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 가능!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4

by 쓰는수 이지수

손가락을 이용해 나에게 욕을 했던 아이의 어머니는 내 전화를 받고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의례 간간이 걸려오던 상담 전화인 줄 알았지 아이의 만행을 전해 듣는 시간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엄마는 아이가 그렇게 된 이유가 자신의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통화가 길어지는 것이 지루했다. 헤드폰을 귀에서 떼어 목에 걸쳤다. 시선은 서브 모니터의 멈춤 상태로 있는 유튜브 영상에 꽂았다. 영상을 음소거를 하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선생님이 바뀌면 아이들이 너무 상처를 받아요."

이 회사와 계약을 하기 전 들었던 얘기다. 예전에도 면접을 볼 적마다 줄곧 들었던 레퍼토리다. 하지만 그 회사들은 제가 적응을 할 때쯤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에서도 화상 수업 교사들이 웬만하면 오랫동안 근무할 것을 권했다. 면접 볼 때는 어느 한 사람 빠짐없이 포부가 대단했다. 여러 명의 회원을 동시에 케어할 수도 없고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었지만 높은 금액을 제시하고 희망연봉이라며 스스로 희망고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교사들은 자신의 성격과 이 업무가 맞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동료 교사끼리 모인 카톡방에서는 불이 났다.

'샘! 애가 말을 안 해요. 얘 어떻게 해야 돼요? 엄마가 전화도 잘 안 받아요.'

'샘! 이 엄마 메시지에 불평불만 얘기하면서 느낌표를 따닥따닥 붙어 놓은 거 좀 봐요! 이거 이상한 사람 맞죠?"

메시지를 캡처한 사진도 같이 올라왔다. 문장 끝마다 느낌표가 50개씩은 붙어 있는 모양새가 귀에다 크게 내지르는 고함 같았다.

'샘! 얘를 어떻게 해야 하죠? 비비탄 총으로 화면에 대고 쏘는 시늉을 하는 거예요. 엄마한테 얘기하니까 뭐라는 줄 알아요? 화면에 대고 쏜 게 아니래요.'


그 학습지 선생님이 엄마에게 따지고 들었다면 내 엄마는 뭐라고 했을까. 잘났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쁘세요?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근무 환경이 맘에 들지 않다고 느낀 교사들은 학부모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했다. 그래야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고 온전하게 급여가 통장으로 들어온다.



"샘들! 적당히 하고 다른 일자리 알아보세요. 방구석에 콕 박혀 일하니까 삶의 질이 정말 떨어져요!" 그러면서 한 선생은 떠나갔다. 멀쩡한 내 삶의 질은 5년 넘게 근무하면서 누군가에 의해 제대로 추락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샘들 직업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제법 늦은 나이게 의료업계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어느 선생님은 남아 있는 동기들의 '부럽다'라는 칭찬에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어제까지는 동기였지만 오늘부터는 아니야라는 말을 예쁘게도 포장했다.






회원 모집이 뜸해질 무렵 회원 유입의 유일한 방법은 다른 선생이 그만둘 때였다. 근무 기간이 짧지 않은 선생님들은 퇴사 이유가 하나같이 건강상태의 악화라고 했다. 입사 초기에 그만둔 선생들은 주는 것 없이 제각기 불만을 뿌리고 나갔는데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선생님들은 떠나가며 나의 수수료를 올려주었다. 한편으로는 이유를 대려면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든지,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짧은 이해심이 낳은 오해였다. 정규 미팅이 있는 날이면 그곳은 동네 부녀회를 연상케 했다. 사십 대 초반에 시작한 나는 어느새 사십 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30대 후반이었던 동기 선생님도 마흔을 넘겼다. 당연히 성인병이 슬슬 도질 나이었다.






"선생님들이 너무 자주 바뀌어요. 애가 선생님과 적응 좀 하려고 하면 바뀌고 또 새로운 선생님과 친해지려고 하면 또 바뀌고."

내게 배정받은 한 회원의 학부모는 그렇게 불평했다.

"어머니, 저는 오래 근무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는 나의 유일한 장점을 어필했다. 그 유일한 장점의 유효 기간은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내 건강상태가 결정지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나에게 배정된 아이들은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아이 입장에서는 변화를 위해 선생을 바꾸고 싶을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엄마 입장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학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같은 얼굴의, 엄마 같은 선생님이 오래도록 온화한 미소를 지속해 주길 바랐다.










학습지 선생에게 아이를 거부할 권리는 없다. 나는 그 엄마와 통화하기 전 팀장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고 팀장도 심각하다는 판단하에 학부모에게 전화하여 잘 말씀드릴 것을 권했다.




나는 잠깐 재생되던 유튜브 영상을 멈췄다.

"아이와 전혀 소통이 되질 않아요. 아이 입장에서도 맞지 않는 선생님과 함께 하는 건 고역일 수 있어요. 그 점을 고려해 주세요. 새로운 선생님과 함께 하면 ㅇㅇ이도 더 즐겁게 수업들을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일단 저도 ㅇㅇ이 들어오면 한번 물어..."

나는 말을 끊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많이 부담스럽네요."

학부모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했다. 잠시 후 업무 관련 알림에 'ㅇㅇㅇ 회원 교사 변경'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비워진 자리에 '배정가능'을 설정했다. 누군가의 '잘났어 정말!'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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