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화를 새로 샀다. 넣을 자리가 마땅찮아 신발장 정리했다. 버리려니 아쉽고, 그렇다고 신지도 않는 낡은 운동화와 구두들. 혼자 살았더라면 벌써 처분했을 텐데, 아버지는 무엇이든 여간해서 버리질 않으신다. 임의로 낡은 신발 몇 켤레를 버렸다가는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이다.
마침 나가셨다. 풍수지리 동호회에서 영천으로 탐사 갔으니 저녁 때는 되어야 오실 터다. 기회다. 티나지 않게 몇 켤레만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리해두면 된다. 버릴 만한 신발을 골랐다. 그때 내 눈에 띈 익숙한 신발. 낡고 헤지고 먼지와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막노동할 때 신었던 안전화를 집어들었다.
기억은 순식간에 시간을 타고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때 그 시절. 맨 처음 인력시장을 찾았던 날, 사람들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곳은 그런 곳이었다. 처음으로 일을 나간 곳은 서대구쪽에 위치한 홈플러스였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대대적으로 하는 중이었고, 나는 거기서 온갖 잡다한 청소를 하고 자재도 옮겼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한 대 물고 피는데, 함께 일하던 나보다 두 살 많은 형님이 내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일 처음이죠?"
"네......"
"그런 운동화 신고 일하면 발 금방 다쳐요. 현장 바닥에는 못이나 유리조각이 많아요. 안전화 신어야 합니다."
'안전화'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런 신발이 있는 줄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와 검색했다. 비쌌다. 돈 한 푼도 없어서 인력시장 찾았는데, 수영이나 헬스도 아니고 따로 장비를 구입해야 하는 건지 꿈에도 몰랐다. 서문시장에 가서 3만 원짜리 안전화를 5천 원 겨우 깎아 구입했다. 나는 2만 5천 원짜리 안전화를 신고 3년 동안 별별 일을 다 했다.
종량제 봉투에 집어넣기만 하면 될 일을, 한참 동안이나 서서 안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 오시기 전에 얼른 내다버리라고, 아내가 곁에서 재촉을 하는데도 나는 안전화를 이리저리 돌려 보며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 때 그 시절은 참 힘들었다.
불과 8년만에 전혀 다른 인생으로 바뀌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고, 또 운도 좋았다. 블로그를 통해 인연 맺은 이웃들이 내 강의에 참석했고, 또 그들이 입소문도 내어주었다. 돌이켜보면, 막노동판에서 삽질하던 나를 믿고 따라준 그들이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지금이야 각자의 길을 가고 있으며 등 돌린 이도 있지만, 어쨌든 그 시절의 나를 다시 일으켜세운 여러 동력 중에는 사람이 가장 큰 힘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막노동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망치질도 제대로 못하는 초보 일꾼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일도 가르쳐주고 적응도 시켜둔 형님들. 나는 그들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가 없다.
하루 열 시간 뼈빠지게 일하고 나면 10만 원을 받았다. 인력사무소에 소개비로 1만 원을 떼주고 나면 내 주머니엔 9만 원이 남는다. 자식이 무슨 일을 하러 다니는지도 몰랐고, 시커멓게 탄 얼굴을 보며 차마 물을 수도 없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께 나는 그 돈으로 삼겹살을 사드리곤 했었다.
내가 일하러 가서 집을 비운 어느 일요일에, 아들은 제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친구들은 자기네 아빠가 무슨 무슨 직업이라며 다들 자랑하는데, 우리 아빠는 공터에서 일한다고. 입을 삐죽거리는 아들을 아내는 그저 안아줄 뿐이었다고.
어쩌다 쉬는 날,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는 길에 운동화 밑창이 홀라당 벗겨진 적 있었다. 길바닥에 놓인 신발 밑창을 주워들고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걸터 앉았다. 거지도 신지 않을 신발 한짝을 손에 들고 바라보며 다짐했었다. 오늘 이 수치와 나 자신에 대한 모멸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요즘 아버지는 등산 동호회, 노인 복지관, 친구들 모임 갈 때마다 밥값을 내신다. 어머니는 외가 친척들 만날 때마다 밥이며 커피며 지갑을 여신다. 아들은 치킨, 피자, 족발, 곱창 등 내키는 대로 잘 먹고 잘 큰다. 아내는 살이 쪘다.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그 때 그 시절에 내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그토록 괴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그때의 이은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 한 마디 꼭 전해주고 싶다.
"실패와 고통은 순간이다. 달라진다.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울고 짜고 쌩쇼 하지 말고 의연하게 매일을 살아내라!"
신발장 정리를 마쳤다. 먼지와 흙투성이 안전화는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렸다. 손을 털며 담배 한 대를 물었다. 버렸지만 잊지 않겠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