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맞는 책 좀 추천해 주세요

독서에 관한 생각

by 글장이


책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저한테 맞는 책이라 해서 다른 사람에게 맞다는 보장도 없고,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해서 다른 사람도 좋아할 거라는 확증은 없기 때문입니다.


한 때, 온라인에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을 섭렵한 적 있는데요. 실망과 허탈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책이 제게는 한낱 자만과 오만에 싸인 저자의 '잘난 척'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로 저는 누구에게도 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절실한 마음으로 지독하게 독서하라는 말은 강의 때마다 강조합니다만,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직접 가서 책을 골라 읽으라고 답합니다.


독서에 관한 여러 가지 주장과 의견이 있습니다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해 보려 합니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 책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재미로 탐독하고 읽는 순간을 즐기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굳이 선택하라면, 저는 전자에 한 표를 던질 겁니다. 허나, 책을 그 자체로 즐기는 수단으로 읽으면 된다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한 마디로, 때와 상황에 맞게 읽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작가이자 강연가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자료를 수집할 때는 '목적 독서'를 합니다. 책 읽으면서 메모도 하고 요약도 합니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악착같이 읽습니다.


반면, 마음이 울적하거나 지치고 힘들 때는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그냥 읽습니다. 말 그대로 '순수 독서'입니다. 시릴 코널리의 말처럼, 그런 순간에 책은 제게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가 됩니다. 책을 읽고 나면, 제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견딜 만한 기지개를 켤 수가 있는 것이죠. 아무런 목적 없이 책 속으로 그냥 빠져드는 덕분입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 못지않게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 독서 방법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효율적으로, 더 빨리, 더 제대로 읽는 방법이 궁금했습니다. 특별한 독서법이 있다면, 그것을 최대한 빨리 익혀서 내 독서에 적용하고, 그래서 더 빨리 더 크게 성공하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난독증 때문에 활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독서의 방법이란 걸 별도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읽어도 되고, 메모하면서 읽어도 됩니다. 완독해도 되고, 발췌해서 읽어도 됩니다. 빨리 읽을 수도 있고 느리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 읽고 일부 내용 외울 수도 있고, 뭘 읽었는지 기억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초보 독서가가 책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마음은 "그럴 수도 있다!"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때 스트레스를 받게 마련이지요. 갓난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왼 발과 오른 발을 이렇게 저렇게 내디뎌야 한다는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는 부모는 없습니다. 일단 걷습니다. 그리고 넘어집니다. 백만 번 시도하고 넘어지면서, 우리는 결국 달리기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는 겁니다. 인생보다 어려운 건 없지요. 아무 일 없다가도 불쑥 문제와 걱정거리가 생겨나고, 그걸 어찌어찌 해결하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근심거리가 생겨납니다. 아무리 공부하고 능력 키워도 남은 인생 내내 문제와 걱정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반복할 겁니다.


때로 인생이란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걱정거리나 사건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책을 읽은 후부터는 달라졌습니다. 책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버티고 견디는 법"입니다. 책이 제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네 인생이다!"입니다.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제가 추천하는 책은 믿을 만하니 그 책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받겠다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변화와 성장을 위한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의미일 겁니다.


변화와 성장을 위한 첫 단계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겁니다. 자기계발 분야에 몸담은 사람 중 대부분이 지금보다 '나중'에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매 순간 달라진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현실을 자꾸만 작고 초라하게 여기는 결과를 낳습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과 닥친 현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앞으로의 삶도 귀해집니다. 책을 읽든 다른 무엇을 하든, 지금이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고 가치롭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도 성장도 가능합니다. 책은, 내가 처한 현실이 아무리 지옥 같아도 직시하고 견디는 힘을 줍니다.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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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나 지진 발생해서 급히 대피를 해야 하는 상황에 수십 권 책을 챙겨 가는 사람 아마 없을 겁니다. 책은 귀하지만 현실 다음이란 뜻이지요. 좋은 책을 추천받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과 문제를 직시하는 습관부터 기르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어떤 책이든 펼쳐 읽으면, 그 속에는 지금을 견디는 힘이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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