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을 유보하는 습관

시간과 정성을 들인 후에

by 글장이


말을 해놓고 후회한 적 많습니다. 사람을 평가한 후에 전혀 다른 모습을 보면서 놀란 적도 적지 않습니다. 완벽한 사람 없습니다. 모두 각자의 생각과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나 현상을 볼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성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요.


객관적으로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생각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열 사람 말 들어 보면 판단은 열 가지로 구분되고요. 이렇듯, 말이나 행동에 있어 분명한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어렵고 애매한 일입니다.


성급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우가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판단을 유보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일을 하거나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신속한 판단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판단만큼은 절대 조급해서는 안 되겠지요.


SNS 시대입니다. '좋아요'에 홀린 세상이지요.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즉흥적인 반응을 습관적으로 보여야 합니다. 버튼을 클릭하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탓에 무엇이 왜 좋은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예' 아니면 '아니오' 대답하는 데에만 능숙해져서 "어땠습니까?"라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서평이나 독후감 쓰는 사람 많은데요. 온라인에 올라오는 많은 글을 읽어 보면, 대부분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자기 소감을 간단히 몇 줄 기록한 게 전부입니다. 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느끼고 생각했는가 구체적인 소감이나 평가가 아쉽다는 말입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제대로 뒷받침하여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고, 단답형이나 양극단의 표현만 하는 때가 많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어울릴 만큼 디테일한 대답을 듣기가 참 힘듭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려 12년 공부합니다. 대학까지 포함하면, 학교 공부만 16년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공부하고 자신을 갈고 닦았는데도, 막상 회사에 가서 면접 보면 불과 5분만에 당락이 결정됩니다. 허탈하고 아쉽지요. 어떻게 '나'라는 존재를 단 5분만에 평가할 수 있는 걸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오늘 내가 본 그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겁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속의 깊이는 함부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읽은 책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작가가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귀담아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열 장도 채 읽지 않고서 좋다 싫다 별로다 평가해버리면, 책 한 권 쓰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작가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겠지요.


누군가 나를 짧은 시간에 평가하면 기분 나쁘듯이, 내가 상대하는 모든 사람과 세상에 대해서도 시간과 공을 들여 판단해야 합니다. 즉흥적으로 평가하지 말고 판단을 유보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또 다른 면이 있을 거라는 여지를 두어야 그 사람과 현상의 전체를 볼 수가 있겠지요.


예전에는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 만큼 사랑과 애정을 갖고 사람을 상대했지요. 그러나, 온라인 세상이 되고 난 후부터는 무조건 척 보고 판단해버리는 속전속결 습성이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서 정성이라는 것이 싹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빠른 판단과 평가가 대체적으로 옳다면야 크게 문제 될 것도 없겠지요. 허나, 저의 경우만 보더라도 잘못 보고 잘못 판단하고 섣불리 평가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조금만 시간을 들여 다시 생각해 보았더라면 훨씬 나은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하는 때가 잦습니다.


빨리 성공해야 하고, 빨리 돈 벌어야 하고, 빨리 책 읽어야 하고, 빨리 글 써야 하고, 빨리 이뤄내야 하고...... 아주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인생이 무슨 레이싱도 아니고, 뭐만 했다 하면 빨리 빨리 외쳐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빨리 빨리를 외쳐서 내 삶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글쎄요. 실수와 실패만 가득하고 제대로 이룬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묵묵히 꾸역꾸역 차근차근 느리게'를 장착한 후부터 제 인생은 급속도로 좋아졌습니다.


숨을 깊이 쉬어야 합니다. 충분한 시간과 마음 여유를 갖고, 더 보여줄 건 없는가 기다리는 심정으로 사람과 세상과 현상을 마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인생 최고의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그 사람 최고의 면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한 번 더 봅니다. 다시 만납니다. 귀를 기울여 봅니다. 평가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두루두루 다 볼 수 있는 사실 자체가 귀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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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 똑같습니다. 쉽다, 어렵다, 힘들다, 미치겠다, 자꾸만 평가하고 판단하려 들지 말고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평가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 돕기 위해 쓰는 것이지요. 속도를 늦춰야 제대로 도울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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