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양의 극대화
머리가 나쁜 탓인가. 아니면, 애초에 글을 쓸 만한 재능이 전혀 없었던 것인가. 1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는데도 저 유명한 거장들의 문장에는 털끝조차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한 번씩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수백 명 수강생들에게 글쓰기/책쓰기를 코칭하고 있다. 여덟 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그리고 600명이 넘는 작가를 배출하면서 배우고 익힌 나름의 노하우를 쉽고 명쾌하게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글을 제법 잘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않는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10년 전에 썼던 글을 찾아 읽어 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사실이다. 누가 뭐래도 그 시절 나의 글과 지금의 글은 분명 다르다. '나아졌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계속 쓰게 만드는 것이다.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 근처 재래시장 한 쪽 구석에 자리잡은 인력시장을 찾았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으니 막노동이라도 해야겠다 결심한 거다. 처음 두 번은 인력사무실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세 번째 갔을 때, 일을 좀 하고 싶다고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새벽마다 봉고차에 실려 안동, 상주, 창원, 부산, 문경, 심지어 강원도까지 오가며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잡부였기 때문에 그저 현장에서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재빠르게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다.
막노동 자체가 워낙 험하고, 각종 장비를 다룰 줄 아는 기본 능력이 있어야 현장에서도 욕을 먹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개판이었다. 어딜 가나 욕을 달고 다녔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아마도 나를 바보천치로 알았을 거다.
석 달쯤 지났을 때, 어느 철거 현장에서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함께 일하는 두 살 많은 형님이 곁으로 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야, 이은대 너 일 좀 한다."
막노동 현장에서 받은 첫 번째 칭찬이자 인정이었다. 그 말을 듣기 직전까지 나는 의기소침해 있었고,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만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을 하던 터였다.
석 달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일했다. 일당 적다고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일도 자진해서 나섰고, 지저분하고 위험해서 다들 피하는 일도 나는 기꺼이 지원해서 일했다. 물리적으로 일하는 양이 많아지니까 어느 순간 일머리가 터지고 제법 분위기 맞춰 일할 수 있게 된 거다. 이후로 3년 동안 욕 먹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일을 아주 잘하진 못했지만, 일꾼들 사이에서 "이은대 데리고 가면 분위기 좋게 일할 수 있다"는 입소문도 타게 되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세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소리가 아니라, 나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같이 해 보자는 말이다.
첫째, 물리적 양의 확장이 질적 수준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은 사실이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머리 굴리며 이리 재고 저리 따지는 사람 실력 늘지 않는다.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해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매일 쓰면 분명 실력이 는다.
둘째, 공부해야 한다. 강의를 듣든, 책을 읽든, 개인 코칭을 받든, 뭐가 됐든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익혀야 한다. 무식할 정도로 많이 쓰라 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본 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계속 쓰기만 하면 별 의미가 없다. 배우기를 꺼려하는 사람을 "늙었다"고 일컫는다.
셋째,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초보 작가다. 이제 막 걸음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잘 쓴다 해 봤자 초등학생 수준이고, 책 출간했다 해도 부족한 것 투성이다. 하늘 같은 거장들이 버티고 있다. 헤밍웨이라도 된 것처럼 똥폼 잡지 말고, 머리 숙이고 성실하게 하루 한 편씩 글 써야 한다. 겸손하면 건방과 오만도 잡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험담도 무시할 수 있다. 초보 운전은 조심도 하지만 겁도 없는 법이다.
언제쯤이면 글을 끝내주게 쓸 것인가. 솔직히 모르겠다. 자신도 없다. 난 그냥 지금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공부하고, 배우고 익히고, 연습하고, 훈련하는 작가로 만족한다.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그럼에도 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공감하고 실행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많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자신 있다. 매일 쓰는 것. 많이 쓰는 것. 그렇다! 매일, 꾸준히, 많이 쓰는 건 정말이지 누구보다 자신 있다. 그럴 용기가 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변함 없을 거다.
덧붙이자면, 10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백지 앞에 앉으면 여전히 두렵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떨린다는 사실. 글이란, 마지막 마침표를 찍지 않는 한 어떻게 맺음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다. 안개 속으로 걸어가는데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안에 가득 담긴 '하고 싶은 말'들이 요동을 치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깨달은 이야기들, 그리고 메시지들. 살아 있는 한 나를 통해 만들어지는 모든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욕구가 안개보다 짙기 때문이다.
쓰고 싶지만 막막해서 망설이는 사람들. 쓰고 싶지만 두렵고 불안한 사람들. 그들에게 꼭 한 마디 전해주고 싶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오늘 잠들기 전에 조금만이라도 당신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길.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