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장이 Jan 06. 2024

아픔은 내가 아니다

인생,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


"요즘 어떠세요?"

새해를 맞아 안부를 묻는 전화가 많다.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나는 대답한다. "좀 힘드네요." 그냥 괜찮다고 대답해도 그만인데, 굳이 힘든 내색을 한다. 토할 만큼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내가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개인적인 부탁이나 만남을 요청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사실을 은근히 밝히고 싶은 것이다. 


말은 습관이다. 습관은 태도를 만든다. 태도는 다시 감정을 일으킨다. 힘들다는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나는, 계속 힘든 감정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지내고 있다!"라고 대답할수록 삶은 점점 좋아진다. 삶이 좋아서 좋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좋다고 말하면 삶이 좋아지는 것이다. 


사업에 실패한 직후, 평생 없었던 말버릇이 생겼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내 입에서는 "힘들고 아프다"는 소리만 나왔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처럼, 타인에게 동정과 위로를 구걸했었다. 실제로 나를 동정한 이도 많았고 위로를 전해주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내 삶을 실제로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주로 이름으로 답한다. '이은대'라는 이름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나를 설명할 수 있는가. 이미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의 이름으로부터 동시에 많은 것을 연상할 테고,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이름만으로는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할 터다. 그렇다면 내 이름은 나에 대해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자이언트 북 컨설팅]을 운영하는 일인기업가라는 설명은 또 어떠한가. 글쓰기/책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강연가로서 나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겠지만, '나'라는 개인의 성향이나 인생을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사업가로서의 나는 햄에그샌드위치를 좋아하는 나를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격이 불 같은 이은대는 어떠한가. 그러한 설명은 '나'라는 존재의 일면을 쉽게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게는 불 같은 성미도 있지만, 가끔은 따뜻한 구석도 비친다.(믿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그러니, 성격의 단면만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요즘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힘들다고 대답하는 것은 '나'와 '힘듦'을 동일시하는 오류이다. 내 안에는 힘든 마음도 있지만, 여전히 희망과 용기와 인내와 가능성과 잠재력과 극복할 마음도 존재한다. 다중인격이라 하면 다소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적어도 내 안에 여러 가지 심경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그냥 "좋다!"고 답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설명을 길게 했다. '나'는 어느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다. 명함 쪼가리 한 장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은 구차하고, 욱하는 심정 하나로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것도 초라하다. '나'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며 웅장하고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살다 보면 힘든 순간 만난다. 고통과 시련도 겪게 마련이다. 이미 충분히 겪었다 싶은 때에도 다시 폭풍은 몰아친다. 그것은 단지 경험일 뿐. '나'는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형한다. 삶이 다하고 본질로 돌아가는 순간, 숱한 영혼을 만나 물질 세상에서의 경험담을 나누며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그 많은 영혼들 앞에서 행복과 불행을 원 없이 경험했다고 큰소리 치고 싶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지금의 고통이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될 테지. 쓸 수 있어 다행이다. 무릎 위에 맥북 올려놓고 글 쓰는 동안 감정이 많이 가라앉았다. 잠든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린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작가의 이전글 열정, 지속하는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