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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07. 2024

글 쓰는 공간의 소중함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무실


닷새간 비웠던 사무실에 들어서자 냉기가 느껴졌다. 신경 수술 받으러 입원했을 때에도 사흘만에 돌아왔었다. 사무실 임대 후 가장 길게 비운 경우다. 사무실이 생명 가진 존재처럼 느껴져서 보고 싶었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책상 위 먼지를 닦고 노트북 전원을 켰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짧은 글 한 편을 적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듯이, 가려운 등을 긁듯이, 열흘 동안 비우지 못한 변을 쏟아내는 것처럼, 시원했다. 


일본 여행 숙소에서도 글을 썼는데, 사무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뭐가 그리 달랐는가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사무실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푸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글쓰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쓰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 자주 만난다. 나는 그들에게 정중하게 "방법이 없다"고 답한다.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그들이 없다고 말하는 시간을 무슨 수로 만들어 준다는 말인가. 


다만 한 가지, 지난 9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들에게 시간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것은 스스로 깨닫고 밝혀야 할 문제이지 제 3자인 내가 간섭할거리는 아니다. 


공간은 어떠한가. 집에서 쓰는 사람, 카페에서 쓰는 사람, 도서관 찾는 사람, 또 다른 어떤 공간에서 쓰는 사람. 각자가 즐겨 이용하는 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디에선들 못 쓰겠냐고 핏대 세워 강의하지만, 개인 성향에 따라 조금이라도 글이 잘 써지는 곳 있다면 기꺼이 찾는 것도 요령이다.


감옥에서 쓰기 시작했다. 양반다리로 앉은 채 상체를 숙여 바닥에 코를 박고 글을 썼다. 피가 거꾸로 돌아서 십 분만 그렇게 있어도 머리가 핑 돌았다. 그때 시작 된 저혈압을 나는 지금도 앓고 있다. 


출소 후에는 아들이 어렸을 적에 사용했던 유아용 앉은뱅이 책상 위에 십 년 된 노트북 올려 놓고 글을 썼다. 자세도 불편했고, 타이핑 속도보다 글자 보이는 속도가 느린 구닥다리 노트북 탓에 답답하기도 했다. 그 책상과 노트북으로 나는, 2016년에 세 권의 책을 출간했다. 


지금은 여덟 평짜리 원룸에 사무실을 장만하고, 책상 두 개를 나란히 붙여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강의용 데스크이고, 그 옆에 붙은 책상은 노트북 전용으로 글 쓰는 데 주로 이용한다. 노트북도 맥북과 갤럭시북3 등 최신형으로 구비하고 있다. 


감옥에서,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과 구닥다리 노트북으로 힘겹게 글을 쓴 적 있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천국의 환경과 시스템을 갖춘 것과 같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게을러진다. 아니, 더 좋은 책상과 더 성능 좋은 노트북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사람의 탐욕이 어느 정도인가 알고 싶다면, 훗날 내 몸을 해부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사무실 책상 오른 쪽에는 창문이 있다. 손을 뻗어 열면 방충망이 있고, 그것마저 열어 젖히면 바깥 공기를 손으로 만질 수 있다. 감옥에 있을 때, 창밖에 비가 쏟아져도 창살 때문에 손을 내밀 수 없었다. 지금은 온몸으로 비를 맞을 수 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노후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서 고민 끝에 네트워크 사업을 시작했다. 당장 떼돈을 벌겠다는 작정도 아니었고, 무슨 다이아몬드 같은 직급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부자 아빠'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의 책을 읽고, 네트워크 사업의 비전과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법 다단계' 때문에 네트워크 사업에 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도 사업 가능성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 근거가 되었다. 


네트워크 사업의 성공은 여유에서 시작한다. 조급한 마음에 무리하게 추진하면 어떤 사업이라도 실패하고 만다. 지금도 주변에서 마치 쉽고 빠르게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처럼 사업 광고를 하는 사람들 자주 보는데, 위태롭고 안타깝다. 이러한 조급함도 모두 탐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어떤 사업보다도 탄탄한 체계를 마련할 수 있고, 한 번만 제대로 성을 쌓으면 개인의 힘으로 거대한 파도를 일으킬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글쓰기 공간이나 시스템에 대한 욕심이나 사업으로 돈 쉽게 벌겠다는 욕심이나 다른 사람 마음 내 뜻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욕심이나 모두 매한가지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 잊지만 않으면 그저 지금이 축복이고 감사일 텐데. 나부터 반성하고 정신 수습해야겠다.


벽에는 에어컨이 설치 되어 있고, 보일러도 작동 가능하다. 지난 여름, 에어컨 덕을 톡톡히 보았다. 40도 가까이 오른 뜨거움 속에서도 쾌적하게 글 쓰고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에어컨 덕분이었다. 감옥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다가오는 겨울도 두렵지 않다. 작년 겨울, 26도까지 올려 따뜻하게 지냈었다. 올해도 마음 푸근하다. 너무 추워서 운동화까지 신은 채로 모포를 두 장 덮고는 '라면물'이라고 나눠 준 페트병 뜨거운 물을 껴안고 잤던 감옥 생활. 새벽이 되면 그 물이 다 식어서 오히려 한기를 느끼고는 잠에서 깨었다. 이후로 오들오들 떨면서 결국 밤을 지새곤 했다. 에어컨에 보일러. 더 무엇이 필요한가. 


쓰지 못할 이유와 핑계를 대자면 끝이 없다. 지난 9년간 전국을 다니면서 만났던 수많은 수강생들. 그들이 말하는 쓰지 못하는 이유는 한결같이 정당했고 합당했고 납득이 되었다. 가끔은 그들이 내게 글 쓸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것인지 쓰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그냥 공감만 해달라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어디에서 글을 쓰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신이 글을 쓰는 공간을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는 말이다. 남들이야 웃든지 말든지, 적어도 내게는 글쓰기는 신성한 작업이다. 손도 씻고 책상도 닦고 심호흡 크게 한 후에 글을 쓴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겠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내 사무실에는 자주빛 아우라가 펼쳐진다. 때로 황홀경을 느끼기도 하고, 힘들고 막막할 때는 그 빛이 나를 어루만져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내 공간을 사랑한다. 쓸 수 있어 다행이고, 쓸 수 있도록 해주어 고맙다.


공간을 사랑하면, 그 공간에서 행하는 모든 일도 사랑하게 된다. 눈 뜨면 달려가고 싶은 곳. 그것으로 충분하다. 일본 여행 내내 사무실이 그리웠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앉아 있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함께 읽고 있다. 쓰고 읽는 공간에서, 문장수업을 준비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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