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본 소녀의 주소와 함께 배송된 또 다른 주소가 있었다. 그것의 영문 주소 마지막엔 China(라고 착각한) 국가명이 반듯하게 쓰여있었다. 나는 그 나라에 사는 내 또래의 누군가와 편지를 나누게 된 것이 왠지 설레었다. 속으로는 나중에 커서 한국, 일본, 중국의 세 사람이 만나면 너무 좋겠다는 착각을 하면서 들뜬 마음으로 편지를 짜깁기했다. 편지 첫 장 맨 윗부분에는 니하오라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a large country도 편지 중간에 등장했다.
훗날 세 사람이 만나게 되면 장소는 어느 나라가 좋을지 상상을 하면서 써 내려간 편지는 어느새 완성이 되고 겉봉투에 주소를 적게 되었다. 받는 이의 주소 중에 마지막에 위치한 국가명을 적기 직전까지 환상에 빠져있던 나는 그제야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충격에 빠졌다. 모양만 비스무레할 뿐 두 국가의 영문 국가명은 첫 스팰링부터가 달랐다. 당연히 니하오라는 인사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것뿐인가? 라지 컨츄리, 짜장면? 아! 이 편지를 어떻게 한담?
"다 써놓고 보니까 다른 나라였던 거야. 내 참 황당해서."
"그래서 다시 썼어? 새로운 편지에는 너도 초콜릿 많이 먹냐고 물어보지?"
학교에서 친구들과 펜팔 이야기를 나눌 때면 편지 내용에 대해 조언을 주는 친구도 종종 있었다. 한 친구가 일본 소녀가 보내준 편지를 보다가 말했다.
"by the way? 야! 우리 동네에도 바이더웨이 있다고 해. 24시간 장사 잘 된다고 써."
해외 펜팔 협회에 가입을 할 때 무료로 제공되는 또 하나의 주소를 받기를 원하는지 질문이 있었는데 나는 동의함에 브이표시를 했었다. 그 추가 주소라는 것은 흔히 해외 펜팔을 하려는 우리나라 사람이 전혀 고려하지도, 머리에 떠올리지도, 때로는 원하지도 않는 나라임을 주소를 받고서야 깨달았다. 그 미지의 소년에게도 서태지, 엄정화의 사진 및 테이프를 동봉했다.
종말이는 어느 군인 앞에서 수줍어하고 있었다. 군인의 손에는 종말이가 보낸 편지가 들려있었다. 용케 종말이를 찾아온 군인은 온 식구를 놀라게 했다. 펜팔 상대였던 그 군인은 종말이의 주소를 수소문해 편지로만 나누던 사랑을 현실로 실현했다. 종말이의 엄마아빠 보다도 더 놀란 누군가가 있었다. 그 따가운 눈총은 나를 향했다.
검은 소년이 보낸 소포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들어있었다. 기다랗고 도톰한 스카프처럼 생긴 것을 belt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목에 둘렀다가 다시 허리에 둘러보았다.
"이게 벨트라고? 버클도 없는데?"
생활의 흔적이 밴 팔찌를 우정의 의미라며 보내기도 했다. 전통 의상이 그려져 있는 엽서도 함께 날아왔다. 그 아이는 연예인 이야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듯 자기네 나라 연예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흑인 소년이 보낸 편지에 그 나라 지폐가 한 장 들어있었다. 그 돈으로 워크맨을 사서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부탁해서 그 지폐가 우리 돈으로 얼마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확인해 줄 것을 부탁했다. 엄마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그 낡은 지폐를 가지고 외환은행으로 향했다. 그 나라의 GDP수준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고등학생인 점을 생각했을 때 그가 지니기에는 꽤 큰돈이었다. 하지만 워크맨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다음 편지에 지폐를 동봉하여 다시 돌려보냈다.
'워크맨? 그 비싼 워크맨은 나도 없는걸?' 이렇게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이 소년은 분명 자기가 편지를 교환하는 사람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분간을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일본과 가까운 어느 나라라는 이유로 나와 편지를 교환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곳에서 온 다음 편지에는 워크맨 때문에 실망했다는 내용이 편지지에 가득했다. 멀쩡하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담겨있었다.
"계속 워크맨을 사서 보내라잖아. 말이 되냐? 나도 없는데? 그 묵직한 거 보내는 데도 배송비 꽤 들겠다."
나는 혀를 끌끌 찼다.
"그 편지 나한테 넘기면 안 돼?"
영어 좀 한다는 친구가 흑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우리 엄마아빠가 워크맨 사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편지 내가 맡으면 안 될까?"
그 친구도 이미 유럽의 어느 백인 소년과 펜팔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 허락하에 그 비싼 국제 전화요금을 부담하며 통화까지 하는, 한층 영양가 있게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한국, 일본, 중국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의 모양을 그릴 때 (그 삼각형은 한 꼭짓점의 오류로 만들어 지지는 못했다) 그 애는 황인, 백인, 흑인의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너에게 종말이를 넘길 수는 없지."
워크맨을 살 능력이 없던 나는 결국 답장을 보낼 수가 없었다. 워크맨 다음은 무엇일까? 소니 녹음기? 소니 카메라? 소니 뭐시기? 집에 찾아온 펜팔 군인? 그 마지막은 수줍은 종말이가 될지 모른다. 오작교 같은 워크맨은 끝내 나를 종말이로 만들지 못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93년 대전 엑스포가 개최되었다. 다양한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많았지만 내 정신은 온통 한곳에 집중되었다. 팸플릿이 비치된 곳에는 한국어,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로 된 것들도 있었다. 그중 일본어로 된 것을 부지런히 챙겨 가방에 넣었다. 작은 기념품도 하나 샀다. 무심코 중국어로 된 팸플릿을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