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장이 Dec 13. 2023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선택과 책임


노트에 펜으로 글을 쓰는 것과 컴퓨터에 키보드로 글을 쓰는 것. 둘 중 어떤 것이 나을까? 한때는 꽤나 고민했었다. 노트에 펜으로 글을 쓰면 생각이 묵직해진다. '후다닥' 쓰지 않고 차분하게 오래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 오랜 시간 생각 없이 살았던 탓이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우고 다시 쓰기도 불편하다. 구성 옮기고 바꾸는 것도 번거롭다.


반면, 컴퓨터에 키보드로 글을 쓰는 건 편리하다. 생각의 흐름을 텍스트로 옮기는 속도가 빠르다. 놓치는 생각이 거의 없다. 한 편의 글을 깔끔하게, 그리고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 쓰다 지우고 다시 쓰는 것도 문제 없다. 흠이 있다면, 자꾸만 아날로그식 글쓰기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는 거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 많이 했다. 펜으로 쓸까, 아니면 키보드로 쓸까. 평생 글 쓰며 살기로 작정했으니 어떤 도구를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내게는 중요했다. 김 훈 작가가 연필로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것이 마땅한 작가의 길 같았다. 또 다른 작가가 키보드를 두들기며 빠르게 써내려가는 모습을 보고는 그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마음은 퐁당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했다.


7년쯤 전 어느 날, 나는 결단을 내렸다. 키보드로 쓰고 싶으면 키보드로 쓰고, 펜으로 쓰고 싶으면 펜으로 쓰기로. 노트북 열어서 마구 두들기다가 마음이 바뀌면 바로 빈 종이를 꺼내 펜으로 글을 쓴다. 그러다가 또 손목이 아프면 바로 키보드를 꺼낸다. 마음이 향하는 쪽으로,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쓴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왜 그리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한심할 지경이다. 본질은 글쓰기다. 키보드와 펜은 부차적인 도구일 뿐. 차라리 주제와 소재와 구성과 문장에 대한 고민을 했어야 맞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고민을 오래 하다 보면 마치 그 문제가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 착각을 일으킨다. 


아날로그 공책도 많고 키보드도 다양하다. 노트를 보면 글을 쓰고 싶다. 키보드나 노트북을 쳐다봐도 쓰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그것들은 단지 도구에 불과하며,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는 동기부여 수단일 뿐. 덕분에 나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경어체로 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평어체로 쓰는 것이 나을까. 이 또한 오랜 시간 공들여 고민했었다. 심각했다. 마치 이 문제가 나의 글 쓰는 인생을 결정이라도 할 것처럼. 거의 매일 강의한다. 때문에, 경어체로 글을 쓰면 강의하는 것처럼 쓸 수 있다. 쓰는 속도가 빠르다. 반면, 평어체로 글을 쓰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자칫하면 거친 표현이 툭 튀어나온다. 조심한다. 그럼에도 평어체는 나를 조금 더 솔직하게 만든다. 


일곱 권의 책을 출간했고, 이제 여덟 번째 신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경어체로 출간한 적도 있고 평어체로 출간한 적도 있다. 그렇다. 나는 오랜 시간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높임말 쓰고 싶을 땐 높임말로 글을 쓰고, 반말로 쓰고 싶을 땐 반말로 글을 쓰기로. 


문체는 중요하다. 그러나, 글에 담아 전달하는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덜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느라 더 중요한 본질을 놓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경어체로 쓰든 평어체로 쓰든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문체를 높여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허다하고, 단호하게 휘갈겨 스테디셀러가 된 책도 셀 수 없다. 문체는 중요하지만, 결정타는 아니란 얘기다. 덕분에 나는, 경어체든 평어체든 가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이 될 때는, 그냥 둘 다 해버리면 된다. 컴퓨터로 한 편 써 보고 노트에도 한 편 써 본다. 경어체로 한 편 써 보고 평어체로 한 편 써 본다. 자기계발서 형식으로 한 편 써 보고 에세이 형식으로 한 번 써 본다. 대화체를 넣어서도 써 보고 그냥 산문 형식으로도 써 본다. 지식과 정보 위주로 한 편 써 보고 경험 위주로 한 편 써 본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라는 사람 수도 없이 만난다. 고민하는 시간에 닥치는 대로 써 보는 게 훨씬 낫다. 내 경험이다. 자신감은 생각이나 고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시도와 실패를 통해 빵빵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시도하는 자세. 해 보고 말해야 먹힌다. 경험 많은 놈이 장땡이다. 


"자신이 없어요!"

틀렸다. 해 보지 않은 일은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고 말하는 게 옳다. 해 보지 않은 일에 자신감 있다 말하는 것은 허풍이고 자만이다. 한 번 해 보면 자신감 생긴다. 두 번 해 보면 더 낫다. 백 번쯤 해 보면 우습게 여겨진다. 일단 뛰어내리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다시 뛰어내릴 때는 망설이는 시간이 확 줄어든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점심 메뉴부터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까지. 바르고 옳은 선택을 했을 때에는 만족스럽고, 잘못 선택했다 싶을 때는 자괴감마저 느껴진다. 문제는, 어떤 선택이 마땅한가 기준과 원칙 따위 없다는 사실이다. 같은 선택을 하고서도 어떤 사람은 승승장구하고 또 다른 사람은 좌절만 거듭한다.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얼마나 책임을 지는가에 따라 삶이 판가름나는 것이다. 


나는 무모한 사업을 선택했다가 쫄딱 망했다. 선택에 따른 결과. 그것은 치욕스럽고 모욕적이었다.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면서 바꾸고 싶었다. 내가 내린 선택이 기어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최소한 스스로 수습했다는 자부심은 느끼고 싶었던 거다. 지금은 그 옛날 내가 선택하고 결정했던 일들에 후회 없다. 어쩌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선택한다. 최선을 다한다. 결과를 받아들인다. 그 결과가 내게 의미와 가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이것이 삶이다. 때문에 삶은 항상 책임이라는 두 글자를 짊어진다. 책임질 수만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든 무슨 상관 있겠는가.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이야말로 '안전망 증후군'에 둘러싸여 평생을 웅크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글을 쓰기로 선택했다. 강의를 하면서 살기로 선택했다. 글을 써 본 적도, 강의를 해 본 적도 없었다. 경험이 없었으니 자신감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시작했다. 시도했다. 도전했다. 온갖 문제를 만났고, 하나씩 풀어냈다. 상처도 입었고, 실패도 해 보았고, 욕도 먹었고, 칭찬도 받았다. 우여곡절 다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나는 '전문가'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하지 마!"라고 했다.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과가 뻔히 보이니 괜한 고생 하지 말라고. 주제를 알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내게 그런 부정적인 말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꿈을 이룬 적 없는 존재들이었다. 자신들이 꿈을 접었으니 내 꿈마저 접으려 들었던 것. 신경 쓸 일이 전혀 아니었다. 


격려와 응원을 해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책이다. 책에서는 모두 나를 보고 한 번 해 보라고 했다. 잘할 수있을 거라고. 설령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크게 성장하고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도전했다는 기록이 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근사하게 장식할 거라고. "해 보았다!"라는 한 마디가 인생 후회를 사라지게 해줄 거라고. 


나는 지금도 글을 쓴다. 공책에 펜으로 쓰기도 하고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기도 한다.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작가의 이전글 문제와 고민은 끄집어내야 풀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