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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Feb 04. 2024

인생, 좋은 날 있었다

남은 삶을 살아갈 힘


사업 실패, 감옥, 파산, 알코올 중독, 막노동...... 희망이라곤 한 줄기도 없던 시절에 저는 매일 매 순간 눈앞의 비극만 보며 살았습니다. 잠에서 깨면 불행한 현실을 마주했고, 종일 우울한 생각에 가득 찼고, 밤에 잠들 땐 눈물을 흘렸습니다. 


감옥에서 처음 글을 썼을 때, 제 글은 마치 먹물을 쏟아놓은 듯했지요. 어둡고 우울하고 쓸쓸하고 슬프고 외롭고. 좌절과 절망만 가득했습니다. 그런 글을 매일 쓰고 읽다 보니 지겹고 아프기만 했습니다. 뭔가 다른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내 인생에 조금 다른 일들은 없었을까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쓴 글은, 어머니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바지에 오줌을 싼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저한테 했던 "괜찮다!"는 말이 생생하게 기억 났지요. 그러다 문득, 어릴 적 자전거를 타다가 동네 아이와 부딪힌 일도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도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절망과 좌절의 글을 쓸 때와는 느낌이 다른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지금껏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온갖 일들을 하나씩 기억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무지 생각 나질 않았는데,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글이 기억을 불러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을 열병처럼 사랑했던 일, 초등학교 때 모형항공기 대회에 출전했던 일, 운동회 때 아버지가 돼지갈비를 사주신 일, 당구를 처음 배웠던 순간, 학교 소풍 간 날에 친구들과 옆길로 새었다가 다음 날 주임 선생님에게 박살 났던 일,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만난 그녀, 대학 입시에 떨어졌던 일, 재수학원에 다녔던 일, 이듬해 시험에 합격하고 대학생이 된 일, 또 다른 세상과 또 다른 친구들......


댐이 터진 것 같았습니다. 마구 몰려오는 그 많은 이야기를 모두 글에 담기 벅찰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많은 글을 쓰는 동안 제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7시부터 두 시간 동안 73명 예비 작가님들과 "온라인 책쓰기 수업 129기, 1주차" 함께 했습니다. 2월 정규과정 첫 수업입니다. 다들 열정과 결의 가득 품고 집중하고 경청해주었습니다. 


첫 시간에는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본질적인 이유와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누구나 자기 삶을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많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살았을 뿐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았던 순간, 그럼에도 다시 살아낸 순간들. 하루살이도 책 쓴다 합니다. 수십 년 살아온 인생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겠습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다 보면, '내 인생도 제법 괜찮았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지요. 


글을 쓰는 것은 '나'를 만나는 일이라 하지요.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어도, 아름답고 행복하고 의미 있는 순간들이 내 삶에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은 소중합니다. 바로 그것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될 테니까요.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 암 환자.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이 제 삶에 있었던 것처럼 아프고 힘든 순간도 제 인생에 있었을 뿐입니다. 삶은 이렇게, 온갖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절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저 쓸 뿐입니다. 기록하는 자는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생을 크고 넓게 보면, 사소한 일에 얽매여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 줄어듭니다. 가벼운 인생이 곧 행복입니다. 걱정과 근심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는 것 못지않게 행복과 기쁨으로도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형평성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지요. 


글 쓰는 일은 행복입니다. 내 삶에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해내는 보물찾기와도 같은 일이니까요. 잘 살았습니다. 잘 살아갈 겁니다. 내 인생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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