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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ug 05. 2024

자신이 쓴 글은 모조리 버려야 한다

글쓰기, 그리고 자유


쓰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도저히 못 쓰겠다며 하소연하는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상처를 아직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 상처를 씻어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겁니다. 하지만, 첫 줄을 쓰고 나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음 줄을 쓰고 나면 숨이 막혀서 도저히 계속 쓸 수가 없다는 거였지요. 


저는 그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무도 안 봐요. 계속 쓰세요." 그러고나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폴더'에 버려버리자고 말이죠. 그러면 작가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 글을 볼 수 없을 테니 마음 편안하게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과거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 자신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이야기를 쓰려는 초보 작가들. 이들은 글 쓰기를 두려워하고 망설입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에 당장 내놓을 글을 쓰는 게 아니란 사실입니다. 


초고를 집필하고, 수차례 퇴고를 거듭하고, 출판사와 계약하고, 이후 다시 최종 수정과 보완을 거쳐야만 책으로 출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초보 작가들이 이제 겨우 초고를 시작하면서 벌써부터 자신의 글이 세상에 나온다는 생각부터 합니다. 


노래를 막 부르기 시작한 다섯 살짜리 꼬마가 수백 명 앞에 서서 그것도 생방송으로 첫 노래를 불러야 한다면, 글쎄요, 세상에 노래 부르는 사람 한 명도 없지 않을까요? 


스스로 어깨를 짓누르고 강박으로 자신을 못살게 굴 이유가 없습니다. 오랜 시간과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만 완제품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이지요. 노트북 열고 첫 줄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이 뭐 그리 부담을 강하게 갖습니까. 아직 멀고도 멀었습니다. 편안하게 써도 됩니다. 


모조리 다 버릴 겁니다. 어디에요? 네, 맞습니다. 노트북에 별도의 폴더를 하나 만들어서 그 곳에다 버릴 겁니다. 단 한 줄도 없애지 말고 고스란히 다 한 곳에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버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어차피 다 버릴 거니까 아무런 부담 없이 쓸 수 있습니다. 둘째, 그냥 없애는 게 아니라 폴더에 버리는 것은 내 안에서 쏟아져나온 것들을 모두 품겠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그 폴더에 쌓인 '쓰레기'에서 언젠가 보석이 탄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책으로 출간할 글만 쓰려고 합니다. 자신이 쓰는 모든 글이 의미 있고 가치롭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 내 것입니다. 모두 내 생각입니다. 모두 내 분신입니다. 아무도 쓸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입니다. 폴더 하나 만들고 그 안에 싹 다 모으세요.


쓰고 버린다는 생각은 작가를 자유롭게 만듭니다. 많은 초보 작가들이 자신이 쓰는 글로 승부를 내겠다 작정합니다. 그러면서도 늘 입버릇처럼 "나는 글을 못 쓴다"고 말하지요. 결론적으로, 못 쓰는 글을 가지고 승부를 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글쓰기의 최고 이점은 자유입니다. 주변 사람들 눈치 보면서 하지 못했던 말들, 솔직하지 못했던 감정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상처와 아픔들, 보잘 것 없다 여기는 자기 삶의 이야기들. 백지는 이런 이야기들을 아무 말 없이 받아줍니다. 그럼에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내게 말해주지요. 


저는 감옥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무너지고, 사회적으로 패배자가 되었을 때, 백지는 제게 "괜찮다" 말해주었습니다. 모두가 저를 비난했을 때, 심지어 가족조차도 제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했을 때, 백지만큼은 여전히 저와 제 삶이 의미와 가치 있다고 토닥여주었습니다. 


감옥에서 쓴 글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글은 형편없지만, 그때 쓴 글도 소중한 저의 조각이니까요. 이후로 저는 평소 습작하는 글을 모조리 하나의 폴더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글을 꺼내 세상에 드러낼런지, 아니면 영원히 그대로 묻힐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보관을 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은 저 자신이기 때문이지요. 덕분에 저는 자유롭게 글을 씁니다. 아니다 싶으면 폴더에 넣으면 됩니다. 좀 낫다 싶으면 다듬어 책으로 내고요. 


이러한 이유로 저는 매일 글을 쓸 수가 있었던 겁니다. 만약 제가 쓰는 글을 모두 책으로 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더라면, 어쩌면 저는 지금껏 글을 쓰지도 책을 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맨 처음 글을 썼을 때는 잊지 못합니다. 감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초록색 노트(교정노트)에다 뭉툭한 볼펜으로 적었지요. 그 날 있었던 일과 저의 느낌을 적은, 그러니까 일기 정도라 해야 할 겁니다. 아무 감흥 없었습니다. 그냥 일과를 적은 거니까요. 


그러다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마음이 많이 약해진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밖에서 40년 가까이 보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깨달은 것이지요. 불과 일기 한 편으로 말입니다. 


감옥에서는 지독할 정도로 단조로운 일상인데, 밖에서는 온갖 다양한 일들이 하루만에 일어났거든요. 그걸 즐기거나 덕분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 해도 축복인데, 그걸 몰랐던 탓에 이렇게 감옥에 앉아 있게 된 거구나. 이후로 저는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글을 쓰면서 많은 걸 느꼈지만, 제가 쓴 글은 대부분 문법이나 문맥 따위 엉망이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제 글을 보았다면, 이걸 글이라고 썼냐며 핀잔을 주었을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저는 글을 썼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글쓰기/책쓰기 수업을 운영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누군가 자신의 글에 대해 험담할까 두려워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비난을 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은 꽤나 오랜 시간 뒤의 일이거든요. 글을 쓰기 시작하는 단계부터 그런 걱정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사치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책을 출간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초고를 쓰고 퇴고를 하고 투고를 한 후 계약을 하고 다시 수정한 후 출간한다. 이것은 전 세계 공통입니다. 건너뛸 수 없지요. 그러니까, 초고를 쓰는 동안에는 초고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한 편의 글을 써 보세요. 아마 많이 부족하고 모자랄 겁니다. 그 글을 자기만의 폴더에 보관하세요. 네, 끝났습니다. 이제 내일이 되면 다시 또 한 편의 글을 쓰면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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