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3
C는 오늘도 나를 개무시하며 화면 앞에 앉아만 있다. 조금 부족한 아이였으면 그러려니 하고 짧은 시간 대충 때우고 화면에서 사라지면 됐지만 저 아이는 모자란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똘똘하고 밀린 학습 없이 규칙을 지키는 아이 같다. 내 시간에도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내가 '쓰세요'하면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더니 선심 쓰듯 빈칸을 능숙하게 채우고 다시 제 할 일을 한다. 화면 안으로 주먹을 쑥 내밀어 저 자그마한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어 진다. 30여 년 전 막내 동생 학습지 선생님의 감정이 내게 덧씌워지는 기분이다.
나는 갑작스럽게 마이크의 볼륨을 최대한 높였다. 그리고 목청 높여 소리쳤다.
"수업에 들어왔으면 딴짓하지 말고 들으세요. 딴 거 하지 말고!"
아이는 갑작스러운 소음에 흠칫 놀라며 하던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나 때문에 난 화를 참는다는 듯 어깨를 크게 들썩거리며 눈을 깔고 있다.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학부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이 두 번째다. '수업에 들어왔으면 제발 딴짓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아이에게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아이의 엄마는 답이 없다. 그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아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다음 메시지에는 이렇게 쓰고 싶었다. '어머니, 우리 엄마도 저 어릴 적에 집에 온 선생님을 학습지 선생님이라고 개무시했었거든요. 근데 제가 지금 이러고 있네요. 호호호'
어느 날 B가 수업 시간 변경을 하며 내 리스트에서 빠졌다. 난 그 아이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클릭하여 '배정 가능'을 설정했다. 그 자리에 다른 아이가 채워졌다. 아주 개구쟁이였다. 시간을 바꾸면서 교사도 함께 변경된 케이스였다. 처음부터 활달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는 끝나는 음악과 함께 본색을 드러냈다. 손가락을 제 양 볼에 갖다 대고 나를 바라보며 메롱 메롱을 신나게 해댄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타이밍을 잘도 잡는다. 기분 같아서는 괴상한 표정까지 지으며 똑같이 메롱 메롱을 해주고 싶었지만 화면에서 나갈 때까지 빨간 점은 에누리 없이 나의 모습을 영상에 담고 있다. 꼭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나이에 어린아이와 똑같이 굴 수는 없었다. 저 엄마보다도 나이 많은 화면 속 아줌마가 메롱메롱하는 모습은 아이도 아마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제기랄.
나는 알파벳을 떼라고 매번 면박을 주었던 B가 생각났다. 알파벳을 몰라도, 좀 느리게 가더라도 아이는 참 순하고 착했다. 똘똘하다는 동생이 수업 중인 형 뒤에서 장난을 쳐도 아이는 그저 착한 곰처럼 웃기만 했다.
'걔는 예의가 바르고 착했는데. 동생이 옆에서 가르쳐준 날도 그냥 모른척해줄걸.'
그 메롱 메롱의 남은 수업 일수를 확인해 본다. 앞으로도 계속 메롱 메롱만 하면 다행이지, 그 장난은 더욱 진화할 것이다. 1년도 넘게 남은 수업 일수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