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듯이 초고, 혼을 담는 퇴고
초고를 쓸 때는 속도와 분량에만 신경 쓰라고 합니다. 퇴고할 때는 집중력을 발휘하여 정성을 쏟아부으라고 말합니다.
퇴고 작업시 집중과 정성이야 당연한 얘기겠지만, 초고 집필에 있어서는 왜 속도를 강조하는 걸까요?
경험 있는 분 많겠지만, 글을 쓸 때 진을 빼면 흐름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꺼내면 대화가 끝나도 답답합니다. 대화 자체도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고요.
글쓰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단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고치고 다듬어야 '자기만의 색'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색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몇 년 쯤 전에 어느 수강생이 저한테 하소연했습니다.
"작가님! 저는 아직 저만의 색을 찾지 못해 글을 쓰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당신은 살색이니까 그냥 쓰라고요.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만의 색'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봐야 어떤 색이 자신한테 어울리는지 알 수 있겠지요.
글을 쓰다 보면 찾게 됩니다. 평어체와 경어체 중에서 어떤 문체가 쓰기 편한지, 강한 주장을 펼치는 글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 중에서 어떤 글이 더 좋은지, 건조한 설명문이 좋은지 심쿵한 감성문이 좋은지...... 써 봐야 알지요. 써 봐야 압니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글을 쓰려면 머리에 구멍을 뚫고 펜을 박아야 하는데......아!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손가락을 움직여야 합니다. 잘 쓰려는 생각보다는 전부 쏟아내겠다는 생각으로 써야 합니다. 특히 초고를 쓸 때는 진땀을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초고를 쓸 때부터 바싹 긴장을 하면, '글을 글처럼' 쓰게 됩니다. '속상해서 잠이 안온다'고 쓰면 될 것을 '심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쓰는 것이죠. 최악입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내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편의 초고를 쓸 때는 마구 질러야 합니다. 키보드 위에 얹은 손이 잠시라도 멈추면 바들바들 떨어야 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내달리고 나면 당연히 엉망진창이겠지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 문장을 다듬고, 문법을 적용하고, 적절한 예시도 추가하고, 불필요한 단어 삭제하고, 문체도 정리하고...... 정성껏 퇴고를 하면 되는 것이죠.
무슨 일이든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할 수는 없습니다. 일주일만에 50킬로그램 바벨을 들어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3개월된 아기가 갈비 뜯을 수 있겠습니까.
초고가 그대로 책이 되는 경우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있다고요? 특별한 사람은 무시하세요.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초고는 속도와 분량으로 승부합니다. 퇴고에서 혼을 담으면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