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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Dec 28. 2023

글쓰기가 주는 존재의 확장성

더 크고 넒은 세상을 만나다


하루 한 번도 하늘 쳐다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 날 많았죠. 꽃이며 바람이며 느껴본 적 없었습니다. 길에서 강아지 고양이 만나도 눈길 한 번 준 적 없습니다. 비 내리면 옷 젖는다 불평했고, 눈 내리면 길 막힌다 투덜거렸습니다. 친구들이 만나자 하면 시간 낭비라 생각했고, 가족이 놀러가자 하면 세월 좋은 얘기 한다며 쏘아붙였습니다.


사랑하면 달리 보인다 합니다. 하늘과 구름이 눈에 들어오고, 꽃과 바람 앞에서 멈추게 되고, 강아지 고양이 눈여겨 보게 되며,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내 편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요. 과거 저에게는 사랑이란 감정 아예 없었던 모양입니다. 삭막하고 건조한 인생.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업 실패 후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글 한 번 써 본 적 없었고, 책 한 권 읽은 적 없으니 첫 줄부터 막막하기만 했었지요. 뭐라도 써야 한다 싶어서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사물들과 관련 있는 제 경험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사물과 경험을 연결하니까 어느 정도 쓸 만한 이야기가 생겼고, 이것을 인생 메시지로 정리하니 제법 읽을 만한 글을 쓸 수가 있었습니다. 


좁은 감빵에서 사물을 이용하여 글을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글감은 금세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문장이나 에피소드 등을 옮겨 적고, 그와 관련 있는 저의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해 보니 또한 제법 글을 쓸 수가 있었습니다. 책은 무한하고, 한 권의 책 속에도 밑줄 그을 만한 문장 많으니 앞으로 글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지요. 


그렇게 몇 달간 계속 글을 썼습니다. 어느 날, 하루 30분 운동 시간이 되어 운동장으로 나갔는데요. 아마 10월 즈음이었을 겁니다. 잎이 붉게 물든 단풍나무 한 그루가 운동장 한 쪽 구석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람이 휘 불어오니까 잎이 서로 부대껴 쏴아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장관이고 그 소리가 어찌나 웅장한지 한참이나 그 앞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나무도, 하늘도, 사람들도...... 매일 그 곳에 똑같이 있었는데 저는 그제야 그 모든 것을 볼 수가 있었던 겁니다. 방에서도 글감을 찾았고 책에서도 쓸거리를 골랐지만 아예 세상이 통째로 글감이란 사실을 알게 된 그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합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오감이 깨어나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하지요. 나무토막 같은 심장을 갖고 살았던 저는, 글을 쓰면서부터 '사랑'이란 감정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눈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 소리를 듣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보던 것을 자세히 보게 되고, 별것도 아닌 사물과 풍경과 사람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되었습니다. 적대적 관계였던 교도관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온몸에 용과 호랑이를 그려넣은 사람들과 말을 트게 되었습니다. 


새장 안에 살던 새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물 안에 갇혀 있던 개구리가 바다를 마주하는 기분이었지요. 더 중요한 것은, 제가 그런 깨달음을 얻은 곳이 감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5미터 담벼락 안에서 하늘과 바다를 만났으니 출소 후에는 어떻겠습니까. 


높은 산에 오르거나 넓은 바다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가슴이 탁 트인다"고 표현합니다. 제가 딱 그랬습니다. 봉사가 눈을 뜬 것처럼, 온 세상이 달리 보였습니다. 휘파람이 절로 나오고 맨날 실실 웃고 다녔으니 주변 사람들이 "미친 놈"이라고 할 만했지요. 


사람은 평생 세 번 존재의 확장성을 느낀다고 합니다. 첫째는 꿈을 가지는 순간이고요. 둘째는 사랑에 빠질 때입니다. 셋째는 생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세 가지 경우에 사람은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 세 가지 경우 외에 하나를 더 만난 것이지요. 글쓰기는 존재의 확장을 느끼게 해줍니다. 


뭔가 거창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사실입니다. 평소에는 그냥 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지만, 글을 쓰다 보면 "점심 시간"이라는 것이 다른 의미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매일 마주하는 아이들 얼굴이지만, 글을 쓰겠다 하고 보면 아이들 얼굴에 빛이 난다는 걸 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존재 확장의 가장 큰 장점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맞딱뜨렸을 때 나타납니다. 고통과 시련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앞에서 좌절하고, 또 다른 사람은 역경을 극복하며 더 크게 성장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전과자 파산자가 된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라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게 일어난 모든 사건과 상황을 "희망, 용기, 극복"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고, 그것을 글로 적었습니다. 존재 확장이라는 말은 내게 주어진 모든 삶의 순간을 전혀 다르게 보고 듣고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말과 같습니다. 


글쓰기는 한 마디로 "견디는 힘"을 가져다주는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최악의 삶에서 벗어나 지금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고요. 더 기쁜 소식은, 매일 글 쓰는 과정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거란 사실입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면...... 매일 매 순간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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