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하고 감사하는 태도
4832번. 내 수번이었다. 교도관은 이름 대신 번호로 사람을 불렀다. 방 안에서는 서로 이름을 부르는데, 나는 그들과 섞이지 않아 이름 불리는 일이 적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왼쪽 가슴에 달린 번호가 익숙지 않아 교도관이 불러도 즉시 대답을 하지 못했었다.
녹색 플라스틱 수저로 밥 먹기가 힘들었다. 초록이 사람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여 노트와 수저도 녹색으로 지급하는 거라고 누군가 귀뜸해 주었다. 설익은 밥알이 맨질한 숟가락 위를 굴러 다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밥이 입안에 쏙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페트병에 온수를 담아 방마다 나눠주었다. 이른바 '커피물'이었다. 믹스커피를 뜯어 종이컵에 털어넣고 페트병 온수를 붓고 휘휘 저어 마신다. 펄펄 끓는 기운이 다 사라진 미적지근한 물이라 두세 번만에 훌쩍 다 마실 수 있었다.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조금씩 홀짝이던 뜨거운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그 곳에서 내가 가장 간절히 바랐던 것은, 일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가족 마주앉아 밥 먹고, 옷 갈아입고 출근하고, 사람들과 부대끼고, 소주 한 잔 마시고, 퇴근해서 가족과 얘기 나누다가, 잠드는, 두 번 얘기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 나는 그리웠다.
잃고 나서야 간절해진다는 어느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온몸에 새겨졌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옆에서 어린 아들이 칭얼거렸다. 아침에 되면 아내가 잠을 깨웠고, 다섯 식구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출근했고, 일했고, 퇴근했다. 나는 그런 일상을, 지겹고 힘들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었다.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느낄 때, 삶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만족과 감사를 잃어버릴 때, 인생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문제는 시련과 고통과 고난과 역경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어디라도 좋으니 제발 취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었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만세를 불렀다. 불과 석 달만에 나는, 늦은 퇴근과 잦은 회식과 과다한 업무에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달에 천만 원만 벌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월 수익을 천만 원까지 올려 보고 싶다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인생 평온하게 남 도우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매일 다짐하고 기도했었다. 천만 원 넘게 벌게 되었을 때, 나는 즉시 이천만 원을 벌고 싶어졌다.
감옥에서 양반다리로 앉은 채 허리와 머리를 바닥으로 숙여 글을 썼다. 피가 거꾸로 돌고 다리에 쥐가 나서 십 분만 글을 써도 핑 하고 어지러웠다. 책상 하나만 있어도, 구닥다리 컴퓨터 한 대만 있어도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출소 후, 어린 아들이 쓰던 앉은뱅이 책상과 10년 다 된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오래지 않아 나는, 근사한 사무실과 최신 컴퓨터를 바라게 되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더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에 감사하면서도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지금을 못마땅하게 여긴 채 다른 인생을 꿈꾼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앞으로 어떤 인생 만나도 만족할 수 없다.
내 인생은 과거에 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다. 기적이란 말로도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매 순간 무언가를 더 바라고 있다. 욕심으로 삶을 통째로 날렸으면서, 또 이렇게 자꾸만 더 가지려고만 하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는 나는, 바보가 아닌가.
누구나 과거 힘들었던 시절 겪었을 터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눈물도 흐를 테고, 가슴도 아플 것이며, 어찌 버티고 견디며 여기까지 왔나 회한도 스밀 거다. 적어도 지금은, 그때보다 나은 삶을 누리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우리는 매 순간 그때보다 나은 삶을 누리기보다는 지금을 불평하고 못마땅해하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인생과 정면승부를 펼쳐야 할 때도 분명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시간 동안 주어진 삶을 누리며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마땅한 태도이다. 자기계발 시장에서는 항상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석처럼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현재의 삶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표정이 어둡다.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어깨는 움츠리고 고개는 숙여져 있으며 가슴은 좁다. 우울하고 음울한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 나온다.
반면, 자기 삶을 아끼고 사랑하며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다른 특징이 있다. 표정이 밝다. 항상 웃는다. 목소리는 크고 우렁차다. 어깨는 솟아 있고 고개는 하늘을 향해 있으며 가슴은 활짝 펼쳐져 있다. 밝고 맑은 기운이 서려 있어 누구나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한다.
행복한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어떤 기운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밝은 사람에게 더 많이 전해질 거다. 웃는 사람은 더 많이 웃게 되고, 어깨와 가슴이 펼쳐져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기운을 받게 된다.
걱정, 근심, 불평, 불만, 시기, 질투, 욕심. 내 표정은 항상 어둡고 심각하고 날카로왔다. 삶이 무너졌다. 두 번째 인생은 다르게 살기로 작심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과거보다 더 많이 웃고 밝게 살려고 노력한 덕분에 전혀 다른 인생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 아침에 일어나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나만의 사무실에 나와 글 쓰고 책 읽고, 나를 믿고 따르는 수강생들에게 글 쓰는 삶을 전하고, 서로 아껴주는 이들 사이에서 하루를 보낸다. 보석 같은 일상을 두 번 다시 놓치지 않으려 한다.
5월부터 8월까지, 거의 넉 달 동안 몸이 완전히 부서졌다. 갑자기 시작된 통증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불과 5분 거리를 다리를 질질 끌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 왕복했었다. 오죽했으면 사무실 화장실 출입문 위에 봉과 줄을 달았겠는가.
지옥 같은 넉 달을 보내면서, 내가 가장 간절히 바랐던 것은, 다시 일상이었다. 과거에 겪었던 실패와 아픔을 조금씩 잊고 살아가는 나에게 신이 회초리를 든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매 맞고 정신차렸다. 다행이 몸은 회복중이다. 이 소중한 일상을, 더 없는 날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려 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