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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02. 2024

생각보다 잘 썼다 싶을 때, 그냥 잊어라

어제 말고 오늘, 옛날 말고 지금


글을 쓰다 보면 생각보다 잘 썼다 싶은 때가 있습니다. 미리 생각해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써야지 하고 의도한 것도 아닌데, 그냥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생각을 손으로 받아적은 것 뿐인데도 제법 잘 썼다 싶은 때가 있지요. 


기분 좋습니다. 흐뭇합니다. 그 글을 블로그에도 인스타그램에도 마구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짜릿한 일입니다. 엄청난 작가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란 사람이 이렇게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존재구나 싶어 행복합니다. 


여파는 오래 갑니다. 다음 날이 되어 다시 글을 들춰 봅니다. 여전히 잘 썼습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어디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을까 궁리하게 되지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흐뭇하고 기쁩니다. 


최대한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취할수록 글은 점점 더 못 쓰게 됩니다. 빨리 잊어버리고 오늘 새로운 글을 써야 합니다. 새로 쓴 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상관 없습니다. 그냥 다시 쓰는 거지요. 


우리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 쓰다 보면 잘 쓸 때도 있고 못 쓸 때도 있습니다. 끝내주는 글을 쓸 때도 있고 형편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쓸 때도 많습니다. 어떤 글을 쓰는가, 얼마나 잘 쓰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글을 썼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법 잘 쓴 글을 보면서 기쁨에 젖을 수도 있는 것인데 왜 빨리 잊으라고 하는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잘 쓴 글을 빨리 잊을 수 있어야 못 쓴 글에 대한 자책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잘 쓴 글에 취해버리면 못 쓴 글에 무너집니다. 일희일비라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궂은 일도 있게 마련입니다. 기대보다 성과가 좋다 하여 방방 뛰며 촐싹대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맥없이 무너집니다. 상반된 감정은 동일한 효과를 불러옵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덤덤할 수 있어야 나쁜 일 생겼을 때에도 의연하고 초연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는 아무래도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좋은 일에 감정 주체 못하면 나쁜 일에도 좌절하고 절망하기 쉽습니다.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지나가게 마련입니다. 지금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이번에는 생각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구나. 이렇게 관망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마음 평정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처럼 매 순간 평정심 유지하기는 힘들겠지요. 노력해 보자는 얘기입니다. 과거 저는, 일이 좀 잘 풀린다 싶으면 헤헤거리며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좀 막히면 주저앉아 불평하고 세상 탓을 했지요. 


돌아보면 그 많은 일들 다 지나가고 오직 지금만 남아 있습니다. 뭘 그리 촐싹댔나 싶기도 하고, 뭘 그리 죽겠다고 난리를 쳤나 싶습니다. 솔직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시간 지나면 다 잊어버릴 일들을 가지고 세상 다 가진 듯 방방 뛰고 세상 무너진 듯 아파했지요. 


사람이 좀 우습게 느껴집니다. 어제까지 좋다고 난리 치다가 오늘 되면 우울하게 지냅니다. 자기 감정에 휘둘려 인생을 냉철하게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표정 변화 없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좋아도 평온하게 나빠도 잔잔하게. 그렇게 감정 파도에 휩쓸리지 않아야 매 순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옵니다. 세상에는 평생 글만 쓰며 살아온 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초보 작가인 제 글은 깊이도 얕고 문장력도 부족할 테지요. 좀 잘 썼다 싶은 마음에 촐싹거리면, 대가들이 볼 때 얼마나 같잖겠습니까. 


세상에는 나보다 글을 못 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생각보다 글을 못 썼다 하여 좌절하고 절망하면, 그들이 볼 때 배가 불렀다 싶지 않겠습니까. 항상 나보다 못한 사람 생각하면서 이 만하니 다행이다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파티마 병원 호스피스 병동 다녀왔습니다. 병실마다 일일이 돌아다닐 수는 없었고요. 그냥 복도 끝에 서서 잠시 지켜보고는 발걸음 돌렸습니다. 잡상인이 많은지 통제가 심하더군요. 아무튼 그 곳에서 또 다른 감정 느끼고 왔습니다. 최근에 제가 많이 아파서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죽을병은 아닙니다. 호스피스 병동 한 번 보고 오니까 정신이 퍼뜩 드네요. 이 만하니 다행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힘을 내 봅니다. 


세계적인 거장들도 모든 글을 다 잘 쓰지는 않습니다. 쓰다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글도 나오고, 또 기대 이상으로 잘 썼다 싶은 글도 나오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아직 초보 작가라서 못 쓰는 경우가 더 많고, 그들은 거장이라 아무래도 잘 쓰는 경우가 많겠지요. 


네, 바로 그겁니다. 글쓰기 연습이란, 무조건 잘 쓰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잘 쓴 글이 더 많이 나오도록 갈고 닦는 과정이지요. 그러니, 좀 부족하고 모자라다 싶어도 의기소침할 필요 없습니다. 못 쓰는 글을 많이 써야 잘 쓰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형편없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펜을 놓았더라면 지금의 [자이언트]는 없었을 테지요. 제 삶도 여전히 엉망이었을 겁니다. 백 편을 쓰면 한 편 건집니다. 그 희망 하나 바라보고 여기까지 온 거지요. 모두가 못 쓴 글 덕분입니다.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금메달 따는 선수도 있고 동메달 따는 선수도 있고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선수도 많습니다.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하여 절망하고 좌절한다면 올림픽이란 대회는 진작에 사라졌을 겁니다. 아무도 더 이상 연습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죠. 


글쓰기는 시합도 아니고 대회도 아닙니다. 독자를 돕는 행위입니다. 이왕이면 더 잘 쓰는 게 좋겠지만, 글을 좀 못 썼다 하여 자괴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혹시,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비난할까 봐 두려운가요? 절대로 그럴 필요 없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 글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내가 쓴 글을 가지고 헐뜯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일 겁니다. 자신이 못하니까 남이 이룬 성과에 침을 뱉는 거지요.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더 치열하게 글을 써야 합니다. 보란듯이 말이죠. 


잘 썼다 싶으면, 잊으세요. 못 썼다 싶으면, 잊으세요. 글 쓰는 사람은 이미 쓴 글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오늘 새로 쓰는 글이 중요하고,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 없지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오늘, 지금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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