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라도 마음 편안하게 사셨으면
밤새 기침 소리를 들었다고 하셨다. 혹시 감기에 걸린 건 아닐까. 아니면 폐에 무슨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별 걱정이 다 들어서 잠을 설쳤다고. 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하러 나오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셨다. 나는 밤새 기침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여름이다. 아마 저 밖에서 술 마신 아저씨가 농구장 벤치에 앉아 밤새 기침을 해댔나 보다.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듣고는 내가 하는 기침이라고 생각하셨을 테지. "어릴 적부터 네가 기침을 많이 했다. 콜록거리는 어린 너를 두고 일하러 가는 에미 심정이 찢어지는 듯했다."
몸이 아플 때가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낫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 사람 다 그렇다. 어머니는 아들인 나를 아직도 어린 아이처럼 여기신다. 내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아내와 아들이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인데도. 어머니는 나를 아직도 애지중지하신다.
아내는 나를 보며 부럽다고 한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부모 없는 아내 입장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내가 부러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부럽다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에는 못마땅하다는 기색도 역력하다.
대학교 2학년인 아들녀석도 할머니가 아빠를 챙기는 모습이 탐탁지 않다. 아이고 아이고, 건강 챙겨라, 조심히 댕겨라, 차 조심하고, 길 조심하고, 밤길 조심하고....... 이런 잔소리(?)가 매일 들리니까 듣기 싫을 만도 할 거다.
나이와 상관없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은 언제까지나 자식일 뿐. 어머니 심정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정도가 조금 심해서 챙김을 받는 나조차 부담스럽다는 게 문제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어린 아이 아니다. 이제는 믿음직스럽게 지켜봐 주셔도 될 것 같은데. 아직도 내가 그 만큼 미덥지 못한 탓인가.
밥 먹을 때마다 물으신다. "또 나가나?" 억양이나 뉘앙스가 마치 어디 죽으러 가는 아들 보내는 분위기다. 참 듣기 싫다. 그냥 태연하게 다녀와라 한 마디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강의하러 가는 나는 힘이 다 쪽 빠진다.
가끔 용돈 드릴 때가 있다. 받으실 땐 고맙다는 말씀을 열 번쯤 하신다. 며칠 지나면 그 돈 어디다 썼는지 흔적도 없다. 나는 알고 있다. 어머니가 그 돈을 어디에 쓰시는지. 그래도 모른 척한다. 내 손을 떠난 돈이니까 어머니가 어디에 누구에게 쓰든지 관연할 바 아니니까.
사업 실패하고 벼랑 끝에 선 적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 내게 털어넣으셨다. 그 돈으로도 해결하지 못해 결국 철창 신세를 졌다. 돈으로 도움은 받았지만, 당시 어머니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내게 상처가 되었다. 나는 죽일 놈이었고, 어머니는 술을 한 잔 드신 후에 거실에 앉아 혼자 목놓아 외치셨다. "내 연금 돌리도! 내 연금 돌리도!"
나는 어머니께 사랑도 받았고 미움도 받았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자식된 도리로 부모를 섬겨야 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름 노력도 한다. 그럼에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어머니를 향한 원망과 회한이 서려 있다.
노부모를 모실 때 자식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태도가 있다. 밖에 나갈 때에는 목적지를 명확하게 말씀드려야 하고, 돌아와서는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올려야 한다. 부모가 물으면 성심껏 답해야 하고, 부모가 묻지 않는 내용조차 자세히 알려야 한다. 틀린 말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때로 이 모든 것이 귀찮을 때가 있다. 나는 불효막심한 놈인가.
요즘은 부모와 자식이 따로 사는 집이 많다. 사업 망한 후에 감옥에 갔다. 아내와 아들 머물 곳이 없어 대구 집으로 내려와 부모께 얹혀 살기 시작했다. 두 집 살림 합해졌으니 좁은 집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들 없는 어머니, 남편 없는 아내가 매일 얼굴 마주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나는 감옥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편지로 받아 읽으며 가슴앓이를 했다.
세상에는 마땅히 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는 마땅히 감정이란 것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매일 매 순간 도리와 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지금처럼 내 몸 상태가 최악일 때는 도리보다 감정 쪽으로 기우는 때가 많다. 한숨이 늘었다.
여자들은 말을 뱉는다. 남자들은 말을 삼킨다. 여자들은 답답해 하고, 남자들은 속시끄러워 한다. 어머니와 아내는 폭발할 때마다 온갖 말을 다 해버린다. 그리고, 서로 뱉은 말을 오래도록 곱씹으며 증오하고 원망한다. 아버지와 나는 말을 아낀다. 시간에 기댄다. 며칠 지나면, 또 아무렇지 않은 듯 서로 웃으며 어울린다.
어머니는 어머니 대로, 아내는 아내 대로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내게 쏟아부어 나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놓고는, 사흘만 지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멀쩡하게 지낸다. 이제는 그조차도 참기가 힘들다.
사람이 감정 싸움을 할 때는 누구나 자신이 정당하고 옳다는 사실만 강조한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히지 않는다. 어린 아이와 다름없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요. 쟤가 먼저 때렸어요."
가만히 있는데 때리는 미친 놈이 어디 있겠는가. 둘이 싸우면 둘 다 똑같다. 결혼한 지 20년 지났다. 고부간의 갈등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 줄 알았다. 그 한 가운데 내가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의 감정 싸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유명한 스님 한 분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젊을 땐 아내 편을 들고, 나이 들면 어머니 편을 들어라. 그러면 세상이 편할지어다." 이 말을 듣는 청중들이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을 본 적 있다. 누구 편을 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둘이서 싸우지 않으면 될 것을. 도 닦는 스님조차 고부 갈등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고래 싸움에 끼어 본 적 없으니 말 참 쉽게 한다.
결혼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이거다. "남편인 네가 잘해야 한다. 아들인 네가 잘해야 한다. 네가 잘해야 집안이 평화로울 수 있다." 싸움은 어머니와 아내가 하는데, 내가 뭘 잘해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또 뭘 그렇게 못하는가. 둘이 싸우면서 맨날 나 보고 잘하란다. 미치겠다.
어머니 기력이 날이 갈수록 쇠해진다. 아들도 결혼해서 우리 집안에도 며느리 들이겠지. 어머니 세상 떠나시면 나는 아마도 열두 달 가슴을 긁으며 오열할 터다. 며느리 들이면 아내는 또 새로운 고부갈등의 국면을 맞이할 테고.
그냥 이렇게 살아간다. 남자의 특성상 무슨 문제든 정답을 찾아 해결하고픈 욕구를 갖고 있으나, 내 경험상 고부갈등은 절대 답을 찾지 못하는 문제다. 해결하고자 할수록 속만 터지고 문제만 키울 뿐.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게 답이다. 어머니 곁에서는 어머니 비위 맞추고, 아내 곁에서는 아내 비위 맞추고.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남자로 태어난 죄.
어머니가 내 걱정을 좀 덜 했으면 좋겠다. 남은 인생 편안하게, 어머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기면서 건강 챙기면서 그렇게 사셨으면 좋겠다.
두 달 넘게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고, 매일 병원 들락거리면서도 어머니 앞에서 내색하지 않는다. 주사 바늘이 몸 구석구석에 눌러붙어 곰보처럼 보일 지경이지만, 찌는 듯한 더위에도 옷으로 꽁꽁 싸매 겉으로 보이지 않게 지내고 있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알면, 그 상황 상상조차 하기 싫다. 혼자 감당한다. 끝내 감당해낼 테고. 이런 내 진심이 어머니 마음에 닿기를. 자식 걱정 이제 그만 내려놓고, 당신 몸과 마음 챙기시길.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밉기도 하지만, 모진 세월 다 지나 이제 평생을 마무리할 시기에 이르셨다. 내 인생 내가 잘 챙길 테니, 이제 어머니 마음 좀 편안하게 사셨으면.
사무실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인사드렸다. 팔십 넘은 노인의 입에서 상상도 못한 말씀이 나온다. "오늘 화요일 아니냐? 강의도 없는데 사무실에는 왜 가냐?"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