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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Dec 07. 2023

만약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면

글 쓰는 삶에 대하여


끔찍합니다. 글 쓰면서 다시 살아냈습니다. 쓰지 못하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하고, 또 누군가 제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글을 쓸 때보다 훨씬 괴롭고 힘들 겁니다. 아마도,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글 쓰기가 힘들고 어렵다 합니다. 스트레스 받고 부담스럽고 답답하다고 토로하지요.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가에 대해서도 잘 알고, 또 그런 사람들 심정도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저도 과거에 그랬으니까요. 지금도 때로는 한 줄도 더 쓰지 못한 채 고민하고 막막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해도, 쓰지 못하는 상황보다는 낫습니다. 잠을 설치고 입맛이 떨어지고 만사 귀찮을 정도로 글을 쓰기 싫은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쓰는 편이 낫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글 쓰는 동안 행복합니다. 쓰는 행위 자체는 어렵고 힘들지라도, 제가 글을 쓰고 있고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책을 내고 싶다면, 꾸준히 집필하고 싶다면, '쓰지 못하는 상황'이 괴로워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이 반대로 생각합니다. '쓰는 상황'을 힘들어 하지요. 이미 가능하고 충만한 상태를 소홀히 여기는 습성이 있습니다. 가족은 늘 곁에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만약, 가족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없어지면 끔찍할 존재. 그래서 우리에겐 가족이 필요한 겁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끔찍하다고 여겨질 때, 비로소 글을 쓰는 삶이 소중해집니다. 써도 그만이고 안 써도 그만인 정도라면, 글을 잘 쓰거나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욕구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귀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굳이 불행을 자초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물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물이 사라진다면 인류도 사라지겠지요. 귀하고 소중한 겁니다.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겁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주어진 상황들이 사실은 대단히 소중하고 감사한 것들이거든요.


세상에는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사람 많습니다. 자유롭게 쓰고 싶어도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고, 학습 능력이 떨어지거나 배움이 짧아 문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평생 글쓰기에 관심조차 갖지 못할 만큼 먹고 사는 문제에 치여 사는 사람도 많지요.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축복 받은 존재입니까. 


1년 6개월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믹스 커피 한 잔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말도 못합니다. 사발면에 펄펄 끓는 물 부어 먹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밖에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싶었고, 때로 우와아아아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했습니다. 휘파람도 불 수 없고, 얼음물은 구경도 못하고, 음악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귀하다 소중하다 느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후회를 하고 가슴을 긁고 눈물을 흘렸는지 표현조차 하기 힘듭니다. 있으니까 잘 모르는 겁니다. 많으니까 예사로 여기는 것이지요. 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없으면 절실해지는 것들이 진짜 소중한 겁니다. 부모가 죽으면 더할 수 없이 후회를 하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은 것과 같고, 시간을 잃으면 돌이킬 수가 없지요. 부모는 늘 곁에 있고, 건강은 당연한 줄 알며, 시간은 항상 천년만년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 안에 가득한 이야기, 경험과 느낌과 감정을 세상과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귀중한 도구입니다. 노트북만 열면 언제든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 당장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 별로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언젠가, 나중에, 내일, 시간 나면"이라는 핑계로 뒤로 미루고 있지요.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오늘 뭘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대부분 수강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대답합니다. 그 대답의 구체성과 정확성도 약한 상태로 말이죠. 불과 하루 지났는데도, 전날 있었던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과 슬픔과 아픔을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쓰지 않음으로써 인생도 함께 사라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베스트셀러 한 권 출간해 본 적 없고, 문학상 받은 적도 없으며, 사회 논란을 일으킬 만큼 영향력을 행사한 적도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저에게 글 쓰는 이유를 묻곤 하죠. 쉽게 말해서, "돈도 안 되는 글을 왜 그리 열심히 쓰느냐"는 질문입니다. 


저는 원래 쓸데없는 잡념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걱정과 근심 멎은 날 하루도 없었고요. 사람들 만나 술자리를 갖고, 온갖 의미 없는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제 안에는 의미 있고 가치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글을 쓰면서부터 고요해졌습니다. 쉬는 시간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교실에 선생님이 문을 확 열고 들어서는 것 같았지요. 마음 속이 조용해지니까 평소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던 모습이 보였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철학적 질문에서 시작하여 다른 사람 돕는 인생이 최고라는 신념에 이르기까지. 지난 삶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깊고 어려운, 그러나 맑은 감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돈도 많이 벌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풍요와 번영이 제게 왔지요. 제가 가장 기쁘고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은, 만약 남은 인생에서 또 바닥을 치는 일 생기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바로 이 생각 덕분에 하루하루가 얼마나 단단하고 평화로운지 말도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10년 동안 매일 글을 쓰며 쌓아올린 저의 인생탑인 거지요. 


언제가는 제게도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때가 오겠지요. 지금 당장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만, 그 때가 오면 또 저는 덤덤히 받아들일 겁니다. 후회나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오늘을 열심히 살고 쓰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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