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다가 저랬다가
누군가 밉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밥을 먹다가도 인상을 쓰게 되고, 일을 하다가도 성질이 나며, 잠을 잘 때도 분을 삭이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밥도 잘 먹고 일도 잘하고 잠도 잘 잘 텐데, 저 혼자서만 이렇게 씩씩거리고 있으니 여간 손해가 아니지요.
사업에 실패했을 때, 또 지금처럼 몸이 좋지 않을 때 저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대로 끝나면 어쩌지, 계속 이렇게 아프면 어떻게 하나, 열심히 살았는데 이게 뭐야, 왜 나한테만 이런 고통이 생기는 거야...... 그러면서 점점 우울해지고 의욕도 사라집니다.
생각이란 놈은 참 희한합니다. 한 번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계속됩니다. 좋지 않은 생각은 딱 멈추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생각은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현실을 불러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으니 부정적인 사건들이 자꾸 생겨나고, 그래서 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기분이 좋고 컨디션 괜찮을 때는 누군가 불편한 말을 던져도 전혀 상처 받지 않습니다. 웃으면서 받아칩니다. 그런데, 똑같은 말이라도 제가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인가 봅니다.
어떤 때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세상을 상대로 한 번 싸워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고요. 또 다른 때는 모든 걸 때려치우고 그냥 될 대로 되어라 자포자기 심정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누군가 좋아서 미칠 지경 되기도 하고요. 그 사람 밉고 싫어서 짜증 날 때도 많습니다. 하루 다섯 끼씩 마구 먹으며 삶에 대한 의욕 불태울 때도 있고,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무기력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유쾌하고 좋은 기분으로 살아갈 때 있는가하면, 종일 우울하고 불쾌한 심정으로 하루를 보내는 때도 없지 않습니다.
3년 넘게 매일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지난 날들의 일기를 쭈욱 읽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나란 놈은 참 신기하구나. 시시각각 감정이 변하고, 비슷한 사건에 대한 반응도 다르고, 아무 이유 없이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고,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구나.
처음엔 이런 제가 이상하다 느껴졌는데요. 이제는 다릅니다. 그냥 이런 모습이 저란 사람의 실체인 거지요. 저는 모든 순간에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감정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리고 맡은 일에 따라 백 가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일관성 있는, 한결 같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을 어쩌겠습니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나 자신의 정신 건강에 해로운 경우라면 주의하고 바꿔야 하겠지만,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살아도 무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일기장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인간입니다. 그러니, 한 가지 생각에 푹 빠져 꼬리를 물고 늘어질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어차피 조금 지나면 다른 감정 생기겠지요.
매 순간 변하는 마음. 그러니까 한 가지 생각이나 감정에 빠져 걱정하고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감정이 들면, 그냥 지금 내 감정이 그렇구나 지켜보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지금 내게 이런 문제가 생겼구나 가볍게 여기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일기장을 통해 제 감정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면서 깨달은 사실입니다. 이후로 저는, 어떤 감정이나 문제에 집착하거나 매달려 근심하지 않습니다. '나는 원래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놈이니까' 아무리 부정적이고 심각한 감정에 빠져 있더라도 금세 달라질 거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글쓰기란 이런 겁니다. 자신을 객관화해서 지켜볼 수가 있는 도구지요. 머리나 가슴으로만 생각하면, 그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근심해 본 적 있고, 증오해 본 적 있고, 우울해 본 적 있는 사람은 다 알 겁니다. 한 번 생각에 빠지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지요.
하지만, 모든 순간에 글을 쓰면 내가 느낀 순간의 감정들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글을 읽어 보면, 내 감정이 꽤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고통과 걱정과 증오가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확 달라진다는 사실!
삶을 가볍게 여길 수가 있습니다. 지난 석 달 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툭하면 몸이 지릿하고 아프고 저립니다. 처음엔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어찌 되었을까 아찔한 생각마저 듭니다. 다행히도 이젠 집착을 내려놓았습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아프지 않을 땐 일상을 살아갑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내 마음 달라질 테니, 죽고 싶다는 따위 부정적 생각에 매달릴 이유가 없는 것이죠.
누가 저 보고 그러대요. 이은대 대표는 입만 열었다 하면 글쓰기라고요. 네, 맞습니다. 저는 입만 뗐다 하면 글쓰기에 관한 말만 합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안 쓰는 겁니까.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