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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Mar 08. 2024

글 쓰는 시간, 지금에 깨어 있기

즐길 수 있는 특권



              글 쓰기가 힘들어요!            

              제가 썼지만, 뭘 썼는지 모르겠어요.            

              주제, 소재 등 찾기가 어려워요.            

              했던 말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분량 채우기가 힘들어요.            


글 쓰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면, 위와 같이 다양한 답변이 돌아옵니다. 글을 쓴 경험이 부족하고, 또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 및 경험과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인 듯합니다. 


놀이터에서 모래 장난을 하는 아이들을 떠올려 봅시다. 성도 만들고 탑도 쌓고 구덩이도 파고 길도 만듭니다. 모래는 금방 허물어집니다. 높이 쌓기도 힘듭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그럴 듯한 모양이 잘 만들어지지도 않습니다. 겨우 만들어놓은 성과 탑과 구덩이와 길은 금방 망가져버립니다. 


              성 만들기가 힘들어요.            

              금방 무너져버려요.            

              모양이 잘 나오지 않아요.            

              높이 쌓기가 어려워요.            


어린 아이들은 위와 같은 불평이나 불만을 터트리지 않습니다. 즐깁니다. 쌓고 무너지고 또 쌓고 만들고.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모래를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힘들고 어렵다며 괴로워하는 일 없습니다. 


아이들은 뭔가를 만들고 완성해간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냥 '재미 있게 노는' 것이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봅니다. 애써 쌓아올린 탑이 무너진다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일도 없습니다. 쓰러지면 다시 만들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공들여 쌓은 모래탑은 쉽게 무너져버렸지만, 오늘 다시 모여 또 이런저런 모양을 만듭니다. 어제의 실패 따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만드는 성과 탑과 구덩이와 길이 점점 근사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반복을 통해 실력을 쌓아올리고 있다는 증명이지요. 


매주 토요일 아침, 여섯 명의 주니어 작가들과 글쓰기 모임을 갖습니다. 어른들과 수업할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약 2년째 진행중인데요. 그 동안 누구 하나 힘들다 어렵다 불평한 적 없습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게의치않습니다. 즐깁니다. 이런 글도 써 보고 저런 글도 써 봅니다. 애써 한 페이지 채웠지만, 지우는 데 망설이지 않습니다. 또 다시 씁니다. 주니어 공저를 출간하기도 했지요.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것! 우리 어른들은 이 단순한 과정에 너무 인색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뭘 하나 했다 하면 무조건 성공해야 하고, 글 한 편 썼다 하면 지우고 고치길 바퀴벌레보다 싫어하고, 좀 못 썼다 싶으면 머리를 싸매고 절망합니다. 지금을 즐기지 못한 채, 오직 미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일에 푹 빠져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공부 자체에만 집중합니다. 결과에만 연연하며 매 순간 안절부절 우왕좌왕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력과 열정 없는 아마추어입니다. 지금을 즐길 줄 모르고, 스스로 고통과 답답함을 짊어지는 격이죠. 일상이 괴롭고, 빨리 지치는 이유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고작 책 한 권 내기 위함인가요? 산에 오르는 이유가 오직 정상을 정복하기 위함이라면, 불과 10분의 만족을 위해 3~4시간 개고생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산 정상에 오르는 것과 무관하게 그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주변 풍경과 맑은 공기를 즐길 수 있다면, 오르는 동안 내내 행복할 수 있다면, 정상에서의 10분 따위 생각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을 겁니다. 이미 3~4시간 동안 충분히 행복했으니 더 바랄 게 없지 않겠습니까. 


글 쓰는 동안 내내 행복할 수 있다면, 조금 못 쓴들 어떠하고 시간 많이 걸린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결과는 잠깐이고 과정은 깁니다. 인생 모든 일이 마찬가지입니다. 과정에서 행복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인생살이 문제 될 것이 없지요. 힘들고 어렵고 불행한 이유는, 모두 미래와 결과에만 초점 맞춘 탓입니다. 


모래성의 운명은 짧습니다. 결국 무너집니다. 결과에만 연연한 사람들은 모래성을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무너질 게 뻔한데 무엇하러 애쓰며 만들겠습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다릅니다. 모래성을 쌓아올리는 시간 자체를 즐기고, 그것에서 행복과 충만을 느낍니다. 


과정을 즐기지 못한 사람이 나중에 돌탑을 쌓으려 하면, 실력과 경험이 없으니 서툴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모래성 쌓으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낸 이들은 돌탑도 거뜬하게 쌓아올릴 수 있습니다. 이미 충분한 경험을 쌓았고, 또 탑을 쌓는 과정이 행복이란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글 쓰는 게 쉽다 어렵다 그런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쉽다고 해서 술술 써지는 것도 아니고, 어렵다고 해서 당장 그만둘 일도 아니지요. 별 의미 없는 소리입니다. 다만, 이왕에 글 쓰는 삶을 선택했다면, 투덜거리고 징징거리기보다는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즐길 수 있느냐? 속도를 줄이고 과정에 충실해야 합니다. 조급한 마음이 행복과 연결되는 꼴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여유를 가져야만 즐길 수 있다는 얘기지요. 맨날 결과, 결과, 결과만 외치며 사는 사람 있는데요. 그래서 지금 삶의 결과가 어떠한가 직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시절, 오직 성과와 결과만 추구하며 살았었는데요. 정신 차려 보니 감옥에 있더라고요. 이후로, 매 순간 즐기고 행복해야겠다 작정을 하고 살았습니다. 결과야 어찌 되든, 오늘 글 쓰는 시간 동안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은 거지요. 10년 지나 돌아보니, 제 뒤에 [자이언트]라는 성이 딱 버티고 있었습니다. 


밥 먹을 땐 밥 먹는 데에만 집중하고, 똥 쌀 땐 똥 싸는 데에만 집중하고, 잠 잘 땐 잠 자는 데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무엇을 하든 스마트폰에만 집중하는 세상입니다. '지금'은 온데간데 없고, 항상 과거와 미래 그리고 자극적인 재미에만 생각이 뻗쳐 있는 것이죠. 


정치인이 국민에게는 관심 없고 코인 투자나 하고 자빠졌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있겠습니까. 축구 선수가 축구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탁구를 치고 있으니 이 사단이 난 것이지요. 의사가 환자의 생명과 안전에 집중하지 않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으니 세상 욕을 다 먹는 겁니다. 


작가가 독자를 위한 글쓰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베스트셀러나 팔리는 책쓰기 혹은 돈이나 명성 따위에 집착한다면, 저들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본질이 있고, 그 본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실력은 그 다음입니다. 이것이 삶을 대하는 기본이지요. 


오늘 글 한 편을 씁니다. 오늘 글 한 편을 행복한 마음으로 씁니다. 오늘 글 한 편을 쓰면서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작가는 행복한 삶을 만든 것이지요. 고뇌? 번뇌? 그런 거 하려면 적어도 헤밍웨이 정도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초보 작가라면 초보 작가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그냥 막 즐길 수 있는 특권을 누려야 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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