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생각하는 시간
일본을 싫어했습니다. 전쟁, 침략, 위안부 같은 단어들이 어린 시절부터 제 안에 증오와 원망으로 자리 잡은 탓입니다. 저도 모르게 극우 성향을 갖게 되었는데요. 독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땐 무조건 주먹을 불끈 쥐었고, 축구나 야구 국제 경기를 할 때면 목이 터져라 응원하곤 했습니다.
오사카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정치나 사회 문제와는 별개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문을 열고 닫을 때 항상 웃으며 양보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쏟아지는 폭우를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직원으로서의 태도 이상으로 보였습니다.
버스를 탔는데, 누군가 하차벨을 눌렀습니다.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정차하여 앞뒤 문을 다 열 때까지 아무도 일어서지 않고 예비동작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느긋하게 앞문으로 걸어가서 카드를 대고 하차했습니다. 승객들은 운행간 일어서지 않았고, 기사는 재촉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첫인상이 사랑스러운 사람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어둡고 못마땅하게 보이는 사람 있습니다. 서서히 빛이 보이기도 하지요. 처음부터 빛과 어둠 모두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굳이 고르자면, 저는 처음부터 솔직하게 좋은 점과 나쁜 점 다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자기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좋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처음에 저의 좋은 점만 보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저 보고 사람이 변했다고 말합니다. 처음에 저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은 나름 좋은 점도 있구나 이후에 말하곤 합니다.
사실 저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저한테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저는 늘 그대로입니다. 본인 마음에 들면 저를 좋다고 말하고,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에는 저를 나쁘다고 말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제 마음에 드는 구석도 있고 못마땅한 점도 있습니다. 사랑스럽기도 하고 환멸을 느끼기도 합니다. 일본은 저한테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일본은 그냥 일본입니다. 제가 보기에 좋고 나쁜 점 그냥 있는 것이죠.
누군가 저의 못마땅한 점 지적한다 하여 제가 바꿀 이유 없습니다. 누군가 저를 좋아한다 하여 그 입맛에 계속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모습 대로 그냥 살아갑니다. 누군가 저를 사랑해주면 고마운일이고, 누군가 저를 싫다 하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 눈에 들고 싶다는 욕구로 이리저리 맞춰가며 살 수는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아니다 싶은 점 있으면, 그 또한 바꾸기 위해 애를 쓸 뿐이지요. 변화와 성장은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기 위함이지 타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함이 아닙니다.
여행 바로 전날부터 심란하고 불쾌했습니다. 여행 와서도 짜증 나는 일 연속이었습니다. 제 감정으로 인해 일본은 환멸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행 이틀이 지나고, 호우주의보가 해제 되어 파란 하늘이 펼쳐지면서 제 기분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랑스러운 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본이 제 입맛을 맞추는 게 아니라, 제 기분 따라 일본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하는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대로입니다. 다른 사람 기분이 좋으면 저도 좋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고, 다른 사람 기분이 불쾌하면 저도 불쾌한 사람으로 보일 테지요.
누구나 좋은 점 나쁜 점 두루 갖추고 살아갑니다. 완벽한 사람 없지요. 그럼에도 사람은 자꾸만 상대에게 완벽한 존재이길 기대하는 습성 있습니다. 정작 자신은 완벽하지 못한 채, 스스로도 부족하고 모자란 점 많으면서, 상대는 "이러해야 한다!" 멋대로 규정을 짓는 것이지요.
여행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여행 전과는 조금 다른 내가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생각을 해 보려 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