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가 시작을 만든다
글 쓰는 일은 쉽거나 만만하지 않다. 글 한 편 쓰려면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한다. 실제로 쓰는 과정도 힘들지만, 책상 앞에 앉는 것조차 결심이 필요할 지경이다. 그렇게 큰 결심을 하고 노트북을 펼쳐도 뜻대로 써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할 때가 생각난다. 건물 한 채 지어 올리려면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잡부 시절, 저녁 6시쯤 일을 마치면 장갑 벗고 집에 가기 바빴다. 그런데도 다른 일꾼들은 항상 마무리에 신경을 쓰곤 했었다. 그 마무리란 무엇인가.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한 준비'였다. 필요한 공구를 한 쪽에 쌓아두고, 자재 준비를 점검하고, 설계도를 보면서 동선을 파악하고, 어디까지 일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다음 날 할 일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 두는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일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 둘째,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없다. 셋째, 애쓰지 않고도 척척 일할 수 있었다. 준비는 일을 수월케 만들었다. 전문 일꾼일수록 준비에 철저했다.
글 쓰는 일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는 글 쓰기를 한결 수월하게 만든다. '큰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인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 지 막막한 상황을 없앤다. 머리 쥐어짜지 않고도 술술 쓸 수 있게 만든다. 글 쓰기 위한 준비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일기다. 단연코 일기다. 매일 보고 듣고 경험한 일을 적고 자신의 느낌을 정리한다. 이렇게 일상을 기록해 두면 어떤 글을 쓰든 주제와 예시와 에피소드를 쉽게 가져올 수 있다. 막막하다 싶을 때마다 일기장 펼친다. 거기, 전부 다 있다.
둘째, 블로그다. 개인 취향에 따라 어떤 SNS라도 좋다. 한 가지 정도는 활용하는 것이 글 쓰는 데 도움된다. SNS에는 경험, 정보, 지식, 노하우, 이야기 등 다양한 글을 쓰게 되는데, 이는 또 다른 글을 쓰는 데 충분한 재료가 되고도 남는다. 내 블로그에 4,800편 글이 있다. 두려울 게 없다.
셋째, 낙서다. 끄적끄적. 생각의 단편이다. 당장은 그럴 듯한 글로 풀어내지 못했지만,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발상의 단초가 된다. 그냥 생각하는 것과 무기를 들고 시작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넷째, 콘티 작성이다. 글 쓰는 게 아니라 박스 그려서 낙서 몇 줄만 채워두는 것. 맨땅에 쓰기보다는 콘티 보면서 살 붙이는 작업이 훨씬 쉽다.
거대한 일일수록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꾸만 미루게 되고, 핑계를 대고 싶게 만든다. 글쓰기는 그렇게 거대한 일이 아니라고 늘 강조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이들에겐 여전히 큰 벽일 수밖에 없다. 한꺼번에 무너뜨리려 하지 말고, 먼저 장비를 갖추고 순서를 정하고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밀가루 반죽 미리 해 두면 빵 만들기 쉽고, 스케치 대충 해 두면 그림 그리기 쉽고, 철근 작업 미리 해 두면 공구리 치기 쉽고, 밑반찬 미리 해 두면 밥상 차리기 쉽다. 사전 준비는 모든 일을 '시작하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다.
글 쓰기 위한 준비를 미리 해 두면, 가장 좋은 점은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사실이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머리를 쥐어뜯지 않아도 되고, 주제가 흔들리는 경우도 적고, 다 쓰고 난 후에 읽어 보면 그럴 듯한 글이 되기도 한다. 글 쓰는 데 재미가 붙는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준비에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이런 수고를 기꺼이 하는 사람은 일을 수월하게 하면서도 성장하고 발전한다. 이마저도 귀찮다 하기 싫다 해버리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