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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Jul 14. 2024

반찬 투정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어머니, 반찬 타박 좀 그만하세요!"

참았어야 했다. 참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향해 툭 내뱉고 말았다. 그냥 듣고 있을 어머니가 아니다. 


"아니, 내가 맛이 없어서 맛 없다고 한 건데. 내가 내 집에서 반찬 맛 없단 소리도 못 하냐? 넌 자식이 되어가지고 에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숟가락을 탁 내려놓는 어머니 미간에 주름이 졌다. 뭐가 됐든 걸리기만 해 봐라 벼르고 있던 터에 내가 기름을 부은 모양이다.


"최근 들어서 어머니가 반찬 투정을 많이 하시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냥 있는 대로 주는 대로 먹으면 되니 사사건건 짜다 맵다 싱겁다 맛이 이상하다 하시니까 같이 밥 먹는 식구들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그냥 네 하고 말았어야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삼키고 말았을 텐데, 요즘은 나도 몸이 성치 않아 심기가 불편한 탓에 가만히 있질 못한 거다. 몇 마디 더 오고 간 후에, 결국 어머니 입에서는 나오지 말아야 할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그래. 내가 너랑 오래 살았구나. 어쩌겠냐. 빨리 죽고 싶다고 죽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어디 월세방이라도 알아 볼 테니 기다려라. 내가 나가야지. 내가 죽어야지."


"네 엄마가 요즘 우울증인 것 같다. 그래도 아들인 네가 참아야지. 오늘따라 왜 그리 화를 내고 그러냐."


"어머니 성격 알면서 오늘따라 왜 그래! 자기가 그렇게 성질 다 부리면 뒷감당은 내가 다 해야 하는 거 몰라서 그래?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머니와 내가 싸우는 탓에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고,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아버지와 아내는 나한테만 탓을 돌린다. 몸도 마음도 약해진 상황에서 가족마저 내 편 하나 없다 생각하니 서럽고 슬펐다. 


반찬 투정. 아무 일도 아니다. 나이 팔십 넘은 노인이 입맛 없다는 말 여사로 할 수 있는데. 이런저런 투정과 불평 얼마든지 뱉을 수 있는데. 뻔히 알면서도 나는, 이번에는, 지금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집에 있자니 민망하고 불편해서 사무실로 나와버렸다. 점심 때가 되었지만 집으로 들어갈 마음은 없었다. 그냥 밖에서 먹는다고 아내에게 전했다. 동네 국밥집으로 가서 '경성한우국밥' 한 그릇 시켜 먹었다. 고기도 제법 많이 들어가 있고, 시레기와 콩나물이 어울려 맛이 좋았다. 


심란하고 찝찝한 마음 탓에 절반도 먹지 못했다. 무려 만 원씩이나 하는 점심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돈만 버렸다. 식당을 나와 동네 한 바퀴 돌았다. 온몸에 통증이 지릿하게 올라왔다. 좀 걸으면 나을까 싶어 목적지도 없이 땡볕에 이리저리 배회했다. 


걷다 보니 생각 났다. 10년도 더 전에, 서울에서 급하게 짐을 싸가지고 대구 부모님 댁으로 내려왔다. 감옥에 갈 날이 확정 되어 있었고, 나는 모든 걸 잃은 상태였다. 좁은 집에 살림 하나를 더 얹고 보니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되었다. 온식구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채 나는 세상 밖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때도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동네를 정처 없이 걸었다. 내 삶은 엉망인데, 세상 사람들은 다들 잘만 사는 것처럼 보였다. 걸으면서 울었고, 울면서 걸었다. 감옥에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나 붙잡고 제발 살려달라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반찬 투정. 감옥 갈 일도 아니고, 천지가 무너질 일도 아니고, 인생 고난도 아니다. 그냥 어머니 입에서 나온 한 마디를 내가 곱게 받지 못한 게 전부다. 배가 불렀다. 지난 인생 거칠고 험한 시련들 다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어머니 한 마디를 삼키지 못해 이 사단을 낸 것인가. 


사무실에 온 김에 할 일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의자에 앉아 있으니 목부터 다리까지 저리고 아파 견디기 힘들었다. 일어섰다 앉았다 반복하면서 기어이 강의자료 다 만들고 나니 저녁 때가 지났다. 


"왜 안 들어오냐고 아버님 어머님 계속 걱정하셔. 당신 진짜 왜 이래! 무슨 애도 아니고!"


밤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다. 불 꺼진 어머니 방 문을 열고 나직이 말했다. "주무세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마음 편하게 주무세요."


자다가 깬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내일 낮에 콩국수 준비해 뒀다. 너 오늘 밥도 굶었을 텐데. 내일 낮에 집에 있지? 맛있게 만들 테니 많이 먹거라."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나이 오십 넘어 어린애 같은 행동을 했다는 게 창피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 서운한 감정 지워지지 않는다. 난 이렇게 아픈데. 아픈데도 이 악물고 살고 있는데. 초등학생 같은 유치한 생각이 마음 속에 스물거리는 게 더 짜증 났다. 콩국수 맛있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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