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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이 심해지고 집중력 떨어진다

어떻게 쓸 것인가

by 글장이


가까이 있는 건 잘 보이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글씨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안경을 쓰면, 멀리 있는 건 잘 보이는데 눈앞에 있는 글씨는 희미해진다. 안경원 사장은 '노안'이라는 말을 쉽게 꺼냈다. 서른 아홉 때 일이다.


10년도 더 지났다. 시력은 점점 더 나빠졌다. 요즘은 20분만 책을 읽어도 눈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집중력도 약해져서 한 챕터를 내리 읽지 못하는 때가 많다. 잠시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눈두덩이 주변을 살살 누르면서 마사지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A4용지 1.5매를 한 호흡에 쓰지 못한다. 쓸 말도 많고 구성도 잡았고 메시지도 명확하지만, 시력과 집중력이 따라주질 않는다. 노트북과의 거리를 적정하게 지키려고 애쓰고, 시력과 집중력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주변 또래 친구들 보면, 다들 노안에 집중력 약화는 물론이고, 다양한 노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스마트폰 세상이라서, 눈 나빠지는 건 당연한 소리가 되어버렸다. 젊은 시절에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은 일을, 이젠 일상처럼 염려하는 나이가 된 거다.


나는 작가다. 이런 현상을 경험하는 동안, 작가로서 꼭 해야 할 책무가 떠오른다. 글쓰기 제 1원칙! 글은 쉽게 써야 한다. 지금 세상에는 눈 나쁘고 집중력 떨어지는 사람 많다. 이젠 나이 문제로 삼을 만한 상황도 아닌 듯하다.


잠시만 고개를 돌려도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인 볼거리가 넘친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내 글을 읽게 만들려면, 쉽게 쓰는 것부터 우선 챙겨야 한다. 어느 정도 쉽게 써야 하는가. 초등학교 3학년이 직독직해 가능한 수준까지다.



음주를 주의해야 한다 --> 술을 끊든가, 적게 마시든가 해야 한다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 --> 글을 잘 쓰는 방법

심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 마음이 아파 잠이 안 온다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눈송이처럼 내 볼을 스친다 --> 벚꽃이 진다. 추억을 떠올리면 아쉽기도 하고, 청소 아저씨들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글을 쓰다 보니 내면의 자아를 만나 눈물이 쏟아진다 -->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을 쓰다 보니,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소년 이은대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쉽게 쓰는 건 어렵다. 초고는 생각 나는 대로 채우더라도, 퇴고할 때는 반드시 '더 쉬운 문장'으로 바꿔야 한다. 굳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작가의 존재 이유는 독자다. 독자의 시력은 점점 나빠지고, 독자의 집중력은 점점 떨어진다.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작가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독자를 배려해야 한다. 무슨 소린지 알 수도 없고, 읽기 힘들고, 집중도 되지 않고, 비비 꼬아진 문장을, 독자는 읽을 이유가 없다.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말하듯이 쓰면 된다. 말과 글은 다르다. 일단 말하듯이 쓰고, 나중에 고치고 다듬어야 한다. 어차피 퇴고를 피할 수는 없다. 이왕 수정할 바에야 초고라도 신나고 유쾌하게 쓰는 게 낫지 않겠는가.


쓰고자 하는 주제에 관하여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것처럼 중얼거려 본다.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종이에 적는다. A4용지 1.5매~2매 정도 수다를 떨었다 싶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치고 다듬는 거다.


말이 너무 말 같으면 글처럼 수정하고, 소리 내어 읽기가 어색하거나 호흡이 끊긴다면 문장을 짧게 정돈한다. 더 적확한 어휘를 골라 담고, 은어나 비어 따위 표준어로 바꿔 쓴다.


퇴고 힘들다 소리 많이 듣는다. 징징거리는 사람들 특징이 있다. 악착같이 작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집중하고 몰입하는 사람들은 어렵다 힘들다 불평하지 않는다. 꼭 일 안 하고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이 뭣이 어떻다 말이 많다.


글은 쉽게 써야 한다. 전문 용어와 한자 성어 섞어가면서 어렵게 쓰는 것이 폼 나는 거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누구를 위한 폼인가.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가지고 폼 잡아 봐야 뭐하겠는가.


문장을 쉽게 쓰려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연습하고 훈련해야 한다. 쉽게 쓰는 것이 어렵게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작가가 완벽히 이해하고 잘 아는 내용에 대해서는 쉽게 쓸 수 있다. 작가가 어렵게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직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훈련 방법으로 세 가지를 추천한다.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


첫째, 단연코 독서다. 문장을 많이 읽어 체득하면, 글을 쓸 때 자연스럽게 그 동안 읽은 문장의 구조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독서의 중요성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 하물며 글 쓰는 사람에게 독서는 필수 아니겠는가.


둘째, 메모와 낙서다. 평소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에 대해 수시로 메모하고 낙서하는 습관 들여야 한다. 메모와 낙서를 어렵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글 쓴다 생각하니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거다. 메모와 낙서를 습관적으로 하면, 쉽고 편안한 문장 쓸 수 있게 된다.


셋째, 일기다. 일기는 남한테 보여주는 글이 아니다. 따라서, 세상 솔직하고 제멋대로 써도 된다. 일기를 어렵고 복잡하게 쓰는 사람은 없다. 일기 쓰는 습관 들이면, 말투와 글투를 찾게 된다. 쉽게 쓰는 연습으로 더 없다.


2016년, 첫 책을 냈을 때 일부 독자들의 평가를 잊을 수 없다. "뭐, 다 좋은데요. 너무 읽기 쉬워서 한 시간만에 다 읽었어요. 다음에 책 내실 때는 심도 깊은 글을 써 주세요."


쉽게, 빨리 읽기 위해 속독법 배운다고 수십 만원씩 쓰는 사람들이, 이번에는 너무 쉽게 빨리 읽었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독자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만, 때로 억지스럽다 느껴지는 서평에는 휘둘리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나는 글을 쉽게 쓸 거다. 나 자신이 어렵게 쓸 만큼 학식 풍부하지 않다. 한 사람이라도 더 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나의 독자는 연구와 공부로 평생을 보낸 학자들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다. 평범한 사람이 내 책을 읽고 독서의 기쁨을 맛본다면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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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의 본질은 소통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이 기본이다. 더 쉬운 단어로, 더 쉬운 문장으로 쓸 수 있다면 그리 해야 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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