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독자를 위한 마음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다르게 쓴다

by 글장이


2호차 12B 좌석에는 머리가 훤히 벗겨진 아저씨가 다리 사이에 짐을 가득 내려놓은 채 앉아 있었다. 일전에 나는 날짜와 좌석을 잘못 알고서 기차에 올라 내 자리라고 착각한 곳에 앉아 있던 승객과 시비가 붙은 적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실수한 건가 싶어 열차 티켓을 다시 꺼내 여러 차례 확인했다. 2호차 12B. 내 자리가 맞았다.


"저기요. 여기 제 자리인데요."

머리가 훤히 벗겨진 아저씨는 별 웃긴 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가 맞다는 말부터 먼저 했다.

"2호차 3B. 내 자리 맞아요!"


앞에서 세 번째 자리를 뒤에서 세 번째 자리라고 착각한 채 좌석번호 확인도 하지 않고 앉았던 거다. 자신이 잘못 앉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짐을 챙겨 열차 앞쪽으로 옮겨갔다. 그제야 나는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의자 바닥이 뜨끈했다.


나는 옳다, 내가 맞다, 나는 정확하다....... 라고, 우리는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그래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한다. 한 번만 더 확인하는 습관. 이것이 오해와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처 확인하지 못했을 때는, 그래서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는, "미안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용기도 아니고 배려도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기본중의 기본이다.


한 번 더 확인하고, 기꺼이 사과할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와 습관. 잘 살기 위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은 어쩌면 유치원 시절에 다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또 허리와 다리가 아프면 어쩌나 걱정했다. 불과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지만, 그 사이에 몸이 발작을 일으키면 달리 조치 방법도 없이 고통을 감당해야만 했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허리고 곧추세웠다. 제발 한 시간만 버텨라.


잠을 자는 승객도 있었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승객도 많았다. 나는 편히 잠을 잘 수도 없었고, 노트북은 아예 가져올 수도 없었으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몸을 뒤로 젖혀 창밖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저 멀리 멈춰져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묘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는 뭔가 배우라는 신호이고,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는 다른 사람 입장이 되어 보라는 신호이며, 몸이 아픈 것은 멈추어 세상을 바라보라는 신호이다.


질주하며 살았다. 내 몸, 그리고 내 마음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대가는 참혹했다. 지난 넉 달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을 열 번쯤 했던 것 같다. 통증은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인데, 내 마음은 크게 달라졌다. 마냥 괴로워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이 고난이 내에 어떤 의미인가 밝히고자 한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열차의 속도가 인생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 내 속도를 줄여야 할 때다.


모든 사람은 '경험'을 합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지요. 경험을 경험으로만 여기면 어떤 글도 쓸 수가 없습니다. 글이란, 오직 독자를 위한 의미와 가치입니다. 글을 쓰는 동안 작가 스스로 얻는 것도 많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선물일 뿐이죠. 글의 본질은 독자를 위함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가치를 장착해야 합니다. 바로 그 의미와 가치가 독자들에게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선사하는 것이죠. 글 쓰는 사람을 메신저라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는 건 남들도 다 볼 수 있는 겁니다. 다산 정약용은 '심안'이란 표현을 썼는데요.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독자들에게 생각할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근원이 됩니다. 귀로 듣는 건 세상 사람 다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야 가치를 얹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무슨 대단한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하나, 무엇이든 조금 다르게 보려는 노력만 기울이면 됩니다. 평소 습관적으로 옳다,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니'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죠. 지금까지 늘 틀렸다고 믿어 왔던 것들에 대해 '혹시 맞지 않나' 가정하고 관찰하는 겁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잔소리를 '잔소리로 듣지 말아 볼까' 생각해 본 덕분에, 아침 식사 자리에서 상당히 많은 글감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게임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못마땅하게 여기지 말고 아들 입장이 되어 볼까'라는 생각을 해 본 덕분에 아들과 훨씬 깊은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고, 다르게 느끼려는 노력이 글 쓰는 힘을 갖게 해줍니다. 상투적인 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요.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눈도 크고 넓게 만들어줍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라고 여겼던 제가, 매일 새로운 일상을 만나고 있는 것도 다르게 살기 위해 노력한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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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순서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일기를 쓴다. 둘째, 일기를 읽어 보면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셋째, 다르게 생각한 내용에 대해 적는다. 세 단계를 거치기만 해도 남들과는 격이 다른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오직 독자를 위한 글! 내 글을 읽은 독자가 뭐라도 한 가지 가져갈 수 있도록 돕는 글! 이렇게 쓰면, 글을 쓸 때마다 보람과 가치 느낄 수 있고, 또 나 자신의 존재 이유도 매 순간 새롭게 다질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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