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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Mar 07. 2024

초고는 뜨겁게, 퇴고는 뭉근하게

조급한 마음 내려놓기


초고는 뜨겁게 씁니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질주합니다. 말이 좀 안 된다 싶어도 밀어붙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려도 일단 그냥 씁니다. 초고의 목적은 끝내는 데 있습니다. 분량을 채우기만 하면 됩니다. 내 안에 있는, 주제와 관련 있는 이야기를 모조리 쏟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초고는 그대로 책이 될 수 없으며, 초고 자체만으로 책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퇴고는 뭉근하게 합니다. 완성한 초고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두 가지 시선으로 뜯어봐야 합니다. 숲이 제대로 된 모양을 갖추었는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바르게 심어져 있는가. 한 번 고치고 나면 조금 낫습니다. 두 번 고치고 나면 좀 더 낫습니다. 세 번 다듬고 나면 또 더 좋아집니다. 최악의 퇴고는 조급함입니다. 빨리 끝내겠다는 생각을 털끝만큼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잠시 원고를 덮고 마음부터 차분하게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초고와 퇴고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두 가지 작업을 뒤바꿉니다. 초고를 쓸 때 망설이고 뜸들이고 주저하며 시간을 끌고요. 퇴고는 또 후다닥 대충 끝내려 합니다. 철저하게 지켜도 완성도 높이기 힘든데, 아예 작업 방식을 바꿔버렸으니 제대로 된 책이 나올 리 만무하지요.


책을 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제를 정하는 겁니다.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관련 경험과 사례 등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주제 정하고 제목과 목차 등을 기획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준비가 끝났으면 집필에 돌입합니다. 초고입니다. 그냥 씁니다.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생각입니다. 퇴고할 때 싹 다 뜯어고칠 겁니다. 그러니, 초고에 대해 이런저런 심각한 생각을 하는 것은 모조리 시간 낭비입니다. 나중에 퇴고를 좀 편하게 하려는 생각으로 초고에서 완성도 높이겠다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것이지요. 


초보 작가가 초고를 아무리 잘 써 봐야 그 실력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족하고 모자라고 어설프지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퇴고 단계가 있는 겁니다. 아무 생각 말고 주제와 관련 있는 모든 이야기를,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 전부를 끄집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3~4일 동안 원고 보지 말고 묵혀둡니다. 초고를 다 썼다는 기쁨, 성취감 누릴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보상도 좀 해주고, 충분한 휴식도 취합니다. 그러고나서 원고를 다시 펼쳐보면, 내가 이런 글을 쓴 적 있었나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이제, 퇴고를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서너 번 반복해서 원고를 정독합니다.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읽는 것이니까 시간이 제법 걸릴 수 있습니다. 대충 건너뛰지 말고, 문장 하나 하나 씹어먹듯 읽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어색하다 하는 부분은 싹 다 표시를 해둡니다. 


먼저, 숲을 봅니다. 각 챕터별로 들어갈 내용은 다 들어가 있는지, 순서 바꿀 곳은 없는지, 해당 챕터에 딱 맞는 소주제가 구성 되어 있는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수정 및 보완 작업을 합니다. 다음으로 나무를 봅니다. 문법, 문맥, 표현력, 어휘, 메시지 등 윤문하고 교정합니다. 


퇴고 마치면 그럴 듯한 글이 완성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고치고 다듬고 수정하고 보완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맞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또 한 번 퇴고를 해야 합니다. 이런 작업을 몇 차례 되풀이해야 비로소 글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세계적인 거장들도 스무 번 서른 번 퇴고합니다. 완벽한 글을 만들기 위해 퇴고를 거듭하는 게 아닙니다. 이전보다 좋아지기 위해서죠. 퇴고할수록 글은 좋아지게 마련이니까요. 그렇다면, 퇴고는 언제 끝낼 수 있는 걸까요? 고칠수록 좋아진다 하면 영원히 끝낼 수 없는 게 아닐까요?


퇴고는 끝내는 게 아니라 중단하는 겁니다. 말씀드린 대로, 고치면 고칠수록 글은 좋아지게 마련이라 계속 퇴고하면 죽을 때까지 원고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수준에 이르면, 이제 그만 원고를 보내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부족함이 눈에 띄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자기 수준에서 할 만큼 했다 느끼는 때가 옵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시간과 노력. 그 때가 바로 퇴고를 중단할 시기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글을 많이 써 보지 않은, 책을 출간한 경험이 없는 초보 작가의 경우에는 퇴고를 언제 중단해야 하는가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자신이 할 만큼 했는지 아예 판단을 못 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는 코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원고를 살펴줄 수 있는 코치가 곁에 있으면, 퇴고를 계속해야 하는지 중단해야 하는지 판단을 내려줄 겁니다. 글쓰기/책쓰기 코치의 자격에 관해서는 추후 별도의 포스팅을 발행토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초보 작가에게 있어서는 퇴고를 거듭하고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최악의 퇴고는 조급함이라 했습니다. 특히, 초보 작가들은 자신의 책을 빨리 세상에 내놓고 싶어 합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책은 빨리 내는 것보다 제대로 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책이라는 물건은 한 번 출간 되어 세상에 나오면 2쇄를 찍기 전까지는 더 이상 손댈 방법이 없습니다. 맞춤법 하나라도 틀리면 그대로 전국에 깔리는 겁니다. 돌이킬 수 없다는 얘깁니다. 


퇴고는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입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정성도 들이지 않고, 그저 시간만 보내고, 어쩌다 원고 대충 훑어 보다가 눈에 걸리는 한두 개만 수정하고, 또 덮어 놓고 시간 보내고......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 시간 많이 보냈다는 이유로 "최선을 다했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지요. 


퇴고 대충한 작가들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엄청 당당하고 뻔뻔하다는 사실입니다. 무조건 열심히 했다 합니다. 할 만큼 다 했다 큰소리칩니다. 잠도 안 자고 퇴고했다고 목에 핏줄 팍팍 세웁니다. 한참 배우고 겸손해야 할 초보 작가가 자신의 노력을 이처럼 소리높여 강조한다는 말은, 열심히 안 했다는 소리입니다. 


진정 열심히 퇴고한 작가는, 아직도 자기 글에 부족함이 많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코치가 그만 멈추고 투고를 진행하자 해도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살펴보겠다며 시간을 더 달라 합니다. 그런 사람의 원고는 당장 투고해도 좋은 출판사 만날 수 있습니다. 


초고와 퇴고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지요. 글 쓰고 책 출간하는 이유는 "빨리 성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속도를 늦추고, 생각하고, 숙고하고, 살피고, 돌아보고, 크게 심호흡 하면서 "멈추기 위함"이란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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