다는 듯 화면 속의 아이는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거나 '노'라고 대답을 했다.





나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촌아이들에게 그럴듯한 변명을 해야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이런 게 없다고 해야 할까? 우리 집에는 꽃이 없어서 벌을 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런 변명을 할 여유도 없이 할머니와 나는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나는 땀이 나는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그럴 때마다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서는 꼬릿꼬릿한 된장 냄새가 더운 공기와 함께 주변을 살랑거렸다.




할머니의 여행 메이트는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 나보다 2살 위인 큰집의 언니를 데리고 다니다가 언니가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자 그 바통은 내게 넘겨졌다. 할머니가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그 바통은 줄줄이 소시지 같은 손녀들에게 차례로 이어지고 마침애 막내 녀석이 이어받았을지 모른다. 손녀를 데리고 다닐 때보다도 더 자랑스럽게 녀석을 데리고 다녔을 할머니. 벌에 쏘여 손주가 우는 모습을 보고 주인 할머니보다 더 빨리 된장을 떠서 달려오셨을 할머니. 할머니의 그런 소망은 부지깽이처럼 잠깐 뜨거워졌다가 이내 사그라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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