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 삶에 집중해야 할 때

by 글장이


죄를 지었다. 벌을 받았다. 사업 실패했을 때 급하게 돈을 메꿔 넣으려 했다. 앞뒤 분간하지 못한 채 당장 발등의 불만 끄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여기 저기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했고, 결국은 철창 신세를 졌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죗값을 치뤄야 한다. 나는 과거 내 잘못으로 전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세상 뒷편으로 튕겨져 나갔던 시간 덕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삶을 맞아 죄 짓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서는 어떠한가? 법적으로 죗값을 물을 만한 일이라면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상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죄'를 짓는 경우가 잘 없다는 뜻이다. 독서모임 나갔다가 희한한 인간 만나서 속이 뒤틀렸다고 치자.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것은 죄 또는 처벌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일 매 순간 '죄'도 아닌 일을 가지고 마음을 다치며 살아가는가. 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전과자인 나보다도 더 아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스스로 만든 철창 속에서 매일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입만 떼면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다. 세상과 사회에 대한 불평이다. 부모, 가족, 환경, 조건, 상황 탓을 종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모두가 '죄인'이라면, 마땅히 감옥에 가야 할 것 아닌가. 멀쩡하게 일상을 보내고, 회사에 가고, 집안일을 하고, 독서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분명코 '죄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죄인'도 아닌 사람들을 향해 무얼 그리 욕을 하고 비난의 화살을 쏘는가. '그'가 '나'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인상을 쓰고 외면하고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드는 것일까. 죄 지은 사람은 일정 기간 세상의 버림을 받는다. 치욕스럽고 아프고 괴롭다. 가슴에 한을 품게 된다. 그 지옥 같은 경험을, 아무 일도 아닌 걸로 왜 굳이 겪으려 하는지 알 수 없다.


인생 절반 넘게 살아 보니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미워하고 저주하며 물고 뜯고 싸우는 행위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성인들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나누고 베풀면서 매일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생에는 나름의 스트레스라는 것이 존재하니까.


그럼에도 자기 마음을 조금은 따뜻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뒤에 버젓이 사람이 앉아 있는데도 의자를 한껏 뒤로 눕히면서 당당한 듯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주차장 입구에 차를 대고 물건을 내리면서 다른 운전자에게 방해를 끼쳤으면서도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큰소리 뻥뻥 치는 사람들. 차는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당당히 서서 내 자리요 뻔뻔스럽게 외치는 사람들. 선생님한테 욕설을 지껄이고 주먹을 날리는 학생들. 아이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짓을 저지르는 교사들. 갑질하는 상사들. 기본 예의조차 없는 부하 직원들.


머리끄댕이라도 잡아서 정신 번쩍 들도록 두들겨 패주기라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영상을 볼 때마다 차라리 채널을 돌리고 시원한 냉수 한 잔 마시며 다른 생각을 하자 마음 바꾸곤 한다. 맞다. 그들은 도의에 어긋난 짓을 서슴지 않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처벌하고 단죄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란 사실이다. 죄가 있다면 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마땅치 못한 말과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내 마음과 기분이 엉망이 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교육, 나의 철학과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 하여 '그들 때문에' 내 삶이 엉망이 될 필요 뭐가 있겠는가.


옳고 그름을 따지고 평가하는 판사가 왜 이리도 많은지.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데, 왜 자꾸만 다른 사람 인생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정의를 지키려 드는가. 그럴 만큼 자기 삶에 자신 있는가. 아니면, 자기 삶에 자신이 없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 인생에 참견하는 것인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그렇게 다들 자기 삶에만 관심 있으면 세상이 어찌 돌아가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세상과 사회에 관심 가지고, 무엇이 옳은가 정의를 실현하려는 이가 많아야 나라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다. 세상 똑바로 돌아가게 하려면 가장 먼저 자기 삶부터 반듯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먼저다.


증오와 시기와 질투를 품고 살았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잘못 되었다 싶을 때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험한 말 쏟아부었다. 나는 정당했고, 그들은 도리에 어긋났다. 나는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었다.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나는 감옥에 갔고, 그들은 멀쩡하게 잘 살았다. 나에게,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었는가.


남한테 관심 갖고 참견하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동안 정작 내 삶에는 아무런 신경 쓰지 못했던 거다. 그들에게 간섭하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절반이라도 나 자신에게 적용했더라면, 내 삶이 그렇게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덕경을 비롯해 수많은 고전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메시지가 있다. 밖으로만 돌지 말고 자기 안을 챙기라는 내용이다. 타인의 인생만 쳐다보지 말고 자기 내면을 닦고 수행하란 이야기다. 옛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안'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강조했다면 다 그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 판사 하지 말고 농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땅 갈고 씨 뿌리고 정성 다해 가꾸고, 수확하고 나누고 잠시 쉬고. 내 땅에 관심과 정성 쏟으면서 살아가다 보면, 그렇게 모두가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질 거라고 확신한다.


도움 청할 때 도와주면 '조언'이 된다. 아무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간섭하면 '오지랖'이다. 조언을 하면 듣는 사람 마음이 열린다. 오지랖 떨면 상대 마음 닫힌다. 조언해주면 고맙다는 말을 듣지만, 오지랖 떨면 너나 잘해라 빈정거리는 소리만 듣는다.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바꾸려는 취지에서 생각이나 주장을 강요하면 그것은 때로 폭행에 가까운 결과를 낳는다. 9년째 강의를 해 보니, 사람은 타인에 의해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스스로 각성하고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타인은 그저 자기 삶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바꾸고 싶다면, 자기 삶을 본보기로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한다. 감히 말하건대, 자기 삶에 한 치의 부끄럼 없이 떳떳한 사람 몇이나 되겠는가. 겸손할 줄 알아야 하고, 돕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며, 서로 다르다는 생각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를 증오할수록 내 마음만 부패한다. 부디 다른 사람을 향한 비난과 험담과 욕설을 멈추길. 자기 생각 좀 하면서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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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내' 생각 말고 더 좋은 다른 생각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저 사람이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짚어 보는 생각. 그 사람에게서 '나'를 보려는 생각. 어찌 됐든 내 기분이 좋고 평온해야 살아갈 맛도 나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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