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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02. 2024

첫 느낌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이야기



감옥에 들어간 지 7개월쯤 되었을 무렵,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를 본 적 있다. 우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 나무의 웅장함!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나서 방으로 들어와 노트에 글을 적었다. 


              커다랗고 웅장한 나무가 바람에 섞여 낙엽을 휘날렸다. 가을이라 색이 바랬고 땅으로 떨어지는 잎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바람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런 나무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감옥에서 적은 글은 가식이고 위선이었다. 내가 그 나무를 처음 본 순간 느낀 감정은 "우와!"였다. 그러나, 내가 적은 글에는 "우와!"가 빠져 있었다. 


강의 시간에 늘 강조한다. 글을 글처럼 쓰려고 하면 글을 망친다고.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진실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적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만 포장을 한다. 


지하철에서 힘 없이 앉아 있는 노인에게 함부로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젊은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그런 영상을 볼 때마다 "저런 미친 놈!"이라고 소리를 친다. 하지만, 내가 쓰는 글에는 미친 놈이라는 단어는 없다. 기껏해야, "아무리 젊음이 무기라지만 노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젊음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라고 적는다. 


나는 왜 "우와!"와 "미친 놈!"을 적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게 글을 쓰면 품격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두려웠던 것인가. 진실한 글, 있는 그대로 쓰는 글이야말로 독자의 가슴에 닿을 수 있다. 


첫 느낌, 첫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글은 거칠고 투박할 게 뻔하다. 그래도 괜찮은 이유는 퇴고가 있기 때문이다. 열두 번도 더 고칠 수 있다. 가장 원초적인 내 안의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야 수정하고 고쳐도 '진짜'를 살릴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이 도시를 녹일 듯 내리쬐고 있었다.            

이렇게 쓰는 문장도 나쁘지 않겠지만, "더워 죽을 뻔했다!"가 진짜 우리 마음 아니겠는가. 


              그녀의 아름다운 머릿결이 바람에 날리자 세상이 온통 금빛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 쓰는 문장도 아름답고 예쁘겠지만, "와! 예쁘다."가 훨씬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표현이다. 


나는 지금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방법이나 노하우를 전하고 있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려고만 하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적는 연습부터 해 보자는 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아야 글도 제대로 쓸 수가 있지 않겠는가. 


있는 그대로 쓴 글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 꾸미고 포장한 글은 읽는 내내 하품이 난다. 거짓이고 과장인 걸 뻔히 알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빨갛게 화장을 하고 다니면 누가 예쁘다 하겠는가. 어색하고 촌스럽고 천해 보이기만 할 뿐. 


치유의 글쓰기, 내면의 나를 만나다, 돈이 되는 글쓰기, 일주일만에 책쓰기, 열흘만 먹어도 10킬로그램이 빠진다, 한 알만 먹어도 씻은 듯이 낫는다....... 이런 모든 광고가 허풍이고 과장임을 모르는 사람 누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클릭을 하고 돈을 지불하고 결국은 후회를 한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런 세태에 섞이다 보니, 초보 작가들이 글을 쓸 때에도 뭔가 임팩트 있고 자극적인 표현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글을 써야 하는데, 떡볶이 국물 같은 강한 빨강만 고민하고 있으니 AI와 승부를 해도 백전백패할 수밖에. 


무엇을 보았는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 감정은 어땠는가? 그래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가? 꾸미고 과장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 진실을 쓰지 않을 바에야 글을 써서 무엇하겠는가.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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