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투지 않을 권리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

by 글장이


누군가와 다투고 나면 속이 편치 않습니다. 싸울 때는 자신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주장하며 온힘을 다해 이기려 하지만, 정작 싸움에 이기고 나면 허탈하기도 하고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감정 탓도 큽니다. 싸울 때는 격해지거든요. 앞뒤 분간도 하지 않은 채,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마음만 가득합니다. 싸움이 끝나고 호흡이 편안해지면, 굳이 그렇까지 싸울 일이었나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서 통쾌하거나 행복한 기분을 느낀 적 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지고 나면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이겼을 때는 허탈하고 무안해집니다. 싸움의 결과와 상관없이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감정과 에너지만 낭비한 셈이지요.


문제는, 그런 경험을 여러 차례 했으면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또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 시뻘겋게 달아올라 싸움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험을 했을때 배우고 깨닫지 못한 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삶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타인과 싸우는 것일까요. 무슨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을 이기려 드는 것일까요? 왜 나의 생각과 주장을 기어이 고집하는 것일까요?


첫째,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게 마련인데요.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마치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문이지요.


둘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자신과 비슷한 철학이나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서만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죠. '내편'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결국 '적'을 만드는 셈입니다.


셋째, 확증편향 때문입니다. A가 옳다고 믿으면, 이후로는 A가 옳다는 쪽으로만 모든 사건과 문제를 해석하려 합니다. A가 옳지 않다거나 B가 옳다는 이야기는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정치인들 토론하는 거 한 번만 보면 즉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정도만 정리하고 끝내겠습니다. 원인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안이겠지요. 어떻게 해야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겁니다. 나는 파란색 안경을 쓰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빨간색이나 노란색 안경을 쓰고 살아갑니다. 나는 세상이 파랗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세상이 빨갛기도 하고 노랗기도 하거든요. 싸울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각자가 쓰고 있는 안경의 색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모두가 안경을 벗고 허심탄회하게 소통을 하거나. 다름을 인정하면 싸울 일이 없겠지요.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침묵입니다. 인생 절반 살았는데요. 제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문제와 고난과 싸움과 갈등과 시비와 불행은 모조리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감옥에 있을 때 깨달았는데요. 얼마나 후회 막심하고 속이 상했는지 말도 못합니다. 입만 다물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 너무 많았던 겁니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경청입니다. 두 번째로 강조했던 '침묵'을 제대로 실천하면, 경청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상대가 말을 할 때, 대부분 사람은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하나는 내 생각과 같은가 판단하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반격할 말을 준비하는 겁니다. 상대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누군가의 말을 있는 그대로 귀기울여 듣기만 해도 싸울 일은 절반으로 줄어들 겁니다.


싸우고 나면 이겨도 져도 불행하다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 월급이 많은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상대 정치인과 매 순간 죽을힘을 다해 싸우며 사는 것이 일이기 때문에 늘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행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돈이라도 많이 받아야 하겠지요.


비꼬는 내용이 되어버려 또 씁쓸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는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욱하는 마음에 누군가와 멱살을 잡곤 하지만, 그 싸움의 결과가 내게 남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운전하면서 한 판 붙어가지고 기어이 승리했다 칩시다. 무슨 영광이 있고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지나고 나면 싹 다 의미 없는 낭비이고, 어린아이 같은 초라한 이미지만 남길 뿐입니다.


저도 성질이 못된 편이라 많이 싸우며 살았습니다. 이긴 적도 많고 진 적도 많습니다. 언제 누구와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소중한 제 삶의 순간들을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날려버린 것이지요. 싸움에 이겼다고 트로피 받은 적도 없고, 싸움에 졌다고 인생 점수 잃은 적도 없습니다.


얻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기를 쓰고 싸웠으니,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를 만난다면 정신 차리라고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습니다. 지금도 한 번씩 욱할 때가 있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상대에게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사고방식을 완전히 뜯어내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이지요.


여든 넘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맨날 싸웁니다. 베란다 화분에 물 주는 일로도 싸우고, 양말을 빨래통에 내놓지 않는다며 싸우고, 반찬이 짜고 싱겁다며 싸웁니다. 어린아이처럼 매일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스트렛도 받지만, 그러다가 또 다정하게 앉아 서로의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주는 두 분 모습 보면서 마음 짠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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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둘 필요 없습니다. 싸울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죽음뿐입니다. 모두 함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인데, 물고 뜯고 싸워서 뭐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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