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났어, 정말!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2

by 쓰는수 이지수

미팅 15분 전이다. 평소에는 느긋하게 하던 빨래도 부지런히 세탁기 안에 던져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로션을 찍어 바르는 손이 바쁘다. 커피포트를 눌러놓고 컵에 인스턴트커피를 담았다. 셔츠 소매에 팔을 끼운다. 화장실로 걸어가며 셔츠의 단추를 채운다. 화면에는 가슴 위쪽만 나오니 아래는 파자마 차림 그대로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도 못 챌 작은 귀걸이도 해본다. 머리 한쪽을 질끈 묶어 귀 뒤로 넘기고 반대편 머리카락은 가슴 앞쪽으로 늘어뜨린다. 일을 할 때는 아래쪽은 산부인과에서나 입을 만한 일명 월남치마를 걸치고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각이 잡힌 셔츠나 어깨에 뽕이 들어간 블라우스로 상대의 눈을 만족시킨다. 그 상대라는 것은 내 얼굴 옆에 위치할 아이일 수도 있고 나의 영상을 지켜볼 누군가이기도 했다.





몇 달 전부터 센터장을 모집하는 공고가 회사 온라인 게시판에 있었다. 내가 계약직으로 몸담고 있는 회사는 사업을 문어발 뻗치듯 잘 늘려나갔고 마침내 지방의 어느 대도시에 센터가 하나 더 생겼다. 나는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들고 책상 앞으로 갔다. 컴퓨터를 켰다. 카메라가 켜지고 교사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었다. 모판 같은 모양의 화면에 다양한 얼굴들이 가득하게 자리를 잡는다. 어느 한 모판에 눈길이 간다.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그 교사는 러닝머신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다른 교사의 사운드바가 위아래로 요동친다. "재건축 때문에요. 맞아요. 네네!"

교사들은 무표정하게 그저 듣고 있다. 어느 교사가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고 신나게 통화 중이다. 음악 소리가 나올 때는 그래도 듣기가 괜찮았다. 미팅 진행자가 마이크를 음소거할 것을 지시하고 미팅이 시작된다.




"안녕하십니까? OO센터장 OOO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새로운 센터의 센터장은 50대 중반쯤 보이는 남자분이었다. 분명 센터장 모집 공고의 자격요건 중 하나가 관련 분야 종사자라고 했는데 나는 센터장이 남자라서 좀 의아해했다. 단순히 학습지 회사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는지 아니면 이 집 저 집 다니며 학습지 선생을 해보았는지 그 경력은 소개하지 않았다. 내가 이 일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 한 가지는 어린이들을 상대하는 회사에서는 다른 여러 가지 능력보다도, 아이를 예뻐하는 교사를 가장 우선시하고 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사 모집 과정에서 중고생만 가르쳐본 지원자가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후문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스펙이 대단하다는 선생들 사이에서도 전혀 기죽을 이유 없이 이곳에서 시조새가 되어가고 있다.





"잘났어, 정말!"

막내 녀석 앞에 앉은 선생님도 남자선생님이었다. 당시 유행하는 잘났어 정말을 연발하며 버릇없게 구는 아이 앞에서 선생님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속마음은 주먹으로 아이의 머리통을 갈기고 싶었겠지만 집안일을 하며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엄마를 보며 선생은 꼭 쥔 주먹을 상 밑에 두고 화를 삼키고 있었다.

"잘났어, 정말!"

틀린 것을 선생이 지적하자 녀석은 또 유행어랍시고 입을 놀린다. 금방 가르쳐준 내용은 틀려도 이 말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것쯤은 녀석도 알고 있다. 엄마는 어린것이 유행어를 쓰는 게 귀엽다는 듯 학습지 선생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고만 있었다.






"어린애들 가르치려면 애를 구슬릴 줄도 알아야지, 애가 좀 철없이 굴었다고 같이 성질을 내냐?"

선생님이 나가면서 엄마는 입을 삐죽거리며 선생님의 인내심이 부족한 것을 탓했다. 그저 아들 녀석이 뭐라 하든 엄마의 기준에 선생님은 아이를 예뻐해야 하는 존재였다. 남의 집을 떠돌아다니는 학습지 선생의 경우에는 더욱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려고 집에 온 학습지 선생님이었지만 엄마의 눈에는 한낱 잡상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말 잡상인답게 큰 가방에는 묵직하고 무언가가 가득했다.




선생 타이틀을 단 잡상인 앞에서 예의를 차릴 필요도 없었고 그 잡상인이 내 자식을 타이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노릇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 모습은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와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학습지 선생님이 집을 나선 이후에 이 문제에 대해 엄마에게 따지고 드는 것은 별로 무의미했고 선생님이 함께 한 자리에서는 나는 당연히 엄마 편이 되어야 했다.





유행이라는 것은 돌고 도는 법인데 그런 유행어가 요즘 다시 돌고 있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자칫 그런 종류의 유행어가 있다면 그런 말을 침 뱉듯 툭 던질 아이들이 내 주변에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었다. 유행어 대신 아이는 어느 특정 손가락을 사용하여 욕을 하기도 하고 곁에서 지켜보는 엄마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화면에 글자로 버릇없는 언어를 쓰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돌쟁이 아기를 타이르듯 부드러운 말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오른쪽 상단의 빨간 점이 나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그 빨간 점은 엄마의 날카로운 입이기도 했다.

"어린애들 가르치려면 애를 구슬릴 줄도 알아야지!'





또 다행스러운 것은 내 엄마 같은 성향의 학부모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최소한 내 회원 중에는 말이다. 손가락을 슬그머니 치켜들어 내 간담을 서늘하게 한 아이는 4학년 짜리 여자 아이였다. 마치 공포영화의 무서운 장면처럼 나는 의자를 뒤로 밀어 모니터에서 좀 더 떨어져 앉았다. 내가 제시하는 단어를 쓰거나 알맞은 답에 표시를 하려면 학습 패드에 얼굴을 저렇게 가까이 대고 있을 수는 없는데 아이는 얼굴이 화면에 닿을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 무슨 심한 욕을 하기라고 할까 봐 나는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한 줄인다. 장난을 하고 싶은 건지 내게 겁을 주려는 건지 아이의 행동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아이를 또 볼 자신이 없다.





'어린애들 가르치려면 애를 구슬릴 줄도 알아야지!'

그때 엄마에게 따져 물어야 했다.

'애새끼도 애새끼 나름이지!'

일주일에 1회 수업이라 다음 수업까지는 여유가 있다. 나는 결국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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