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세상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에 대하여도 궁금하지 않았고, 어린 아들이 쫑알거리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아내의 푸념을 그저 잔소리라 여겼었다. 반찬은 반찬일 뿐이었고, 집은 집일 뿐이었으며, 타인은 타인일 뿐이었다.
나는 취미가 없다. 어렸을 적부터 자기 소개 취미란에 적을 게 마땅찮았다. 옆자리 친구가 독서라고 적으면 나도 독서라고 적었고, 누나가 음악감상이라고 쓰면 나도 음악감상이라고 썼다.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도 변변찮은 취미 생활 하나 없다. 낚시도 게임도 오토바이도 나는 즐겁지가 않은 것이다.
관심이 없으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즐길 수 없고, 즐길 수 없으니 다시 무관심해진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면 나는 그저 돈만 많이 벌면 그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메마른 감성으로 모든 걸 뒤로 미룬 채 성공을 위한 질주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결국 내 삶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가운데를 싹 다 잘라버리고 양 쪽 끝만 이어붙이면 다음과 같은 등식을 만들 수 있다. "무관심=추락"
글을 쓰면서 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몇 초간 그대로 누워 있다. 내가 잠에서 깼다는 사실, 정신이 서서이 돌아오는 순간, 곁에 누운 가족, 창밖에 벌겋게 동 트는 모습. 이 모든 보고 느끼는 것들이 경이롭다.
아버지 기침 소리 한 번에도 마음이 훅 쏠리고, 어머니가 걸친 조끼를 바라보며 색이 이쁘다는 말씀 놓치지 않는다. 서늘한 아침에 뜨끈한 국물이 속을 녹이고,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건강에 감사하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는 동안 할 일 있음에 기뻐한다.
아무 것에도 관심 없이 살다가 모든 것에 관심 가지며 살게 되었다. 관심 가지고 살게 되어서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하루의 밀도가 높아졌다는 사실. 둘째, 궁금한 게 많아진 만큼 질문도 늘었다는 점. 셋째, 글감이 풍부해졌고. 넷째, 관심 가는 분야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는 것. 다섯째, 세상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이다.
내가 관심 갖는 것들에 대해 타인은 관심 없는 경우 많다. 강요하고 싶지 않다. 관심이란 1인칭 주어가 주체가 되어야만 가능한 행위이다. 없는 관심을 억지로 주입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나의 관심의 결과가 또 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할 뿐.
요즘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은 돈과 성공에 있는 듯하다. 마치 과거의 나를 보는 것처럼 안쓰럽고, 세상에는 물질적인 부 말고도 관심 가질 것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더 많은 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관심 없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콘텐츠나 아이디어도 더 많이 발현할 수 있다.
스마트폰 세상이다. 관심 없는 것들을 종일 쏟아낸다. 내 앞에 대령해준다. 나는 열심히 그것들을 솎아서 내가 관심 갖는 것들만 뽑아낸다. 작업하는 동안 혹시 눈길을 끄는 게 있으면, 다시 관심 없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처음에 관심을 가졌지만, 알고 보니 다 거짓이더라 하는 것들도 많다. 속은 기분 주체할 길이 없다. 소중한 시간 빼앗긴 느낌이다. 괜찮다. 덕분에 세상엔 이런 것도 있구나 배우고 깨닫는다. 관심은 마음 여유도 가져다주는 모양이다.
빠르고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길을 걷는 사람들 발걸음은 혼미하고,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화면에 몰입하고, 입동이 지나 가을이 물러나고 있다는 사실에 아무 감각이 없다. 좀비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과 비슷하다. 사람을 물어뜯지만 않을 뿐, 멍한 눈빛과 자동으로 움직이는 팔과 다리는 섬짓하다.
가족과 함께 닷새 동안 오사카 다녀왔다. 대구 공항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의 친절을 보았다. 커다란 캐리어 세 개를 트렁크에 억지로 끼워넣는 바람에 승차하기도 전부터 고생을 했는데, 기사는 운행간 줄곧 여행 잘 다녀오라는 뉘앙스의 말만 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줄, 공항에 도착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항공편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마음을 급하게 했다. 딱히 무슨 말을 건넨 건 아니지만, 항공 회사 직원들은 자신이 입고 있는 유니폼에 대해 나름의 긍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왠지 믿음직스러웠다.
비행기는 활주로 입구까지 버스처럼 움직인다. 그러다 잠시 정차한다. 이번에는 엔진 소리가 다르다. 갑자기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몸이 저절로 뒤로 젖혀진다. 작은 창문을 통해 밖을 보면, 비행기가 뒤로 기울면서 허공으로 붕 뜨는 모습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나는 이제 하늘에 있다.
관심은 쓸거리다. 관심은 분량을 채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해주며, 관심은 아직도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한 곳이란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관심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린다. 똑같은 세상을 살아도, 관심 가지고 사는 것과 그냥 사는 것은 전혀 다르다.
관심 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 세상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것들을 열심히 글로 써서, 그들이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내 쓰는 삶의 소명이라 할 수 있겠다.
사탕 한 알로 다투는 아이들 곁으로 가서 저기 멀리 넘실거리는 파도를 한 번 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사탕 한 알이 인생 전부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파도의 거대함과 그 웅장한 소리에 더 이상 사탕 따위 목숨 걸지 않도록. 작가는 세상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일본에서 사가지고 온 노트와 펜으로 기록을 하려는데, 잠시 멈춰 생각했다. 기남상사와 교보문고 핫트랙에서 구입한 펜과 노트가 더 나은 것 같다. 다른 걸 사 올 걸 그랬나.
지금 행복하십시오!