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많은 인생에서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유
"함지산의 유래는, 망일봉 비석에 새겨진 말의 뜻은......"
아버지는 오른손에 숟가락을 든 채 말씀을 시작하셨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저 당신이 알고 있는 '해박한 지식'을 아침 식사 자리에서 드러내고자 할 뿐이다.
밥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얼른 다 먹고 식탁에서 일어서야 허공에 떠도는 얘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아무 관심도 없는 그런 이야기를 단 10분도 듣고 있을 수가 없다.
나는 말을 할 때 상대의 눈빛과 표정에 주목한다. 상대의 분위기도 살핀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상대가 귀를 기울일 것인가. 내가 어떤 말을 해야 상대가 웃을 것인가. 내가 어떤 주제를 꺼내야 상대가 맞장구를 칠 것인가.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대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짜증이 많다. 베란다 장독대를 닦고 나면, 마치 장독대 먼지를 당신을 제외한 다른 가족이 쌓아놓은 것처럼 투덜거린다. 거실 청소를 하고 나면, 왜 아무도 거실을 청소하지 않느냐는 듯 불평하신다.
외출했다 돌아와도 짜증, 밤에 잠을 못 자도 짜증, 친구와 통화를 하고 나서도 짜증, 당신 볼 일을 보고 와도 짜증, 아버지가 뭘 사들고 오셔도 짜증, 나와 아내가 말 한 마디 잘못 꺼내도 짜증.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의 짜증은 내 심장을 쪼그라들게 했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라치면, 방에 앉아 있던 나는 귀를 쫑긋 세운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난 그저 매일 웃고, 매 순간 밝은 사람이 좋고, 나 자신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 말을 시시때때로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말 자체가 재미 없다. 궁금하지도 않다.
말을 베베 꼬는 사람도 있다. 그냥 쉽게 직설적으로 하면 될 말을, 자기 안에서만 뱅글뱅글 돌리며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채로 말한다. 언제든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요?"라고 따지고 부인할 수 있는 말들. 자기 방어를 위한 꼼수다.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사람.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리는 사람. 아무도 관심 없는 말을 자기 중심으로만 뱉아내는 사람. 자기 방어를 위해 어렵고 난해한 말들을 꼬아서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기 싫고, 친분 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결혼 전,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 볼 때면 한결같이 대답했었다. 웃는 사람. 짜증 부리지 않는 사람. 그거면 충분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마치 대단히 중요한 일처럼 포장해서 충분히 기분 상할 만한 일로 재해석하는 재주를 가진 이들을 경멸했다.
그들의 표정은 굳어 있다. 눈꼬리는 아래로 처져 있고, 입꼬리도 내려가 있다. 언제든 누가 무슨 말을 꺼내기만 하면 화를 내거나 삐치거나 툴툴거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냥 웃고 넘겨도 될 일들을 끝까지 마음에 품고 있다가 나중에 뒤에서 험담으로 풀어낸다. 그럴 때면 항상 진실보다 훨씬 과장하고 포장하고 더하고 얹는다. 한 번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기 시작하면, 그 상대가 눈만 껌뻑해도 지적질을 하는 것이다.
인생 절반 살았다. 내가 싫어하고 혐오하는 이들을 떠올려 보았다. 아무도 관심 없는 말을 마구 쏟아내는 사람들. 툭하면 짜증 부리는 사람들. 어쩐 일인지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이 예전처럼 밉지가 않다.
관심이나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 무슨 말이든 해야겠는데, 딱히 재미 있거나 사람들 관심을 끌 만한 주제를 찾지 못한 사람들. 어떤 말이든 해야겠는데 도무지 말할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그저 사람이 그리워 말을 하는 것이다.
쉽게 속 상하고 화 내는 사람들. 상처와 아픔이 많은 이들이다. 몸이 성치 못한 사람들이다. 자신을, 자기 삶을 스스로 감당하기 벅차서 시간을 견디기가 힘이 드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그들을 짜증 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의 안에 스며 있는 삶을 향한 불만이 조금씩 겉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 그들의 아픔을, 그들의 상처를, 그들의 사연을, 그들의 입장을 어떻게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아닌 타자의 삶과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서로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는 모든 과정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길 아니겠는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기 싫고, 그래서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포기할 때,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내려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다 좋은데 말씀에 위트가 없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다 좋은데 짜증이 많다. 당신 안에 쌓인 생의 한을 타인에게 풀어놓는다. 이렇게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 좋은데 흠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장미는 꽃은 예쁜데 가시가 있는 게 흠이라고. 틀렸다. 장미에 가시가 달린 게 아니라, 가시 끝에 꽃이 핀 거다.
말씀에 위트가 없으면서도 어떻게든 좋은 말 해주려고 애쓰다 보니 재미를 잃었을 뿐. 고생 많이 하면서 옛 사람이라 분풀이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오셨을 뿐.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시 같은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기어이 꽃을 피우셨던 거다.
듣기 싫은 말도 듣는다. 짜증 다 받아낸다. 나에게도 흠이 많겠지. 누군가는 나를 받아주며 살고 있을 테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덕분에, 가시 많은 우리가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