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긍정의 가치
매일 감사일기를 쓰고, 입만 떼면 감사를 외치는 친구 있습니다. 휴대전화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실적도 괜찮고 돈도 좀 벌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좋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모두 감사 덕분이라고 그 친구는 늘 강조합니다.
다른 점포에 들렀던 고객이 그 친구 업장에서 가입한 적 있는데요. A대리점의 점장이 친구를 찾아와서 따지듯 물었습니다. "분명히 내 고객이었고, 당신도 그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왜 가로채기를 하는 거야!"
친구가 법적으로 문제 될 만한 일을 한 건 아닙니다. 단지, 고객이 자신에게 가입하길 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준 것뿐입니다. 문제는, A대리점의 점주가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주변 모든 점포에다 친구에 관한 험담을 쏟아냈다는 사실입니다.
이후로 친구는 상당한 기간 동안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게 됐습니다. 휴대전화 대리점간 소통이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친구는 그 일을 계기로 스트레스 많이 받았습니다. 웃음기 싹 사라졌고, 살도 빠졌고, 불면증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온갖 일 당하게 마련입니다. 그 동안 건실하게 잘 살아온 친구라서 거뜬히 이겨낼 줄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 믿음과는 달리, 그 친구는 오랜 시간 걱정과 근심과 고민 속에 빠져 살았지요.
충격적인 것은, 그 친구 입에서 '감사'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그랬겠나 싶다가도, 이런 정도의 일로 사라질 감사라면 그게 무슨 신념이고 철학인가 어이가 없기도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일 년쯤 지난 후부터 그 친구는 다시 사업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돈도 잘 벌고, 주변 사업주들과도 잘 지냅니다. 시련 딛고 일어나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고, 친구들과 한 번씩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그때 이야기 나누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예전만큼 그 친구를 믿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또 힘들고 어려운 시기 닥치면, 그 친구에게서 감사가 싹 사라질 거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그 친구의 감사는 "모든 게 좋을 때만" 작동하는 겉치레에 불과한 것입니다.
돈 잘 벌고, 일 잘 풀리고, 관계 좋고, 아픈 곳 없고, 근심 걱정 없고, 컨디션 좋을 때. 그런 때에 감사 못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고 좋고 좋을 때는 세상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련 닥쳤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감사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긍정적인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 다 좋은 시기에는 누구나 긍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합니다. 역경 닥쳤을 때의 태도를 봐야 합니다. 조금만 힘들면 투덜투덜 불평과 불만 일삼고, 다시 좋아지면 긍정 어쩌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긍정적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감사할 만한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 긍정적인 태도를 갖출 만한 환경에서 긍정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세상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탁월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감사하고 긍정해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그리 하지 않는 사람들을 질타하는 게 맞겠지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누구나 고개를 떨구고 좌절하고 절망할 만한 환경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긍정할 때 그 가치가 빛나는 거겠지요. 감사와 긍정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삼성 그룹 회장이 고기 반찬 먹으면서 감사를 표하는 것과 노숙자가 하루 한 끼 겨우 먹으면서도 감사하는 것. 감사의 의미를 다르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무 문제 없는 상황에서 하는 감사가 의미와 가치 전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것도 당연히 훌륭한 태도지요. 하지만, 상황이 나빠지고 환경이 어려워졌다 해서 금새 감사를 외면하는 것은 이전에 했던 감사까지 가식이었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삼성 그룹 회장이 고기 반찬 먹을 때도 감사했고, 상황이 어려워져서 길바닥에서 국밥 한 그릇 겨우 먹게 되었을 때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감사하는 법을 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아들이 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생과 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감사의 기도를 했던 아버지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자녀가 난치병에 걸려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음에도 늘 한결같은 미소를 간직한 어머니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외부 사건들에 휘둘리지 않고 감사와 긍정의 본질을 추구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는 분명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수 년 동안 마음 다해 코칭하고 책 출간도 도와주었는데, 어느 순간 한 마디 말도 없이 등을 돌려 매몰차게 떠난 사람들. 그들이 다른 곳에서 감사와 긍정을 이야기하며 SNS에 선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모습을 수시로 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감사와 긍정을 타인에게 전하고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노트에 백 번씩 감사일기를 쓰면 뭐합니까. 긍정확언 백 번씩 백일을 쓰면 무얼 하겠습니까. 남의 뒤통수 치는 걸 여사로 알고, 자기 감정 상할 때는 아무 말이나 마구 던지고, 화가 난다고 해서 해서는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 기분 좋을 때만 감사와 긍정을 강조하는 꼴이 참으로 우습지요.
감사와 긍정을 말하려거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긍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감사와 긍정을 자신의 이미지에 덧입혀서는 안 됩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게 먼저입니다.
감사가 유행한다고 해서 감사로 돈 벌겠다며 감사를 시작한 사람들. 긍정이 필요한 세상이고 긍정으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갑자기 긍정을 시작하는 사람들. 목적이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의 감사와 긍정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자신의 감사와 긍정이 얼마만큼 깊이 있고 진정인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다면, 비 오는 날 같이 등산해 보면 됩니다. 굳이 산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만 올라가 봐도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튀어나올 겁니다.
배낭은 무겁고, 옷은 다 젖고, 신발에는 흙이 잔뜩 묻고,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길은 미끄럽고, 날씨는 으슬으슬 춥고, 배도 고프고. 이런 순간에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고난 닥치면 본 모습 나옵니다. 사람의 자질과 인격과 본성은 시련과 고통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에어컨 바람 상쾌하게 나오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썰면서 나누는 대화만으로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기 힘듭니다. 그렇게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는 누구나 감사하고 긍정할 수 있으니까요.
고생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사소한 문제 앞에서도 짜증 부리고 화를 냅니다. 마음을 강하게 단련할 기회가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일 테지요. 고난과 역경을 잘 버티고 견디고 이겨낸 사람일수록 웬만한 힘든 상황 거뜬히 극복하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기꺼이 선택해야 합니다. 폭풍우 속으로 자신을 집어던져야 합니다. 그 속에서 견디고 버티며 단련해서 강해지는 것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방법입니다. 지금이 안락하고 편안하다 해서 지금을 지키려고만 드는 사람은 점점 약해집니다. 산들바람에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이 닥치면, 강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야 합니다. 지금 이 시련이 나를 위한 최고의 시간임을 믿는 것.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버티고 또 버티면서 자신을 단련시키고, 이전과 다른 나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로 삶을 마주하는 것이죠.
조금만 힘들어도 징징거리고, 조금만 자기 마음에 안 들어도 불평 불만 쏟아내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다 자기 본성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