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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Feb 25. 2024

그 때 그 시절, 막노동과 안전화

버렸지만 잊지 않기로 했다


등산화를 새로 샀다. 넣을 자리가 마땅찮아 신발장 정리했다. 버리려니 아쉽고, 그렇다고 신지도 않는 낡은 운동화와 구두들. 혼자 살았더라면 벌써 처분했을 텐데, 아버지는 무엇이든 여간해서 버리질 않으신다. 임의로 낡은 신발 몇 켤레를 버렸다가는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이다.


마침 나가셨다. 풍수지리 동호회에서 영천으로 탐사 갔으니 저녁 때는 되어야 오실 터다. 기회다. 티나지 않게 몇 켤레만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리해두면 된다. 버릴 만한 신발을 골랐다. 그때 내 눈에 띈 익숙한 신발. 낡고 헤지고 먼지와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막노동할 때 신었던 안전화를 집어들었다.


기억은 순식간에 시간을 타고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때 그 시절. 맨 처음 인력시장을 찾았던 날, 사람들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곳은 그런 곳이었다. 처음으로 일을 나간 곳은 서대구쪽에 위치한 홈플러스였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대대적으로 하는 중이었고, 나는 거기서 온갖 잡다한 청소를 하고 자재도 옮겼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한 대 물고 피는데, 함께 일하던 나보다 두 살 많은 형님이 내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일 처음이죠?"

"네......"

"그런 운동화 신고 일하면 발 금방 다쳐요. 현장 바닥에는 못이나 유리조각이 많아요. 안전화 신어야 합니다."


'안전화'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런 신발이 있는 줄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와 검색했다. 비쌌다. 돈 한 푼도 없어서 인력시장 찾았는데, 수영이나 헬스도 아니고 따로 장비를 구입해야 하는 건지 꿈에도 몰랐다. 서문시장에 가서 3만 원짜리 안전화를 5천 원 겨우 깎아 구입했다. 나는 2만 5천 원짜리 안전화를 신고 3년 동안 별별 일을 다 했다.


종량제 봉투에 집어넣기만 하면 될 일을, 한참 동안이나 서서 안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 오시기 전에 얼른 내다버리라고, 아내가 곁에서 재촉을 하는데도 나는 안전화를 이리저리 돌려 보며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 때 그 시절은 참 힘들었다.


불과 8년만에 전혀 다른 인생으로 바뀌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고, 또 운도 좋았다. 블로그를 통해 인연 맺은 이웃들이 내 강의에 참석했고, 또 그들이 입소문도 내어주었다. 돌이켜보면, 막노동판에서 삽질하던 나를 믿고 따라준 그들이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지금이야 각자의 길을 가고 있으며 등 돌린 이도 있지만, 어쨌든 그 시절의 나를 다시 일으켜세운 여러 동력 중에는 사람이 가장 큰 힘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막노동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망치질도 제대로 못하는 초보 일꾼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일도 가르쳐주고 적응도 시켜둔 형님들. 나는 그들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가 없다.


하루 열 시간 뼈빠지게 일하고 나면 10만 원을 받았다. 인력사무소에 소개비로 1만 원을 떼주고 나면 내 주머니엔 9만 원이 남는다. 자식이 무슨 일을 하러 다니는지도 몰랐고, 시커멓게 탄 얼굴을 보며 차마 물을 수도 없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께 나는 그 돈으로 삼겹살을 사드리곤 했었다.


내가 일하러 가서 집을 비운 어느 일요일에, 아들은 제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친구들은 자기네 아빠가 무슨 무슨 직업이라며 다들 자랑하는데, 우리 아빠는 공터에서 일한다고. 입을 삐죽거리는 아들을 아내는 그저 안아줄 뿐이었다고.


어쩌다 쉬는 날,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는 길에 운동화 밑창이 홀라당 벗겨진 적 있었다. 길바닥에 놓인 신발 밑창을 주워들고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걸터 앉았다. 거지도 신지 않을 신발 한짝을 손에 들고 바라보며 다짐했었다. 오늘 이 수치와 나 자신에 대한 모멸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요즘 아버지는 등산 동호회, 노인 복지관, 친구들 모임 갈 때마다 밥값을 내신다. 어머니는 외가 친척들 만날 때마다 밥이며 커피며 지갑을 여신다. 아들은 치킨, 피자, 족발, 곱창 등 내키는 대로 잘 먹고 잘 큰다. 아내는 살이 쪘다.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그 때 그 시절에 내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그토록 괴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그때의 이은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 한 마디 꼭 전해주고 싶다.


"실패와 고통은 순간이다. 달라진다.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울고 짜고 쌩쇼 하지 말고 의연하게 매일을 살아내라!"


신발장 정리를 마쳤다. 먼지와 흙투성이 안전화는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렸다. 손을 털며 담배 한 대를 물었다. 버렸지만 잊지 않겠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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