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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Jan 17. 2024

내가 가는 길이 옳다는 신념

글 쓰며 살아간다


아침 7시 40분에 천장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관리실 직원의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8시부터 아파트 단지 내 나무 전지 작업을 진행하오니, 지상에 주차한 차를 모두 이동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한 번 안내드린다 하며 두 번이나 연달아 방송했다. 소파에 앉은 어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관리실 직원들도 참 바쁘다. 일 년 내내 쉴 틈이 없어. 봄이 되면 나무 심어야 하고, 여름 되면 뙤약볕에 작업해야 하고, 가을이면 낙엽 쓸어야 하고, 겨울 되면 빙판 치워야 하고...... 얼마나 힘이 들겠냐."


한숨을 내쉬며 누군가를 향해 안됐다는 둥 불쌍하다는 둥 맥 빠지는 말을 하는 걸 나는 듣기 싫어한다. 기가 빨린다. 나까지 힘이 쪽쪽 빠진다. 더구나, 전지 작업은 관리실 직원이 하는 것도 아니다. 외부 업체 위임하여 전문가들이 와서 순식간에 해치운다. 그들의 수고를 감사해야 하는 건 마땅하지만, 노숙자 보듯이 불쌍하게 볼 일은 아닌 것이다. 


최근에 아버지 병환이 심해져 힘든 시간 보냈다. 상태가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지만, 며칠 지나면서 내 마음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모양이다. 당장 위험한 지경은 아니니, 앞으로 차근차근 치료해서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길 바라 본다. 아버지도 병원에서 처음 불편한 얘기를 들었을 때보다는 한결 잘 견디고 계신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상의 흔들림. 문제와 고민이 완전히 사라진, 그저 평온하기만 한 날이 과연 며칠이나 되겠는가. 조금 살 만하다 싶으면 이쪽에서 문제가 터지고, 또 하나 해결했다 싶으면 저쪽에서 속상한 일 생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견디고, 저런 일 생기면 저렇게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일 터다. 


화도 내 보고 짜증도 부려 봤다. 내 인생은 왜 이리 우여곡절 많고 자주 흔들리는지, 신이 있으면 한 번 따져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이토록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그래서 이 만큼 살게 되었는데, 아직도 내가 넘어야 할 산이 남았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여든 넘은 어머니에 대해 못마땅한 구석 있다고 해서 일일이 지적하거나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마 내가 어머니께 한 마디 핀잔이라도 던지는 날에는 몇 날 며칠이고 자리 깔고 누우실 게 뻔하다. 그래서 글을 쓴다. 누군가 듣기 싫고 불편한 얘기를 하면, 곰곰이 생각했다가 집에 와서 종이에 적는다. 


매번 글을 쓰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적인 현상이 발생한다. 당연하고 마땅하고 당당하고 옳다 믿었던 내 생각이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나이 팔십 넘은 어머니가 소파에 걸터 앉아 푸념 뱉기 여사지, 뭘 그런 걸 가지고 듣기 싫네 마네 하는지 내가 참 못났구나 싶다. 


외가를 싫어하고, 그런 탓에 점점 어머니 말과 행동까지 미운 털이 박히는 모양이다. 관리실 직원들이 고생이 많겠구나 하면, 네 그렇지요 답변하고 말 일이다. 글 쓰는 세상 만들겠다고 큰 꿈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가, 고작 어머니 말씀 한 마디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심술을 부려서야 쓰겠는가. 


아버지 쓰러지고 병원 입원했을 때에도 매일 글을 썼다. 블로그 포스팅도 발행하고, 일기도 쓰고, 습작도 하고, 독서노트도 작성했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아버지는 여전히 기력이 없고, 식구들은 노심초사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고, 나는 병수발과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글을 쓰는 것인가. 바쁘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 보내면서도, 왜 굳이 짬을 내어 글을 쓰고야 마는 것인가.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이 묻는다. 표정이 좋은 걸 보니 아버지가 좀 나으셨나 봅니다 라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견디는 힘을 준다. 내 앞에 닥친 모든 문제와 고민을 직시하는 용기를 준다. 


그게 아니라면 왜 글을 쓰겠는가. 삶을 잃어 본 경험 있다. 그때도 글을 썼다. 심란하고 마음 복잡해서 다 때려치울까 싶은 생각 들었던 때에도 글을 썼다. 누군가 미워 죽겠다 싶을 때도 글을 썼고,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때도 글을 썼다.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이 수십 억 빚만 가득했던 날에도 글을 썼다. 한 줄 한 줄 쓰면서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조금 더 버티며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자 결심을 했던 것이다. 


돈 되는 글쓰기, 팔리는 책쓰기 따위 말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영혼까지 탈탈 털려 자기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돈 되는 글을 써서 무얼 하겠다는 말인지 답답하고 안쓰럽다. 글쓰기는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돈이 부족해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영혼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행위이다. 


전쟁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지고, 정치인들의 난삽한 싸움이 극에 달하고, 경제 위기는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은 위기다. 혼돈의 시대이다. 개인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기 삶을 지켜야 한다. 무엇이 옳은가. 내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 그래서 누구를 도울 것인가. 정성과 공을 들여 삶을 생각해야 할 때다. 


글쓰기를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 많지만, 적어도 나는 글을 쓴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신을 만난 사람들이 복음을 전파하듯, 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글을 써서 눈물을 닦을 수 있다면, 글을 써서 쓸데없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글을 써서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아낄 수 있게 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오늘도 별일이 다 생기겠지. 세상은 나를 흔들고, 어떤 사람은 내게 상처를 줄 테고, 아버지는 삶에 대한 집념을 놓지 않을 테고, 어머니는 또 푸념을 쏟아놓을 게다. 무엇 하나 속 시원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또 견디고 버티며 오늘을 살아낼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쓸 테니 말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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