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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Mar 06. 2024

좋아서 쓰면 얼마나 좋을까

글 쓰는 건 기쁜 일이다


저는 제가 쓰고 싶은 글만 씁니다. 언젠가 모 출판사에서 연락온 적 있습니다. 총 세 번에 걸쳐서 서로 다른 기획안을 제시했었지요. 첫 번째는 야설이었습니다. 야한 소설을 써서 출판사에 주면 온라인에 유령 작가로 표기하고 올리겠다는 거였습니다. 엄청난(?) 인세를 제시했지요. 


두 번째는 '글쓰기 교과서'를 제안 받았습니다. 글쓰기에 관한 모든 내용을 A부터 Z까지 일목요연하게 사전 형식으로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위대한 작가도 아니고, 도저히 그런 책을 쓸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첫 번째 제안과 마찬가지로 무시 못할 만큼의 돈을 주겠다는 약속도 함께였지요. 


세 번째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일인칭 시점으로 쓰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읽는 사람은 재미 있을지 모르겠지만, 쓰는 저는 집필 기간 내내 참혹했던 기억을 되살려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저의 감빵 생활을 그닥 슬기롭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돈만 보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 때문에 인생 말아먹은 사람이 또 돈에 미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출간 자체를 위해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책은 한 번 출간하고 나면 평생 저의 수식어가 됩니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을 돈 때문에 억지로 써서 죽을 때까지 꼬리표 붙이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초보 작가가 무슨 건방을 그리 떠느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업 실패하고 감옥에 다녀오고 파산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헛인생 살면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돈이나 출세만을 목적으로 삼으면 그 인생 무조건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온라인에는 돈 얘기 가득합니다. 무슨 놈의 수익화가 이리도 많은지. 한 달에 천만 원 번다 소리를 들으면 토할 것 같습니다. 부자 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도 진절머리 납니다. 저는 아직도 "누구의 방법을 따라해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본인이 직접 하는 모습 본 적이 없습니다. 그토록 쉽고 명확한 방법인데 왜 검증할 만한 근거와 자료는 찾기가 힘든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산다? 글쎄요. 이건 좀 무책임한 말 같습니다.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한 번씩 보면서, 저 주인공의 가족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인공은 자연을 벗삼아 무소유의 기쁨과 낭만을 즐기는 듯하지만, 도시에 남아 있는 가족은 '가장도 없이' 고생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닌가 염려되는 것이지요. 


인생은 무조건 자기 마음 대로만 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각자가 짊어진 책임이란 게 있고, 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자기 몫을 다해야 하지요. 그러나, 글은 다릅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써도 됩니다. 타인을 비방하거나 누군가를 힐난하는 글만 아니라면, 쓰고 싶은 글 얼마든지 써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렇게 마음 대로 써가지고 무슨 돈벌이가 됩니까?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요. 쓰기 싫은 글 억지로 쓰면 돈 되나요? 어차피 이래 쓰나 저래 쓰나 초보 작가 글솜씨로 큰돈 만지기는 힘든 현실 아니겠습니까. 독특한 기획안, 엄청난 필력, 수려한 문장력으로 독자를 휘어잡는 천재적인 작가가 아닌 이상, 글의 주제를 어떻게 잡는가 하는 것으로 수입을 좌우하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 우선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자신이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지요. 무조건 책만 내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자기 안에 깃든 이야기를 마음껏 뿜어내고, 현재 자신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고치고 다듬어서, 말 그대로 자식 낳는 심정으로 책을 출간해야 마땅하지요. 어렵고 힘든 과정입니다. 그러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만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다는 얘기지요. 


책 내는 데에만 급급하면 부끄러운 책 나옵니다. 완벽한 책을 쓰자는 게 아니지요.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노력하고 연습하고 고치고 다듬어서 스스로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책을 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책을 두루 읽다 보면, 어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고민하고 숙고해야 합니다. 즐겁게 쓰고, 기꺼운 마음으로 퇴고하고, 설레며 출간하는 것이죠.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글을 쓰려 하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셈이 됩니다.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또 하나의 삶의 기쁨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죠. 


기획, 초고, 퇴고, 투고...... 어느 하나 쉬운 단계가 없습니다. 매 순간 벽을 넘는 기분이죠. 오죽하면 퇴고 앞둔 이들에게 가발 준비하라는 얘기까지 하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하나뿐인 아들에게도 글 쓰고 책 출간하라는 말을 거의 매일 합니다.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그 글을 읽는 독자가 만족하고, 또 다른 글을 쓰고...... 글 쓰는 과정에서 보람과 희열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살면서 다른 일 많이 해 보았지만, 글 쓰면서 얻는 것만큼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기쁨과 행복이란 단어가 추상명사라서 쓰지 않는 이들에게 전달이 될까 염려스럽긴 합니다. 어쨌든 저는, 1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절반은 설명이 될 거라 믿습니다. 


큰 실패를 겪었습니다. 자살 시도까지 여러 번 했었고요. 내 인생 이제 끝이다. 무너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데요.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한 후에야 알았습니다. 내가 겪은 실패가 나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을요. 그것은 그저, 하나의 글감일 뿐이었습니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도 여전히 저의 실패를 곱씹으며 어느 기차역 주변 노숙자로 살고 있었을 겁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글을 쓴다는 건, 내가 나를 똑바로 직시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거짓말로 글을 쓴다? 한 번 해 보세요. 그런 글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 다섯 편 쓰면 많이 썼다 할 겁니다.


진실을 쓰겠다 작정하지 않아도 진실을 쓰게 됩니다. 처음에는 문장이 서투르고 어휘력이 부족해서 있는 그대로 전부 쓰는 것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장이 서툴다고 해서 삶까지 가려지지는 않습니다. 공부하고 연습하고 훈련하고 반복하다 보면, 내 안에 있는 이야기가 남김 없이 손끝을 타고 흘러나옵니다.


좀 못 쓰면 어떻습니까. 저도 글을 잘 쓰는 편 아닙니다. 그럼에도 10년 넘게 매일 쓰다 보니, 때로 속 시원할 때도 있고 눈물 펑펑 쏟을 때도 있고 새로운 삶을 내다보기도 합니다. 이런 제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응원해주는 독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요. 기쁨이라는 말로 표현하기 충분하지요. 


돈벌이 말고요. 좋아서 쓰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출간만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니 책도 나왔다 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글 쓰는 게 좋습니다. 함께 기뻐할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 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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