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평온하고 가벼운 인생

by 글장이


파산하고 집 날리고 야밤도주하듯 부모님 집으로 쫓겨올 때, 이것저것 챙길 정신이 없었습니다. 부모님 살고 계신 살림에다 준비도 없이 한 살림 더 얹었으니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지요. 쪽방에다 짐을 풀고 최소한의 물건만 정리했습니다.


이것 좀 버려달라며 1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에 옷가지를 가득 담아 아내가 건넸습니다. 손에 들고 가만히 살펴 보니 아들 갓난 아기 때 입혔던 손바닥만한 옷들이 가득 담겨 있더군요. 더 이상 쓸모도 없고 다른 사람 주기도 뭣해서 그냥 버려도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내 아기의 옷'을 차마 버리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면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아내와 마주 보며 얼마나 울었던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립니다. 미안하지만 이건 버리지 말자 라며 아기 옷이 가득 담긴 쓰레기 봉투를 껴안고 오열했지요.


약해 빠진 정신 상태였습니다. 추억, 아련함, 짠함, 눈물...... 그 따위 정신머리가 가슴 속에 가득 차 있었으니 전과자 파산자가 될 상황에서도 현실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겁니다.


저는 지금 '냉정한 인간'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움과 내려놓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요. 소유와 집착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습성입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보관'하려 하며 영원히 갖고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십 년째 '잘 사용하고 있는' 물건은 거의 없습니다.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집착하는 습관 때문에 '나'라는 공간은 점점 더 좁고 편협해집니다.


작고 소박한 인생이야말로 우리 삶의 기본이며 행복의 근원입니다. 이런 말이 얼마나 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감옥에서는 사과 한 알만 먹어도 행복했거든요. 고무신 한 켤레와 수건 한 장, 밥 그릇 국 그릇 수저 한 세트면 끝입니다. 그 외에는 '소유'라고 할 것이 전혀 없었지요.


죗값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적어도 내 것에 대한 집착이나 소유욕에 대한 강박은 전혀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가벼웠다는 말이지요. 감옥이라는 곳이 정신을 개조하는 곳이라면,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세상 속으로 돌아와 꽤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오래 전 그 시절에 비하면 더 바랄 게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자꾸만 뭔가 더 하고 싶고, 더 가지려 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누리고 있는데도 백퍼센트 만족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유난히 부끄러운 아침입니다.


유튜브 광고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경매 공매 관련 강좌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해당 강사가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재산을 약 150억이라 소개합니다. 우와! 150억이라니요! 재벌 아들도 아니고, 일반 서민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150억이라는 재산을 쌓았다는 것은 가히 놀랄 만한 일입니다.


부럽다는 생각도 잠시, 현실적인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부동산만 50채가 넘는다고 합니다. 잠이 올까요? 그거 일일이 다 관리하고 챙기려면 하루가 모자랄 것 같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손톱깎이 하나도 보관하고 챙겨야 하는데 집이 50채라면 당연히 손이 갈 수밖에 없겠지요.


돈 많이 버는 게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마냥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란 소리입니다. 150억. 만약 저한테 이 돈이 하루아침에 생긴다면, 과연 제대로 쓸 수나 있을까 자신 없습니다. 그래도 150억 있으면 좋겠다 싶지요? 망상입니다. 허상입니다. 허황된 꿈입니다. 딱 필요한 만큼의 돈. 약간의 여유자금. 그 정도면 한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


그럼에도 돈 한 번 벌어보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버릴 줄 아는 마음가짐'부터 제대로 갖추고 나서 시작하길 권합니다. 버릴 줄 모르면 집착하게 되고, 집착이 심해지면 150억 벌어도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겁니다. 돈이 없어 불행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150억 벌어도 여전히 부족하다 느낄 테고, 계속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과 욕심으로 살게 될 테니 이보다 불행한 인생은 없을 테지요.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는 습관을 가질수록 더 많이 채워진다는 말,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고, 그래서 더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마음 평온하고 웃을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정도라면, 이대로 살아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때로 돈과 성공에 대해 강의하기도 합니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버리기와 내려놓기를 말하는 중이고요. 상반되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전혀 아닙니다. 이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삶의 본질은 확장이라고 믿습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지 않을 거라면 살아갈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평생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겁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생산자로서의 책임도 막중합니다. 누릴 권리와 일할 의무를 동시에 이행해야 한다는 소리지요. 최소한의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면서도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재산과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원칙입니다.


물론, 사회 제도 및 정치 역할까지 따지자면 밤새도록 얘기해도 끝나지 않을 토론이 되겠지만요.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삶을 누리되 의무를 다해야 하고요. 의무를 다하되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납니다. 150억 가진 사람은 아마 오늘도 200억을 향해 달려갈 겁니다. 150만원 가진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한 오늘을 살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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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인생이겠지만, 적어도 저는 이제 아기 옷이 담긴 쓰레기 봉투를 껴안고 눈물 흘리지는 않을 겁니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요.


물건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가난합니다. 사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외롭습니다. 욕심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괴롭습니다. 분노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픕니다.


오늘, 무엇을 또 하나 버릴까 궁리해 봅니다. 저는 그만큼 또 강해질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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