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글을 썼습니다

나와 타인에게 귀를 기울이는 행위

by 글장이


"나, 너무 힘들어."

"넌 죄인이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일축했습니다.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한 것은 잘못이니까, 그 잘못을 저지르기까지의 모든 환경과 조건과 상황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앞으로 열심히 살아 볼 테니 기회를 달라 했지만, 저는 이미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지요.


술을 마셨습니다. 술은 저를 비틀거리게 했지만, 오직 취기에 젖어 있을 때에만 버틸 힘이 있었습니다. 죄 지은 것도 알고, 죗값 치르러 감옥에도 가게 되었으니, 이제 내 말 좀 들어주는 사람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외면 당하는 이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가 그제야 깨닫게 되었지요.


평생 동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하소연과 푸념이 능력 없고 노력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정했고, 그런 사람들 말은 들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먼저 귀를 닫았고, 이제는 세상이 귀를 닫았습니다.


일부러 말을 거칠게 했습니다. 표정도 우악스럽게 지었고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저를 한 번 더 쳐다보았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죠. 겉으로 강한 척할수록 제 안에는 쪼그리고 앉아 서럽게 우는 소년이 느껴졌습니다.


감옥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저를 외면했지만, 백지는 있는 그대로 저를 받아주었습니다. 남들은 저한테 제발 그만 좀 떠들라 했습니다. 빈 종이는 저에게 더 할 말이 없느냐고 계속 물었습니다. 인생은 제게 한 번 지나간 삶은 돌이킬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글은 저한테 얼마든지 다시 고쳐 쓸 수 있다며 힘을 주었습니다.


글을 쓸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매일 쓸 수 있었냐고 묻는 사람 많은데요. 그것은 고품격의 '쓰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제 안에 가득한 설움과 분노를 토해내는 과정이었지요. 잘 쓰고 못 쓰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남들한테 인정받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거든요. 눈물 그치는 게 먼저였습니다.


겉으로 강한 척하면서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단단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껍질 속에 울고 있는 작은 소년이, 제 눈에는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글을 써 보라고 권했지요.


다행히 세상은 제 글에 아주 조금 관심을 보였습니다. 책이 몇 권이나 팔리느냐 하는 것도 저한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컴컴하고 꽉 막힌 주변 벽들에 틈이 생기고, 그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2016년 2월. 첫 책을 출간한 직후, 서울 어느 자기계발 모임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무너진 이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선 것이지요. 대구에서 서울까지 고속버스 타고 가는 동안 심장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강의장은 이미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지요. 모두가, 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참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가 비단 책을 출간하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책을 출간하는 이유가 오직 베스트셀러 되기 위함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어떤 일은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가집니다. 밥 먹는 일이 무조건 배를 채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듯이,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그 일을 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저는 여전히 세상이 단단한 벽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세상. 고개를 들기만 하면 온통 손가락질만 가득해서 토할 것만 같은 인생. 붙잡을 것 하나 없이 그 모든 고통을 견딘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고 지칠수록 숨 쉴 만한 틈이 있어야 합니다. 그걸 발견하는 사람은 견디고 버팁니다. 아무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겠지요.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된다 하더라도 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한테는 쉼 쉴 만한 틈이, 살아갈 길이, 글쓰기였던 거지요.


얼마 전, 극심한 고통으로 힘든 시간 보낸 적 있습니다. 얼마나 아팠는지, 혼자 사무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기도 했고요. 무엇에 씌인 사람처럼 화장실 출입문 위에 봉을 설치하고 줄을 달기까지 했습니다.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아프다"는 말을 했거든요. 위로해주고 힘 내라며 격려해준 사람 많았습니다. 그들이 귀를 열고 제 말을 들어주는 것이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만약 제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여전히 아무런 존재 가치 없이 살았더라면, 아마도 그런 고통조차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을 겁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과도 같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태도입니다. 사랑을 나누지 못했으니 축복도 받지 못했던 것이고요. 글 쓰면서 어떻게든 나처럼 힘든 사람 돕겠다 생각하며 산 덕분에 기적 같은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거지요.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쏟아내는 행위인 동시에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인 동시에 다른 사람 인생을 공감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쓰기 힘들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마음이 닫혀 있다는 증거일 테지요.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글을 쓸 만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말은,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만한 시간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글쓰기 말고도 세상과 인생에 마음을 열어젖힐 방법은 많겠지만, 그 또한 시간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질주하듯 살아가는 인생을 탓할 마음은 없습니다. 방구석에 누워 뒹굴거리는 사람에 비하면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니까요. 그러나, 열심히 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기 삶을 챙기는 행위입니다. 그래야 과거 저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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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안에 웅크리고 있던 소년이 울음을 그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 커튼을 젖히고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에 눈이 부신 걸로 봐서, 적어도 오늘을 살아갈 힘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확실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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