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 미소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1
할머니와의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어느 익숙한 나무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같은 제복을 입은 아저씨들 중 한 아저씨가 내게 빵을 주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빵을 먹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또는 무심하게 앉아있었다. 곧 익숙한 얼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분은 지수야! 외쳤고 나는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른 채 멀뚱멀뚱 그 나이가 지긋하신 분을 바라보았다.
"얘 큰아버지입니다."
나는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아빠는 멋쩍게 웃으며 큰아버지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나는 큰아버지에게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도 안 하고 Tv만 보고 있었다.
"파출소에서 애를 왜 흘리고 다니냐고 얼마나 야단인지 몰라. 처음에 그러고 나서 두 번째부터는 애 찾으러 가지를 못하겠더라고. 또 혼날까 봐."
엄마는 그저 짤막한 코미디 프로의 웃긴 장면을 전하듯 그때의 일을 말씀하셨다.
"애가 어찌나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지 어린것들이랑 낮잠 좀 재우려고 같이 누우면 어느새 내가 먼저 잠이 들어버리는 거야. 일어나 보면 벌써 어디로 내빼고 없어. 애라서 총총총 뛰어가잖아. 금방 뒤따라 나가봐도 찾을 수가 없어."
나는 매번 어느 친절한 시민의 도움으로 파출소로 인계되었고 운 좋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누가 저 찾으러 파출소에 들어오면 반가워서 와락 달려와 안겨야 하는데 얘는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더래"
엄마는 본인의 부주의로 인해 아이를 잃어버린 사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듯 그저 <미워도 다시 한번>급의 눈물 어린 상봉쇼가 이루어지길 기대했었나 보다. 그것은 잠시 잃어버린 조카나 손녀딸을 데리러, 대신 발걸음을 한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순수한 어린아이의 감정으로 퉁치려는 속셈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빤히 보였고 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이미 눈치라도 챈 것처럼 더더욱 뚱하게 앉아있었다. 마음 한편에는 내가 이 나무의자에 앉아 엄마아빠를 기다리는데 정작 와야 할 사람들은 안 오고 왜 엉뚱한 사람들이 왔나 하는 당혹감이 있었다.
그 순간의 기억은 낡은 흑백사진처럼 흐릿하면서도 상대의 표정만큼은 선명했다. 그들이 나를 찾으러 파출소에 들어오는 순간 잠시 문 앞에 서서 나의 반응을 살피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했을 이벤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내 표정은 언제부터 굳어 있었을까. 불필요한 말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불필요하게 웃지도 않았다.
20대 초반 벼룩시장의 구인광고란을 뒤적거리다가 <급구 -타이핑 업무 아르바이트생모집 >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집 근처의 전기학원이었다. 수업 때 나눠주는 프린트물을 타이핑하는 작업이었다. 나보다 먼저 들어온 동갑내기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는데 자기는 전문대 토목공학과를 나왔다고 했다. 타이핑 업무와는 무관한 전공과목이었지만 전기와 관련한 특수 기호가 들어간 내용에서 오타를 발견하는 능력을 종종 발휘하기도 했다.
그녀는 토목공학과를 나온 것에 대해 나에게 으스대듯 말했다.
"나 나온 학과가 토목공학과잖아. 그거 알아? 그런 과는 남학생이 90프로야. 대학 때 나 완전 공주였어. "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근무한 지 며칠이 지났지만 그 애의 얼굴을 자세히 본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과 들어간 거 아니었음 어쩔뻔했니?' 하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나는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고 키보트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것도 잘 웃어서잖아. 근데 너는 왜...." 그녀가 망설였다.
"웃지를 않니?"
나는 순간 뭔가 웃긴 일이 있었나, 좀 전에 공주 이야기가 웃기려고 한 말이었나 기억을 더듬었다. 사무실을 들어와서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웃긴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누가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없었다. 나는 그 애를 돌아보지도 않고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며 물었다.
"뭐가 웃긴데?"
미아나 고아가 될 팔자는 따로 있나 보다. 나는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으면 분실물 센터에 안전하게 맡겨진 그것처럼 나무 의자에 앉아 잠깐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누군가가 나를 찾으러 오고 그 누군가를 따라갔다가 다시 나무의자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세 번째로 분실물을 찾으러 온 이는 다름 아닌 할머니였다.
큰아버지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또 나무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가 할머니인 줄은 알았지만 내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엄마아빠는 순경한테 혼날까 봐 날 찾으러 파출소에 오는 것을 꺼려했고, 아마도 큰아버지와 할머니는 뜨뜻미지근한 아이의 반응에 그 성가신 심부름이 더 재미가 없어졌을 것이다. 내가 또 사고를 치면 엄마아빠는 파출소에 대신 보낼 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네 번째 타자가 누가 됐을지는 모르지만, 또 나의 뚱한 반응에 적잖이 상처받을 누군가를 위해, 나는 선수를 치듯 네 번째 사고는 치지 않았다. 사실 네 번째 사건이 터지면 나를 찾으러 아무도 파출소 문을 열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분실물을 자처하는 일은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
화상 설루션의 하얀 바탕에 beautiful 단어가 나왔다.
"선생님이 뷰티풀이에요!"
"아니지, 우리 OO이가 더 뷰티풀이지!"
화면 속의 나는 언제나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업무 규정에도 밝은 표정을 지으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표정 때문에 평가 점수가 깎였다는 동료는 아직 보지 못했다. 무표정한 얼굴에 당황할 화면 속 아이를 위해 입꼬리를 올리고 대기하고 있다. 하와유 하와유 노래가 시작되면 나는 손을 흔들며 더 활짝 웃는다.
저렇게 밝은 미소를 그날 파출소에서는 짓지 않았다. 기다리는 나를 데리러 와준 이에게 짓지 못한 미소를, 40년 가까이 코미디 프로를 볼 때만 냈던 웃음소리를, 나는 내 수수료를 올려주는 화면 속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네모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던 모습처럼 화면 속 네모난 칸에 얼굴을 내민 나는, 아래쪽 네모칸에는 큰아버지와 할머니를 차례로 넣어본다. 파출소 문을 열고 나타난 얼굴은 그들의 젊은 시절 그대로다. 내가 헬로 하며 활짝 웃으면 그들도 활짝 웃는다. 어느 순간 화면이 흐릿해진다.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내 입가 옆으로 짭짤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곧 내 턱에서 똑 하고 떨어지며 화면이 또렷해졌다. 그들도 이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