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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Mar 27. 2024

굳이 시간순으로 쓸 필요 없다

정해진 틀은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떻게 보냈다고, 굳이 시간순으로 자신을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보 작가 중에는 글을 쓸 때마다 시간 흐름을 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요. 글을 쓸 때 '어떻게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생각 나는 것부터, 삶이 흔들린 순간부터, 눈이 탁 트인 순간부터, 아무 때나 시작해도 무방합니다. 


예를 들어, 독감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쓴다고 가정해 봅시다. 주로 이런 식이죠. 


               며칠째 머리가 지끈거렸다. 별 것 아니라 여겼다. 금방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오늘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팀장에게 말하고 반차를 썼다. 회사 근처 내과에 들렀다. 의사는 목 상태를 확인하고 청진기로 숨소리를 들어 보더니 콧속으로 무슨 막대 같은 걸 집어 넣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왔는데 독감이란다. 하루만이라도 입원해서 링거를 좀 맞으면 좋겠다는 의사의 말에 그러겠다고 했다.            


별 문제 없습니다. 이렇게 써도 됩니다. 글에 정답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글을 이렇게 시간순으로 쓰면 독자가 원하는 '결정적 순간'은 항상 뒤에 나올 수밖에 없겠지요. 핵심 메시지를 읽기 위해 한참을 읽어 내려가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써 보겠습니다. 아래 글을 잘 읽어 보고, 위에 쓴 글과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눈을 떴다. 세 시간이나 지났다. 몸이 침상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했다. 링거병에 담긴 수액이 거의 바닥났다. "좀 어떠세요?" 간호사가 묻는다. 오늘 입원했다. 독감이다. 나를 챙기지 않은 탓이다.  몸은 정직하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밑도 끝도 없이 한가운데로 푹 파고들어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계속 글을 쓰면서 하나하나 풀어내고 설명하고 보여주면 됩니다. 굳이 시간순으로 모든 걸 나열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참하게 쓸 수 있는 요령들이 분명 있긴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써야 한다는 기준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글 한 편 쓰는 것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하고 싶은 말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살아갈 뿐이지요.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면, 자기 마음에 환기를 좀 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정답 맞추려고 글 쓰는 거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내가 배우고 깨달은 이야기. 이런 것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남기고 전하는 행위입니다. 


엉망진창 글 한 편 써 보고, 그런 다음 책 한 꼭지 읽어 보고, 또 내 글 한 번 써 보고, 다시 책 몇 페이지 읽어 보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조금만 지나면 글 쓰는 요령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기본을 익힌 후에, 더 많이 더 자주 글을 쓰면서 자기만의 방식도 하나 둘 만들어내면 됩니다. 


어릴 적부터 정답에 연연하며 교육 받았습니다. 하여, 무슨 일을 하든 '맞다, 틀렸다' 기준으로 삼게 되었지요. 인생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 가는 걸 먼저 써도 된다는 사실을. 내 가슴에 콕 박힌 무언가를 가장 먼저 이야기해도 된다는 사실을 말이죠.


누구나 상처 하나쯤 품고 살아갑니다. 모두가 가슴 따뜻했던 기억 하나쯤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부터 써도 됩니다. 나이가 몇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아버지 어머니가 무얼 하는 사람이었는지, 형제 자매는 또 어떤 사람인지. 무슨 가계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작가가 똑같이 자기 소개를 그런 식으로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재미 없고 건조한 글만 쏟아지겠습니까. 


"5미터 담장 아래 굳게 닫혔던 철문이 쿠쿵 하고 열렸다. 저 문이 그리 쉽게 열리는 것인줄 몰랐다. 환호성도 들리고 우는 사람도 보인다. 나는 혼자다. 아무도 나오지 말라 했다. 독립운동하고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마중은 무슨. 가방 하나 들쳐메고 의정부 터미널로 향했다. 경포 가는 표를 끊고는 버스 정류장 옆 순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김이 폴폴 나는 순대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었다. 뜨거웠다.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쓸 때는 살아온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부터 써도 됩니다. 어떻게 써도 상관 없고, 무엇을 써도 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유입니다. 얽매이지 말고, 눈치 볼 것도 없고, 잘 쓴다 못 쓴다 평가하지도 말고. 그냥 손 가는 대로 나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죠. 


글쓰기/책쓰기 관련 도서나 영상을 보면, 무턱대고 써서는 안 되며 문장 쓰는 법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 종종 보게 됩니다. 절대 반대입니다. 쓰는 습관이 없는 상태에서는 백날 배워도 실력 늘지 않습니다. 반드시 두 가지 병행해야 합니다. 공부! 그리고 연습! 머리로 익히는 과정과 손으로 직접 쓰는 행위를 병행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악기를 배울 때, 노래를 배울 때, 파워포인트를 배울 때, 캘리그라피를 배울 때, 모두 똑같습니다. 이론을 배우면서도 실습을 병행해야 하고, 연습하고 반복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직접 써 보는 게 먼저입니다. 쓰고 싶은 내용을 먼저 써 봐야 합니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마구 펼쳐내 보아야만 자신이 어떤 글을 얼마나 쓰고 싶은가 알 수가 있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글을 쓰기 시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어쩌면 끝내 쓰지 못할 수도 있고요. 


글 쓰는 방법은 다양하고 많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백만 가지쯤 된다고 해야 할까요.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배우는 사람에 따라 자기만의 방식이 있을 수 있지요. 딱 정해진 하나의 방법으로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이렇게만 써야 한다? 그런 건 없습니다.


오늘 글 한 편 써 보세요. 생각 나는 대로. 이 얘기 썼다가 저 얘기 썼다가. 갈팡질팡. 횡설수설. 산으로 가는 글.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가 무슨 세상을 바꿀 만한 연구 논문을 쓰는 게 아니잖습니까. 초보 작가이고,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완성도 높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은 오히려 글 쓰는 즐거움을 모조리 뺏앗는 악습에 불과합니다. 


글 쓰는 이유가 뭘까요? 사람마다 그 목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고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바라기 때문 아닐까요? 그런데도 쓸 때마다 괴롭고 힘들고 스트레스 받기만 한다면, 굳이 글을 쓸 필요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살아도 힘든 세상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를 괴롭히는 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옥에서 맨 처음 글 썼습니다. 주변 사람들, 심지어 가족마저도 제게 쓰지 마라고 했습니다. 일단 글을 잘 못 썼고요. 그들은 저의 수치스러운 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게 마땅찮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썼습니다. 뭐 어때? 글 못 쓰는 사람은 글 쓰면 안 되나? 세상에 글 못 쓰는 작가 하나쯤 있어도 괜찮잖아! 이것이 저의 고집이자 개똥철학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매일 썼지요. 쓸수록 오기가 생겼고, 무엇보다 쓰는 동안 제가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10년 지나도록 매일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잘 썼다 못 썼다 따지지 말고, 오늘은 어떤 글을 썼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작가니까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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